도우려던 남학생도 부상…피의자 11시간만 검거
2년전 순천 사건과 유사…이상동기 범죄 불안 확산

“학교 바로 앞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다니…너무 무섭네요.”
어린이날 새벽 광주 도심에서 귀가하던 고등학생 1명이 괴한에게 습격당해 숨지고, 이를 도우려던 고등학생 1명도 다쳤다. 2년 전 순천에서 발생한 ‘묻지마 살인’과 유사한 패턴을 보이면서 이상동기 범죄에 대한 불안이 확산하고 있다.
5일 오전 찾은 광주 광산구 월계동 한 고등학교 앞 인도. 불과 몇 시간 전 인근 고등학교 2학년 A양과 B군이 피습당한 곳이다. 현장 곳곳에는 A양의 혈흔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남아 있어 당시의 끔찍했던 상황을 짐작게 했다. 경찰이 혈흔을 가리기 위해 모래를 뿌려놨지만, 채 마르지 않은 붉은 자국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평소 인적이 드문 곳’이라는 경찰 설명처럼 한낮에도 이 일대는 한산했다. 바로 옆 6차선 도로에는 차량만 간간이 오갈 뿐, 보행자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사건 현장은 대학교와 고등학교, 중학교 등이 모여 있는 학교 부지와 아파트 공사 현장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주변에 상가가 없어 유동 인구가 적고, 인근 아파트 단지와도 떨어져 있어 평소에도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곳이라고 주민들은 전했다.
피해 현장 인근 중학교에 다닌다는 이정담·오성우(16)군은 “오늘 오전 부모님이 ‘학교 근처에서 칼부림이 일어났으니 조심하라’고 연락해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며 “이 길은 원래 사람이 거의 없고, 가로등이 있어도 밤에는 무서워 잘 이용하지 않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가끔 다니던 길인데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니 너무 안타깝고 무섭다”고 덧붙였다.
광주 광산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2시11분께 광산구 월계동 한 대학교 인근 인도에서 귀가 중이던 고등학교 2학년 A양이 C(24)씨가 휘두른 흉기에 목 부위를 여러 차례 찔렸다.
당시 건너편 인도를 지나던 고등학생 2학년 B군도 A양의 비명을 듣고 현장으로 갔다가 C씨가 휘두른 흉기에 목 부위를 다쳤다.
A양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B군은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A양과 B군은 서로 다른 학교 재학생으로, 일면식이 없는 사이인 것으로 전해졌다.
C씨는 범행 직후 도주했으나 범행 11시간여 만인 이날 오전 11시24분께 광산구 월계동 자택 앞에서 잠복 중이던 경찰에 살인·살인미수 등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경찰 조사 결과 무직인 C씨는 당시 자살할 장소를 찾기 위해 범행 장소 인근을 배회하던 중, 혼자 지나가던 A양을 마주친 뒤 지나쳤고 또 다시 두번째 마주치자 살인 충동을 느껴 소지하고 있던 흉기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C씨는 평소 정신질환 병력은 없었고, 음주 상태도 아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자살을 계획한 경위와 흉기 소지 목적 등에 대해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은 2년 전 순천에서 발생한 ‘묻지마 살인’과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지난 2024년 9월26일 새벽 12시44분께 순천시 조례동 한 거리에서 박대성(31)은 일면식도 없는 고등학생 D양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당시 박대성은 경제적 어려움과 가족 간 갈등 등 개인적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으며, 지난해 8월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앞서 2023년 서울 신림역, 경기 분당 서현역 등지에서 이상동기 범죄, 이른바 ‘묻지마 범죄’가 잇따르자 경찰은 형사기동대와 기동순찰대를 신설하는 등 특별치안 활동을 강화했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고 규칙성이 없어 예측이 어렵다는 점에서 예방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유사 범행이 또다시 발생하면서 지역사회 불안이 커지고 있다.
뚜렷한 동기가 없는 이상동기 범죄는 매년 수십 건씩 발생하고 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발생한 이상동기 범죄는 2023년 46건, 2024년 42건, 2025년 39건 등 총 127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살인·살인미수는 45건으로 전체의 35.4%를 차지했고, 상해 52건(40.9%), 폭행 30건(23.6%) 순으로 나타났다. 피의자 성별은 남성이 96명(75.6%), 여성이 31명(24.4%)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3배 이상 많았다.
경찰 관계자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유포되고 있다”며 “프로파일러 면담과 휴대전화 포렌식 등을 통해 범행 동기와 경위를 면밀히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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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기난동 막은 경찰관 끝내 숨져...트라우마에 무너진 ‘치안 최전선’
19일 광주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서구경찰서 한 지구대 소속 A 경감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광주 남구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 당시 피의자를 제압하다 크게 다친 50대 경찰관이 끝내 숨을 거뒀다.지난 2024년 사건 이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불면, 기억장애 등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강력 사건 현장에 반복 노출되는 현장 경찰관들에 대한 장기적 정신 치료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19일 광주경찰청에 따르면 광주 서부경찰서 한 지구대 소속 A 경감은 전날 광주 한 병원에서 숨졌다. A 경감은 2024년 4월19일 사건 당시 광주 남부경찰서 효덕지구대 소속으로 동료 경찰관 2명과 함께 광주 남구 송하동에서 행인을 폭행하고 흉기를 휘두르던 50대 난동범을 제압하다 길이 25㎝가량의 톱에 머리와 팔 등을 다쳐 약 두 달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유족들에 따르면 사건 당시 A 경감은 단기 기억 상실 판단을 받았으며 최근까지도 당시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불면과 불안 증세가 이어지던 중 지난해 10월 남구 한 대학교 사건 현장에 출동한 이후 트라우마가 재발해 열흘 가까이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A 경감은 올해 2월24일 남부경찰서 효덕지구대에서 서부경찰서 소속 지구대로 발령받았지만 정상적인 업무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발령 이후 몇 차례 연가를 사용했고 4월부터는 병가와 연가를 반복해 업무에 복귀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가족들은 상태가 악화되자 지난 13일부터 A 경감을 입원 치료하도록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19일 광주 한 장례식장에서 흉기 피습 트라우마로 지난 18일 사망한 광주 서부경찰서 한 지구대 소속 A 경감 유가족들이 일선 경찰관들의 트라우마 치료 체계를 제대로 마련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박소영기자 psy1@mdilbo.comA 경감의 부인 양모(50)씨는 “남편이 사건 이후 매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기억력도 점점 흐려지고 판단도 어려워했다. 일상 생활 중에서 혹시라도 자기가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았을까 봐 차량 블랙박스를 하루 종일 반복해서 돌려보기도 했다”며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다는 죄책감이 굉장히 심했다. 2월 인사 발령 이후 제대로 출근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스스로 더 힘들어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이어 “현장 경찰관들이 사건 이후 정신적으로 무너져도 장기적으로 관리받거나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는 부족한 것 같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공무상 트라우마 치료 체계를 제대로 마련해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실제 현장 경찰관들의 정신건강 악화 문제는 전국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지난 2023년 8월 전남 여수의 한 파출소 소속 50대 경찰관이 바다에 빠져 숨진 채 발견됐다. 2024년 충남 아산에서는 현직 경찰관이 자신이 근무하던 파출소 직원휴게실에서 권총으로 극단적 선택을 해 숨졌다. 경찰청은 경찰관들의 PTSD와 직무 스트레스 등을 관리하기 위해 전국에 ‘마음동행센터’를 운영 중이다. 광주 마음동행센터는 지난 2014년 문을 열어 현재 상담사 2명이 근무하고 있다.경찰관 상담은 ▲지정상담 ▲자발상담 ▲긴급상담 등으로 나뉘는데 긴급상담은 강력 사건이나 충격 사건을 경험한 경찰관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의무 상담이다. A 경감은 2024년 흉기 피습 사건 이후 4차례 긴급상담을 받았고 이후 자발적으로 1차례 추가 상담을 진행해 총 5차례 상담을 받았다.다만 이후 추가 상담은 본인 의지에 따라 진행되는 구조라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광주경찰청 마음동행센터 관계자는 “자발적으로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편이다. 조직 특성상 스스로 상담을 요청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실제로 광주 마음동행센터는 2023년 993명, 2024년 725명, 2025년 705명을 상담했다. 최근 3년간 상담 인원은 총 2천423명, 상담 횟수는 7천235회에 달하지만 이중 60% 이상은 본청이 특정 직무나 연령대를 지정해 실시하는 지정상담이였다.김정규 호남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 조직 내부에서는 상담을 받는 것 자체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분위기가 여전히 존재한다. 동료들에게 근무 부담을 준다는 죄책감 때문에 치료가 필요해도 스스로 요청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며 “현재 경찰 마음동행센터 프로그램은 충격 사건 직후 단기 상담이나 이벤트성 대응에 머무르는 측면이 있다. PTSD는 시간이 지난 뒤 불면과 불안, 죄책감 등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장기 추적 관리 체계와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이날 오전 광주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A 경감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경찰은 A 경감의 공무상 재해와 순직 인정 여부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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