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조기 상승폭 10~20%
전통시장 발길에도 구매 주춤
상인·시민 부담 커진 설 준비

“사과 한 상자가 5만원을 훌쩍 넘으니까… 손님이 발길을 돌리죠.”
설을 열흘 앞두고 차례상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상인들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사과와 조기, 쌀 등 주요 제수 품목 가격이 줄줄이 상승하면서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은 차례상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4일 오후 광주 북구 말바우시장. 평일이었지만 설을 열흘 앞둔 시기답게 시장 안은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러나 곳곳에서는 가격표 앞에서 멈칫하는 손님들과 계산기를 두드리며 고민하는 상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손에 들었던 물건을 다시 제자리에 놓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30여년째 말바우시장에서 과일 가게를 운영해 온 이모(63)씨의 점포 앞에도 사과 바구니가 여러 개 쌓여 있었지만, 좀처럼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씨는 “예년 같으면 이맘때부터 제수용이나 선물용으로 사과를 찾는 손님이 서서히 늘었는데, 올해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며 “상태 좋은 상품은 6만~8만원까지 올라가다 보니 선뜻 집어 드는 손님이 없다”고 말했다.
생선 가게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근에서 생선을 파는 김모(55)씨는 “가격을 묻고는 ‘너무 비싸다’며 그냥 돌아서는 손님이 부쩍 늘었다”며 “이미 마진을 거의 남기지 않고 팔고 있어 더 낮출 여지도 없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생선 가게를 운영하는 서모씨 역시 “조기는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15~20마리에 3만원 선을 유지하고 있다”며 “단골로 장사를 이어가는 전통시장 상인 입장에서는 쉽게 가격을 올리기도 어렵다”고 털어놨다.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 역시 물가 부담을 호소했다.

이날 시장에서 감자를 사던 정모(47)씨는 “마트보다 싸다고 해서 시장에 왔는데, 작년보다 체감상 가격이 많이 오른 것 같다”며 “명절이 가까워질수록 더 오를 것 같아 차례상 준비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정육점에서 소고기를 구입하고 나오던 최은화(45)씨도 “온누리상품권 사용이 편리해져 전통시장을 자주 찾고 있다”면서도 “쌀부터 시작해서 전반적으로 안 오른 게 없다. 차례상을 간소화하는 흐름이기도 하고, 물가 부담이 워낙 커 이번 설에는 준비를 최소한으로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통계상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비교적 안정적인 수준을 보이고 있지만, 명절을 앞둔 체감 경기는 사뭇 다르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이달 광주 지역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1.8% 상승해 한국은행 물가안정 목표치(2.0%)를 밑돌았다. 그러나 차례상과 직결되는 주요 소비 품목은 큰 폭의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쌀은 전년 동월 대비 18.3% 올라 9개월째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쌀을 원료로 하는 떡류 역시 1년 전보다 5.1% 상승했다. 채소류 가운데서는 상추가 27.1% 오르며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축산물과 수산물 가격도 평균 물가 상승률을 크게 웃돌았다. 축산물은 4.1%, 수산물은 5.9% 상승했으며, 차례상 필수 품목인 사과는 전년 동월 대비 10.8% 올랐다. 국산 쇠고기(3.7%)와 돼지고기(2.9%) 등도 상승세를 보였다. 수산물 가운데서는 고등어가 11.7%, 조기는 21.0% 오르며 부담을 키웠다. 라면과 초콜릿 등 가공식품 가격 역시 전반적으로 오름세를 나타냈다.
정부는 설 성수품 수급 안정을 위해 비축 물량 방출과 공급 확대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비축해 수산물을 시장에 풀고, 축산물 도축장을 주말까지 운영해 성수품 공급량을 평상시보다 50% 이상 늘릴 계획이다.
아울러 정부는 설을 앞두고 민생안정대책에 필요한 기초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2월2일부터 13일까지 10일간 설 명절 일일물가조사를 실시한다. 쇠고기와 조기 등 설 성수품을 비롯해 석유류·외식 등 총 35개 주요 품목을 대상으로 광주시를 포함해 7개 특·광역시에서 방문 조사와 온라인 조사를 병행한다. 조사 결과는 관계 부처에 매일 제공될 예정이다.
국가데이터처 관계자는 “일일물가조사를 통해 파악한 주요 품목의 가격 동향은 설 성수품 수급안정과 관련 물가정책의 기초 자료로 유용하게 활용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활용성 높은 통계를 적기에 정확하게 생산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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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 땅에서 맞는 설···음식·노래·웃음 가득한 고려인마을
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고려인 동포들이 명절 음식을 나눠 먹고 있다. 강주비 기자
“설은 가족과 보내는 날이라고 배웠어요. 여기선 우리 모두가 한가족입니다.”설을 앞둔 광주 고려인마을은 고소한 음식 냄새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고향을 떠나 조상의 땅인 한국에 정착한 고려인 동포들은 둥근 상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노래를 부르며 그들만의 명절을 맞고 있었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고려인 동포들이 명절 음식을 나눠 먹고 있다. 강주비 기자12일 오전 10시30분께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 1층에 들어서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곰탕 냄비와 분주히 오가는 손길이 눈에 들어왔다. 고려인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이곳에서 함께 식사를 하지만, 이날은 설을 앞두고 특별한 명절 상이 차려지고 있었다.상 위에는 전날부터 삶아둔 수육을 넣은 이날의 주메뉴 수육곰탕을 비롯해 미역·고사리나물을 비롯해 당근 김치, 러시아식 토마토 반찬, 만두, 과일, 빵 등 각종 후식까지 가득 올랐다. 준비한 음식은 100인분에 달했다. 모두 같은 고려인 동포들이 나흘 전부터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해 직접 만든 음식들이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지하 강당에서 진행된 노래교실에서 김마리따씨가 우리나라 전통 민요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강주비 기자찹쌀떡을 직접 빚어 고물을 묻히는 모습은, 음식만 다를 뿐 여느 한국 가정의 설 준비와 다르지 않았다.우즈베키스탄 국적 박실바(74)씨는 “집에서는 만들기 어려워 자주 못 먹는 음식들이 있다. 명절만큼은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원하는 음식을 이웃들에게 물어보며 메뉴를 골랐다”며 “무려 나흘 전부터 장을 보고, 음식 손질을 하며 준비했다. 힘들어도 다 같이 둘러앉아 웃으며 준비해 먹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웃어 보였다.같은 시각 센터 지하 강당에서는 또 다른 설맞이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50여명의 고려인들은 책상에 둘러앉아 ‘우리나라 전통공예 체험’에 참여했다. 검은색 손거울 위에 자개 스티커를 붙이며 나전칠기를 배우는 시간이었다.숨을 참으며 조심스럽게 스티커를 붙이던 이들은 이내 완성된 거울을 들여다보며 서로의 작품을 비교했다. “예쁘다”는 감탄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기념사진을 남기는 이들도 있었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지하 강당에서 진행된 전통공예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고려인들이 자개 스티커로 꾸민 손거울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강주비 기자이어, 강당에 전통 민요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든 김마리따(70)씨는 가사를 보지 않고 능숙하게 노래를 이어갔다. 손뼉을 치며 호응하던 고려인들은 이내 후렴구를 함께 따라 불렀다. 이어진 ‘남행열차’ 무대에서는 어깨를 들썩이며 박자를 맞추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서툰 발음이었지만, 누구보다 흥겹고 열정 가득한 노랫소리가 강당을 가득 채웠다.김씨는 “우즈베키스탄에 있을 때 합창단 활동을 하며 아리랑과 남행열차를 배웠다”며 “한국에 설을 지내며 이 노래를 부르니 고향 생각도 나고 더 뜻깊다. 이렇게 동포들과 함께하니 외롭지 않다”고 전했다.프로그램이 끝나자, 고려인들은 일제히 1층으로 향했다. 빈틈이 없을 만큼 각종 음식으로 가득 채워진 상에 둘러앉아 서로의 그릇에 수육을 덜어주고 반찬을 권하는 따뜻한 풍경이 펼쳐졌다. 러시아어와 한국어가 섞인 대화 속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고향에서의 추억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한국에서의 생활을 공유하기도 했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 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고려인들이 함께 먹을 음식들을 준비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이날 2월에 생일인 7명을 위한 작은 생일파티도 마련됐다. 러시아 생일축하 노래가 울려 퍼졌고, 케이크에 꽂힌 초를 함께 불었다. 생일자들은 쑥스러운 듯 웃었고, 주변에서는 박수가 쏟아졌다. 생일 선물로 마련된 칫솔·치약 세트와 마스크, 상비약 등 생필품 꾸러미도 전달됐다.매주 센터를 찾는다는 최벨라(71)씨는 “평소에도 이곳에 오면 늘 기분이 좋은데, 명절에 이렇게 모여 노래하고 음식을 나누니 더 행복하다”며 “남편과 딸, 손자와 함께 이 마을에서 10년째 살고 있다. 올해도 가족 모두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러시아에 있을 때는 설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한국에 와서 설 문화를 배웠고, 이제는 우리들도 매년 집이나 식당에서 잔칫상을 차리고 춤추고 노래하며 우리만의 설을 보낸다. 러시아에서는 명절에 물만두를 먹지만, 이제는 한국 문화를 따라 떡국도 함께 먹는다”며 “동포들이 이곳에 와서 맛있게 먹고 즐기며 웃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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