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설명없이 회피만..."강력 항의"
조사 직전 유류품 수거 의혹 제기도

"거짓말 좀 그만하라고. 잘못한 걸 이야기 하라고."
국회 '12·29 여객기 참사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20일 무안국제공항에서 현장조사를 진행한 가운데, 유가족들은 늦어진 국정조사와 반복된 책임 회피에 대한 울분을 쏟아냈다.
국조특위는 이날 오전 10시30분부터 공항 관제실과 상황실을 차례로 방문한 뒤, 오후 1시45분께 조류충돌 예방 활동 현장, 여객기가 충돌한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 현장, 사고 잔해 보관 장소 등을 순차적으로 점검했다. 현장조사에는 이양수 국조특위 위원장을 비롯해 여야 특별조사위원 18명, 홍지선 국토교통부 2차관과 박재희 한국공항공사 사장직무대행, 김유진 유가족협의회 대표 및 유가족 등 100여 명이 동행했다.
오후 첫 현장은 활주로 인근 조류충돌 예방 활동 구역이었다. 공항 측은 항공기 이착륙 전 유도로와 활주로를 중심으로 조류 퇴치 작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관제탑과 교신해 인력을 투입한다고 설명했다. 설명 도중 한 유가족이 공항 관계자의 마이크를 뺏어들고 "이걸 지금 왜 들어야 하느냐"며 강하게 항의했다. 현재 예방 체계가 아니라 사고 당일 조류 퇴치 인력이 어디에 있었고, 어떤 판단이 내려졌는지를 먼저 밝히라는 요구였다.
유가족들은 "설명이 아니라 그날 있었던 일만 말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일부 의원들도 당시 인력 배치와 실제 대응 과정을 집중적으로 질의했다.
공항 측은 사고 당시 조류 퇴치 인력이 2교대로 운영됐으며, 전날 오후 6시부터 익일 오전 9시까지 1명이 근무하고 이후 교대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현재는 인력을 증원해 상시 다수 인력이 투입되도록 개선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유가족들은 "그때는 뭐하고 지금에서야, 왜 막지 못했느냐"며 분노를 터트렸다.
이어 방문한 로컬라이저 현장에서는 콘크리트 둔덕의 설치 시기와 구조적 특성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일부 의원들은 직접 구조물 인근에 올라 콘크리트 기둥과 상판을 살펴봤고, 유가족들은 "이 시설이 위험 요소라는 사실이 현장 종사자들에게 제대로 공유됐느냐"며 관리·감독 책임을 물었다.

국정조사 현장조사를 앞두고 유류품이 수거된 정황을 두고도 강한 반발이 이어졌다. 유가족들은 "로컬라이저 인근에 남아 있던 유류품이 국정조사를 하루 앞두고 치워져 제주항공 측으로 넘겨졌다"며 "어떤 설명도, 통보도 받지 못했다"고 항의했다.
유가족들의 분노는 잔해 보관 장소 조사에서 극에 달했다. 두어 겹의 방수포에 싸여 바닥에 놓인 기체 잔해들을 보며 유가족들은 "사실상 방치했다"고 격렬하게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항공철도사고조사위 조사단장을 밀치는 등 물리적 충돌도 일어났다.

현장조사 이후 열린 간담회에서 유가족들은 이날 확인한 내용을 놓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사고 이후 설명이 번복된 수사 상황, 인력 운영 기준 변화, 잔해·유류품 관리 방식 등을 두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말을 바꾸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유진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세월호 참사는 참사 발생 45일만에 ,이태원 참사는 참사발생 26일만에 국정조사가 열렸지만,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여객기참사는 발생 358일이 지나서야 국정조사가 열렸다"며 "항공 참사라는 이유로 필요한 정보조차 제공받지 못한 채 1년을 버텨왔다. 그 사이 수사와 조사는 지연됐고, 유가족들은 2차 가해 속에 방치됐다"고 호소했다.
이양수 국조특위 위원장은 "오늘 유가족 분들과 함께 둘러봤는데 정말 참담한 심정이다.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내려온 만큼 유가족 분들께서 저희들에게 있는 그대로 낱낱이 알려주시길 바란다. 여러분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 결국 진실을 밝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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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 땅에서 맞는 설···음식·노래·웃음 가득한 고려인마을
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고려인 동포들이 명절 음식을 나눠 먹고 있다. 강주비 기자
“설은 가족과 보내는 날이라고 배웠어요. 여기선 우리 모두가 한가족입니다.”설을 앞둔 광주 고려인마을은 고소한 음식 냄새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고향을 떠나 조상의 땅인 한국에 정착한 고려인 동포들은 둥근 상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노래를 부르며 그들만의 명절을 맞고 있었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고려인 동포들이 명절 음식을 나눠 먹고 있다. 강주비 기자12일 오전 10시30분께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 1층에 들어서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곰탕 냄비와 분주히 오가는 손길이 눈에 들어왔다. 고려인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이곳에서 함께 식사를 하지만, 이날은 설을 앞두고 특별한 명절 상이 차려지고 있었다.상 위에는 전날부터 삶아둔 수육을 넣은 이날의 주메뉴 수육곰탕을 비롯해 미역·고사리나물을 비롯해 당근 김치, 러시아식 토마토 반찬, 만두, 과일, 빵 등 각종 후식까지 가득 올랐다. 준비한 음식은 100인분에 달했다. 모두 같은 고려인 동포들이 나흘 전부터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해 직접 만든 음식들이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지하 강당에서 진행된 노래교실에서 김마리따씨가 우리나라 전통 민요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강주비 기자찹쌀떡을 직접 빚어 고물을 묻히는 모습은, 음식만 다를 뿐 여느 한국 가정의 설 준비와 다르지 않았다.우즈베키스탄 국적 박실바(74)씨는 “집에서는 만들기 어려워 자주 못 먹는 음식들이 있다. 명절만큼은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원하는 음식을 이웃들에게 물어보며 메뉴를 골랐다”며 “무려 나흘 전부터 장을 보고, 음식 손질을 하며 준비했다. 힘들어도 다 같이 둘러앉아 웃으며 준비해 먹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웃어 보였다.같은 시각 센터 지하 강당에서는 또 다른 설맞이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50여명의 고려인들은 책상에 둘러앉아 ‘우리나라 전통공예 체험’에 참여했다. 검은색 손거울 위에 자개 스티커를 붙이며 나전칠기를 배우는 시간이었다.숨을 참으며 조심스럽게 스티커를 붙이던 이들은 이내 완성된 거울을 들여다보며 서로의 작품을 비교했다. “예쁘다”는 감탄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기념사진을 남기는 이들도 있었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지하 강당에서 진행된 전통공예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고려인들이 자개 스티커로 꾸민 손거울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강주비 기자이어, 강당에 전통 민요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든 김마리따(70)씨는 가사를 보지 않고 능숙하게 노래를 이어갔다. 손뼉을 치며 호응하던 고려인들은 이내 후렴구를 함께 따라 불렀다. 이어진 ‘남행열차’ 무대에서는 어깨를 들썩이며 박자를 맞추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서툰 발음이었지만, 누구보다 흥겹고 열정 가득한 노랫소리가 강당을 가득 채웠다.김씨는 “우즈베키스탄에 있을 때 합창단 활동을 하며 아리랑과 남행열차를 배웠다”며 “한국에 설을 지내며 이 노래를 부르니 고향 생각도 나고 더 뜻깊다. 이렇게 동포들과 함께하니 외롭지 않다”고 전했다.프로그램이 끝나자, 고려인들은 일제히 1층으로 향했다. 빈틈이 없을 만큼 각종 음식으로 가득 채워진 상에 둘러앉아 서로의 그릇에 수육을 덜어주고 반찬을 권하는 따뜻한 풍경이 펼쳐졌다. 러시아어와 한국어가 섞인 대화 속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고향에서의 추억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한국에서의 생활을 공유하기도 했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 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고려인들이 함께 먹을 음식들을 준비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이날 2월에 생일인 7명을 위한 작은 생일파티도 마련됐다. 러시아 생일축하 노래가 울려 퍼졌고, 케이크에 꽂힌 초를 함께 불었다. 생일자들은 쑥스러운 듯 웃었고, 주변에서는 박수가 쏟아졌다. 생일 선물로 마련된 칫솔·치약 세트와 마스크, 상비약 등 생필품 꾸러미도 전달됐다.매주 센터를 찾는다는 최벨라(71)씨는 “평소에도 이곳에 오면 늘 기분이 좋은데, 명절에 이렇게 모여 노래하고 음식을 나누니 더 행복하다”며 “남편과 딸, 손자와 함께 이 마을에서 10년째 살고 있다. 올해도 가족 모두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러시아에 있을 때는 설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한국에 와서 설 문화를 배웠고, 이제는 우리들도 매년 집이나 식당에서 잔칫상을 차리고 춤추고 노래하며 우리만의 설을 보낸다. 러시아에서는 명절에 물만두를 먹지만, 이제는 한국 문화를 따라 떡국도 함께 먹는다”며 “동포들이 이곳에 와서 맛있게 먹고 즐기며 웃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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