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노린 직장인·학생 줄어
작년 1만8천여명 헌혈 전년비 절반↓
5일치 정상...지역 혈액보유량 2.8일뿐

"새해 들어서자마자 발길이 끊겼어요. 헌혈이 최근 매년 줄고는 있다지만 이렇게 텅 빈 적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워요."
12일 오후 12시께 찾은 광주 북구 헌혈의집 전대용봉센터. 점심시간을 노려 헌혈하려던 학생과 직장인들이 북적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텅 빈 채혈실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헌혈을 하기 위한 사전 검사를 진행하는 검진실에도 차례를 기다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헌혈 참여 감소 자체는 매년 반복돼 온 일이지만, 대학생들이 방학에 들어선 점을 고려하더라도 새해 초부터 이처럼 한산한 풍경은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헌혈의집 전대용봉센터는 인근에 북구청 등 관공서와 전남대학교 등이 있어 평소 점심시간이면 직장인과 학생들의 발길이 이어지던 곳이다. 일회성 헌혈자 외에도 센터를 찾아 꾸준히 헌혈해 주던 이들도 기존 50명에서 10명으로 줄었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까지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헌혈을 위해 센터 문을 연 사람은 2명뿐이었다.
전남대학교 재학생인 송진홍(27)씨는 "자격증 준비로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친구와 점심시간을 방문했다. 교내 자기계발활동기록부가 있어 봉사활동 시간을 채워야 학교에서 연계하는 인턴십 프로그램에 지원할 수 있어 헌혈의집을 찾았다"며 "와보니 사람이 너무 없어서 놀랐다. 지역에 혈액이 부족하다고 들었는데 주변 친구들에게도 헌혈 참여를 권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현미 헌혈의집 전대용봉센터 간호사는 "과거에는 하루 100여 명이 헌혈을 하러 오기도 했는데, 코로나19 이후 60명대로 줄었고 지난해에는 하루 평균 40명도 채우기 어려웠다"며 "예전에는 학생들이 주축이 돼 헌혈 참여가 이어졌지만 외부 봉사활동 인정이 줄어들면서 고등학생 헌혈이 사실상 끊겼고, 대학생도 학령인구 감소로 점점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10대에 이어 20대 헌혈 참여까지 감소하는 흐름"이라며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직원들은 헌혈을 하면 공가를 사용할 수 있어 비교적 참여가 이어지지만, 일반 기업은 이런 제도가 없어 현실적으로 헌혈에 나서기 쉽지 않다. 헌혈 활성화와 청년층 참여 확대를 위해서는 일반 직장인들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해 헌혈의집 전대용봉센터를 찾은 헌혈자는 1만8천200여 명으로, 전년 2만2천800여 명에 비해 1년 새 4천500여명이 주는 등 급감했다.
헌혈 감소는 전대용봉센터뿐 아니라 지역 헌혈의집 대부분이 겪고 있는 문제로 이는 곧바로 지역 혈액 수급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혈액원에 따르면 이날 오전 12시 기준 광주·전남지역 혈액보유량은 2.8일분으로, 보건복지부 권장 기준인 5일분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이달 들어 혈액보유량은 하루 평균 2.7일분에 머물며 위기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혈액원은 추운 날씨와 동계 방학이 겹치면서 이달 말까지 혈액 수급 상황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지난해 12월 12일부터 이날까지 1개월간 광주·전남 혈액 보유량이 평균 4일분 미만 지속 상태가 되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과 2020년 1월 이후 가장 적은 혈액 보유량이다.
특히 지난 해 추석 이후 의료기관 수술 건수 중가 등으로 수혈용 혈액 수요 증가에 비해 헌혈자 수는 증가하지 않고 있다. 2025년에는 광주·전남 헌혈자수가 전년 19만2천586명 대비18만3천217명으로 4.9% 감소했으며, 특히 10대와 20대 헌혈자수는 각각 9.5%, 9.3% 감소하는 등 평균을 크게 상회했다.
박진성 광주전남혈액원장은 "저출산 가속화로 인한 10대, 20대 젊은 헌혈자 감소하고 있다. 동절기는 매년 혈액 수급에 어려움이 반복되는데 응급 수술과 중증 환자 치료에 차질이 없도록 광주·전남 시민들의 헌혈 참여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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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 땅에서 맞는 설···음식·노래·웃음 가득한 고려인마을
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고려인 동포들이 명절 음식을 나눠 먹고 있다. 강주비 기자
“설은 가족과 보내는 날이라고 배웠어요. 여기선 우리 모두가 한가족입니다.”설을 앞둔 광주 고려인마을은 고소한 음식 냄새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고향을 떠나 조상의 땅인 한국에 정착한 고려인 동포들은 둥근 상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노래를 부르며 그들만의 명절을 맞고 있었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고려인 동포들이 명절 음식을 나눠 먹고 있다. 강주비 기자12일 오전 10시30분께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 1층에 들어서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곰탕 냄비와 분주히 오가는 손길이 눈에 들어왔다. 고려인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이곳에서 함께 식사를 하지만, 이날은 설을 앞두고 특별한 명절 상이 차려지고 있었다.상 위에는 전날부터 삶아둔 수육을 넣은 이날의 주메뉴 수육곰탕을 비롯해 미역·고사리나물을 비롯해 당근 김치, 러시아식 토마토 반찬, 만두, 과일, 빵 등 각종 후식까지 가득 올랐다. 준비한 음식은 100인분에 달했다. 모두 같은 고려인 동포들이 나흘 전부터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해 직접 만든 음식들이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지하 강당에서 진행된 노래교실에서 김마리따씨가 우리나라 전통 민요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강주비 기자찹쌀떡을 직접 빚어 고물을 묻히는 모습은, 음식만 다를 뿐 여느 한국 가정의 설 준비와 다르지 않았다.우즈베키스탄 국적 박실바(74)씨는 “집에서는 만들기 어려워 자주 못 먹는 음식들이 있다. 명절만큼은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원하는 음식을 이웃들에게 물어보며 메뉴를 골랐다”며 “무려 나흘 전부터 장을 보고, 음식 손질을 하며 준비했다. 힘들어도 다 같이 둘러앉아 웃으며 준비해 먹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웃어 보였다.같은 시각 센터 지하 강당에서는 또 다른 설맞이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50여명의 고려인들은 책상에 둘러앉아 ‘우리나라 전통공예 체험’에 참여했다. 검은색 손거울 위에 자개 스티커를 붙이며 나전칠기를 배우는 시간이었다.숨을 참으며 조심스럽게 스티커를 붙이던 이들은 이내 완성된 거울을 들여다보며 서로의 작품을 비교했다. “예쁘다”는 감탄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기념사진을 남기는 이들도 있었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지하 강당에서 진행된 전통공예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고려인들이 자개 스티커로 꾸민 손거울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강주비 기자이어, 강당에 전통 민요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든 김마리따(70)씨는 가사를 보지 않고 능숙하게 노래를 이어갔다. 손뼉을 치며 호응하던 고려인들은 이내 후렴구를 함께 따라 불렀다. 이어진 ‘남행열차’ 무대에서는 어깨를 들썩이며 박자를 맞추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서툰 발음이었지만, 누구보다 흥겹고 열정 가득한 노랫소리가 강당을 가득 채웠다.김씨는 “우즈베키스탄에 있을 때 합창단 활동을 하며 아리랑과 남행열차를 배웠다”며 “한국에 설을 지내며 이 노래를 부르니 고향 생각도 나고 더 뜻깊다. 이렇게 동포들과 함께하니 외롭지 않다”고 전했다.프로그램이 끝나자, 고려인들은 일제히 1층으로 향했다. 빈틈이 없을 만큼 각종 음식으로 가득 채워진 상에 둘러앉아 서로의 그릇에 수육을 덜어주고 반찬을 권하는 따뜻한 풍경이 펼쳐졌다. 러시아어와 한국어가 섞인 대화 속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고향에서의 추억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한국에서의 생활을 공유하기도 했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 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고려인들이 함께 먹을 음식들을 준비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이날 2월에 생일인 7명을 위한 작은 생일파티도 마련됐다. 러시아 생일축하 노래가 울려 퍼졌고, 케이크에 꽂힌 초를 함께 불었다. 생일자들은 쑥스러운 듯 웃었고, 주변에서는 박수가 쏟아졌다. 생일 선물로 마련된 칫솔·치약 세트와 마스크, 상비약 등 생필품 꾸러미도 전달됐다.매주 센터를 찾는다는 최벨라(71)씨는 “평소에도 이곳에 오면 늘 기분이 좋은데, 명절에 이렇게 모여 노래하고 음식을 나누니 더 행복하다”며 “남편과 딸, 손자와 함께 이 마을에서 10년째 살고 있다. 올해도 가족 모두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러시아에 있을 때는 설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한국에 와서 설 문화를 배웠고, 이제는 우리들도 매년 집이나 식당에서 잔칫상을 차리고 춤추고 노래하며 우리만의 설을 보낸다. 러시아에서는 명절에 물만두를 먹지만, 이제는 한국 문화를 따라 떡국도 함께 먹는다”며 “동포들이 이곳에 와서 맛있게 먹고 즐기며 웃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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