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정계 등 50명 참석
강기정 "추모공간 논의하겠다"
"참사 기억할 추모사업 필요"

"딸아이 졸업식, 수능…. 이럴 때 많이 생각나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그리워요."
6명의 희생자를 낸 광주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 참사 4주기 추모식이 11일 참사 현장 인근에서 엄수됐다. 희생자들을 기리고 참사의 책임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이어진 이날 자리에서 유가족들은 추모공간 마련 약속 이행과 행정의 책임 있는 중재를 다시 촉구했다.
이날 추모식은 사고 현장인 아이파크 201호 앞 금호하이빌 1층 상가에서 진행됐다. 오전 10시 위령제를 시작으로 오후 3시 추모식까지 이어졌으며 유가족과 시민단체, 정치권 인사, 광주대표도서관 붕괴 사고 유가족 등 50여명이 참석해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위령제에는 강기정 광주시장, 김이강 서구청장, 조인철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등이 분향소를 찾았다. 강 시장은 유가족 건의 사항인 추모공간 마련에 관해 "아파트 내는 어렵더라도 인근 도로나 공공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서구청과 논의해보겠다"고 답했다.
추모식은 '설동주·오갑환·김상현·김호성·김인태·유길성' 등 6명의 희생자 이름이 차례로 호명되며 시작됐다. 짧지 않은 4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추모식에 참석한 유가족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격한 감정 대신 꾹 눌러 참는 표정, 먼저 떠난 가족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고개를 떨구는 모습이 추모식 내내 이어졌다.

2022년 1월11일 참사 당일을 떠올리게 하는 추운 날씨도 당시 기억을 환기했다. 차가운 칼바람이 분향소 앞을 스쳐 지나가는 동안에도 유가족들은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사고로 남편을 잃은 유가족 A씨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아이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더 선명해진다. 너무 보고 싶은 날은 남편한테 문자를 보낸다. 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남편 전화번호는 못 없애겠더라"며 "화정동 아이파크 참사 이후 연이어 붕괴 사고들이 발생했다. 광주는 도대체 왜 이럴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한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이런 사고는 더이상 일어나선 안된다"고 씁쓸해 했다.
희생자의 제자인 김모(26)씨는 "참사 희생자 분 중에 제가 다녔던 합기도 관장님이 계셨다. 사고 당시에는 붕괴 현장에 관장님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전혀하지 않았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수색이 길어지면서 저에게도 관장님 소식이 전해졌는데 누가 머리 한대를 때린듯한 충격이었다. 관장님의 가르침과 관장님을 잊지 않는 게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해 나왔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추모사에 나선 안정호 희생자가족협의회 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사라지고, 우리는 또다시 같은 아픔의 역사 앞에 서게 된다"며 "4년 전 텐트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시간이 이 자리에 서니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말했다.
이어 "전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전대미문의 붕괴 사고를 내고도 가해 기업은 흔적을 지우고 잊으라 강요하고 있다"며 "그러나 지운다고 해서 사라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떠나지 않고 이 자리에 남아 감시하고 반성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유가족의 요구는 단 하나, 참사를 기억하고 기록하자는 아주 소박한 바람뿐"이라며 "HDC현대산업개발은 화정동과 학동, 서동 등 앞으로도 광주에서 향후 10년간 아파트 공사를 진행하게 된다. 이는 유가족만의 일이 아니라 광주 시민사회 모두가 함께 짊어져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날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 참사 4주기 추모식에는 광주대표도서관 붕괴 사고 유가족도 참석해 힘을 보탰다.
마지막으로 발견된 희생자의 사위인 유가족 B씨는 "광주대표도서관처럼 화정동 아이파크도 완공된 후에 사고가 일어났으면 더 큰 사고로 이어졌겠나. 애초에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광주시는 공개해야 할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고 앞으로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대책위원회를 결성해 전국적으로 선례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울먹였다.
이번 4주기 추모식은 사고 현장인 아이파크 201호 앞까지 이어진 짧은 행진으로 마무리됐다.
화정 아이파크 붕괴 참사는 지난 2022년 1월11일 광주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 201동 신축 공사 현장에서 39층 옥상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 바닥과 외벽 등 구조물이 무너지며 16개 층이 연쇄 붕괴된 사고다. 이 사고로 작업자 6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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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 땅에서 맞는 설···음식·노래·웃음 가득한 고려인마을
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고려인 동포들이 명절 음식을 나눠 먹고 있다. 강주비 기자
“설은 가족과 보내는 날이라고 배웠어요. 여기선 우리 모두가 한가족입니다.”설을 앞둔 광주 고려인마을은 고소한 음식 냄새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고향을 떠나 조상의 땅인 한국에 정착한 고려인 동포들은 둥근 상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노래를 부르며 그들만의 명절을 맞고 있었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고려인 동포들이 명절 음식을 나눠 먹고 있다. 강주비 기자12일 오전 10시30분께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 1층에 들어서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곰탕 냄비와 분주히 오가는 손길이 눈에 들어왔다. 고려인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이곳에서 함께 식사를 하지만, 이날은 설을 앞두고 특별한 명절 상이 차려지고 있었다.상 위에는 전날부터 삶아둔 수육을 넣은 이날의 주메뉴 수육곰탕을 비롯해 미역·고사리나물을 비롯해 당근 김치, 러시아식 토마토 반찬, 만두, 과일, 빵 등 각종 후식까지 가득 올랐다. 준비한 음식은 100인분에 달했다. 모두 같은 고려인 동포들이 나흘 전부터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해 직접 만든 음식들이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지하 강당에서 진행된 노래교실에서 김마리따씨가 우리나라 전통 민요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강주비 기자찹쌀떡을 직접 빚어 고물을 묻히는 모습은, 음식만 다를 뿐 여느 한국 가정의 설 준비와 다르지 않았다.우즈베키스탄 국적 박실바(74)씨는 “집에서는 만들기 어려워 자주 못 먹는 음식들이 있다. 명절만큼은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원하는 음식을 이웃들에게 물어보며 메뉴를 골랐다”며 “무려 나흘 전부터 장을 보고, 음식 손질을 하며 준비했다. 힘들어도 다 같이 둘러앉아 웃으며 준비해 먹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웃어 보였다.같은 시각 센터 지하 강당에서는 또 다른 설맞이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50여명의 고려인들은 책상에 둘러앉아 ‘우리나라 전통공예 체험’에 참여했다. 검은색 손거울 위에 자개 스티커를 붙이며 나전칠기를 배우는 시간이었다.숨을 참으며 조심스럽게 스티커를 붙이던 이들은 이내 완성된 거울을 들여다보며 서로의 작품을 비교했다. “예쁘다”는 감탄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기념사진을 남기는 이들도 있었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지하 강당에서 진행된 전통공예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고려인들이 자개 스티커로 꾸민 손거울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강주비 기자이어, 강당에 전통 민요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든 김마리따(70)씨는 가사를 보지 않고 능숙하게 노래를 이어갔다. 손뼉을 치며 호응하던 고려인들은 이내 후렴구를 함께 따라 불렀다. 이어진 ‘남행열차’ 무대에서는 어깨를 들썩이며 박자를 맞추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서툰 발음이었지만, 누구보다 흥겹고 열정 가득한 노랫소리가 강당을 가득 채웠다.김씨는 “우즈베키스탄에 있을 때 합창단 활동을 하며 아리랑과 남행열차를 배웠다”며 “한국에 설을 지내며 이 노래를 부르니 고향 생각도 나고 더 뜻깊다. 이렇게 동포들과 함께하니 외롭지 않다”고 전했다.프로그램이 끝나자, 고려인들은 일제히 1층으로 향했다. 빈틈이 없을 만큼 각종 음식으로 가득 채워진 상에 둘러앉아 서로의 그릇에 수육을 덜어주고 반찬을 권하는 따뜻한 풍경이 펼쳐졌다. 러시아어와 한국어가 섞인 대화 속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고향에서의 추억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한국에서의 생활을 공유하기도 했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 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고려인들이 함께 먹을 음식들을 준비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이날 2월에 생일인 7명을 위한 작은 생일파티도 마련됐다. 러시아 생일축하 노래가 울려 퍼졌고, 케이크에 꽂힌 초를 함께 불었다. 생일자들은 쑥스러운 듯 웃었고, 주변에서는 박수가 쏟아졌다. 생일 선물로 마련된 칫솔·치약 세트와 마스크, 상비약 등 생필품 꾸러미도 전달됐다.매주 센터를 찾는다는 최벨라(71)씨는 “평소에도 이곳에 오면 늘 기분이 좋은데, 명절에 이렇게 모여 노래하고 음식을 나누니 더 행복하다”며 “남편과 딸, 손자와 함께 이 마을에서 10년째 살고 있다. 올해도 가족 모두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러시아에 있을 때는 설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한국에 와서 설 문화를 배웠고, 이제는 우리들도 매년 집이나 식당에서 잔칫상을 차리고 춤추고 노래하며 우리만의 설을 보낸다. 러시아에서는 명절에 물만두를 먹지만, 이제는 한국 문화를 따라 떡국도 함께 먹는다”며 “동포들이 이곳에 와서 맛있게 먹고 즐기며 웃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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