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건설 구조 발주자 책임 최소화
안전 하류로 전가 '하방 악순화 구조'
"건안법 제정 올해 반드시 이뤄져야"
유가족, 광주시에 책임 있는 대응 주문

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광주대표도서관 붕괴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건설현장에서 발주자의 안전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8일 오후 광주 동구 전일빌딩245에서는 '광주대표도서관 참사 건설사고의 근본 원인과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필요성'을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광주전남건설지부가 주관하고, 정의당·녹색당 등 정당 관계자와 광주전남노동안전보건지킴이 등 시민단체가 공동 주최해 건설사고의 구조적 원인과 제도 개선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발제를 맡은 안홍섭 한국건설안전학회장은 "우리나라 건설사고는 기술이 없어서 발생하는 사고가 아니라, 기술이 작동할 수 없는 조건에서 공사가 진행되는 구조에서 발생한다"며 "공사 기간과 공사비가 발주 단계에서 과도하게 압축된 상태로 결정되고, 그 부담이 설계·시공·감리·현장으로 연쇄 전가되는 구조가 사고 위험을 상시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발주자가 공기(工期)와 공사비, 설계 변경 여부 등 핵심적인 결정을 주도하면서도 사고 발생 시 책임에서는 한발 물러나 있는 현행 구조를 근본 문제로 지적했다.
안 회장은 "발주자는 낮은 수준의 시공 역량을 전제로 업체를 선정해 놓고, 감리 담당자에게는 과도한 감독 책임을 요구하는 구조"라며 "감리가 현장에서 역할을 다하려 하면 공사 지연과 비용 문제로 배제되는 현실에서 안전을 우선하는 의사결정은 구조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광주대표도서관 붕괴 사고 역시 이러한 구조 속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안 회장은 "설계 변경과 공정 압박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시공 단계의 구조 안전 검토와 관리가 충분히 작동했는지 점검해야 한다"며 "사고 원인을 특정 공정 하나로 좁히는 접근은 문제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공 발주 공사에서도 공기와 예산 압박이 우선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며 "2년 주기로 순환하는 공무원 개인의 책임 문제가 아니라, 발주와 관리 체계 전반이 안전을 우선하도록 설계돼 있는지를 되묻는 것이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또 안 회장은 "도산에 내몰린 기업일수록 저가 수주에 나서고, 그 부담은 하류 단계로 갈수록 집중된다"며 "마지막 단계에 있는 기능 인력이 모든 위험과 손실을 떠안는 하방 악순환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의 시급성도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강한수 민주노총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그동안 건설 안전 문제는 사고 이후 처벌과 단속에만 초점이 맞춰져 왔다.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발주 단계에서부터 책임이 작동하는 구조적 예방 체계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올해 반드시 제정하지 않으면 또다시 입법 시기를 놓칠 수 있는 만큼, 지금이 제도를 바꿀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선 이승철 민주노총 광주전남건설지부 형틀1분회장도 "안전을 강조할수록 작업이 중단되고 물량이 줄어드는 구조에서, 그 부담은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돌아온다"며 "안전을 지키면 일감이 줄고 임금이 깎이는 모순적인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현장의 안전도 달라지기 어렵다"고 현장 현실을 전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광주대표도서관 붕괴 참사 희생자 유가족도 참석했다.
4번째로 발견된 희생자 유가족은 "그저 한명의 국민이자, 두 딸아이의 아빠로서 딸들과 어떤 공간에 가더라도 걱정없이 다니고 싶다"며 "이번 사고에서 광주시는 책임에서 뒤로 물러나있다. 초반 적극적인 협조와 제도마련을 하겠다고 했으나, 현재는 투명하게 공개 되어야 할 사업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등 처음과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어 서운함이 크다. 수사기관이 아니어도 사고조사위원회 등 건설업 종사자들이 해당 사고의 원인을 공부하고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정보공개를 할 것을 요구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광주시는 초반 사고대책위원회 TF구조로 계획을 하고있다고 약속했으나 실행이 되지 않고 있다. 적극적으로 실행해주시고 저희들에게 내용을 잘 공유해주시길 바란다"며 광주시의 책임 있는 대응과 정보 공개를 촉구했다.
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
조상 땅에서 맞는 설···음식·노래·웃음 가득한 고려인마을
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고려인 동포들이 명절 음식을 나눠 먹고 있다. 강주비 기자
“설은 가족과 보내는 날이라고 배웠어요. 여기선 우리 모두가 한가족입니다.”설을 앞둔 광주 고려인마을은 고소한 음식 냄새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고향을 떠나 조상의 땅인 한국에 정착한 고려인 동포들은 둥근 상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노래를 부르며 그들만의 명절을 맞고 있었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고려인 동포들이 명절 음식을 나눠 먹고 있다. 강주비 기자12일 오전 10시30분께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 1층에 들어서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곰탕 냄비와 분주히 오가는 손길이 눈에 들어왔다. 고려인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이곳에서 함께 식사를 하지만, 이날은 설을 앞두고 특별한 명절 상이 차려지고 있었다.상 위에는 전날부터 삶아둔 수육을 넣은 이날의 주메뉴 수육곰탕을 비롯해 미역·고사리나물을 비롯해 당근 김치, 러시아식 토마토 반찬, 만두, 과일, 빵 등 각종 후식까지 가득 올랐다. 준비한 음식은 100인분에 달했다. 모두 같은 고려인 동포들이 나흘 전부터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해 직접 만든 음식들이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지하 강당에서 진행된 노래교실에서 김마리따씨가 우리나라 전통 민요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강주비 기자찹쌀떡을 직접 빚어 고물을 묻히는 모습은, 음식만 다를 뿐 여느 한국 가정의 설 준비와 다르지 않았다.우즈베키스탄 국적 박실바(74)씨는 “집에서는 만들기 어려워 자주 못 먹는 음식들이 있다. 명절만큼은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원하는 음식을 이웃들에게 물어보며 메뉴를 골랐다”며 “무려 나흘 전부터 장을 보고, 음식 손질을 하며 준비했다. 힘들어도 다 같이 둘러앉아 웃으며 준비해 먹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웃어 보였다.같은 시각 센터 지하 강당에서는 또 다른 설맞이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50여명의 고려인들은 책상에 둘러앉아 ‘우리나라 전통공예 체험’에 참여했다. 검은색 손거울 위에 자개 스티커를 붙이며 나전칠기를 배우는 시간이었다.숨을 참으며 조심스럽게 스티커를 붙이던 이들은 이내 완성된 거울을 들여다보며 서로의 작품을 비교했다. “예쁘다”는 감탄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기념사진을 남기는 이들도 있었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지하 강당에서 진행된 전통공예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고려인들이 자개 스티커로 꾸민 손거울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강주비 기자이어, 강당에 전통 민요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든 김마리따(70)씨는 가사를 보지 않고 능숙하게 노래를 이어갔다. 손뼉을 치며 호응하던 고려인들은 이내 후렴구를 함께 따라 불렀다. 이어진 ‘남행열차’ 무대에서는 어깨를 들썩이며 박자를 맞추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서툰 발음이었지만, 누구보다 흥겹고 열정 가득한 노랫소리가 강당을 가득 채웠다.김씨는 “우즈베키스탄에 있을 때 합창단 활동을 하며 아리랑과 남행열차를 배웠다”며 “한국에 설을 지내며 이 노래를 부르니 고향 생각도 나고 더 뜻깊다. 이렇게 동포들과 함께하니 외롭지 않다”고 전했다.프로그램이 끝나자, 고려인들은 일제히 1층으로 향했다. 빈틈이 없을 만큼 각종 음식으로 가득 채워진 상에 둘러앉아 서로의 그릇에 수육을 덜어주고 반찬을 권하는 따뜻한 풍경이 펼쳐졌다. 러시아어와 한국어가 섞인 대화 속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고향에서의 추억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한국에서의 생활을 공유하기도 했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 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고려인들이 함께 먹을 음식들을 준비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이날 2월에 생일인 7명을 위한 작은 생일파티도 마련됐다. 러시아 생일축하 노래가 울려 퍼졌고, 케이크에 꽂힌 초를 함께 불었다. 생일자들은 쑥스러운 듯 웃었고, 주변에서는 박수가 쏟아졌다. 생일 선물로 마련된 칫솔·치약 세트와 마스크, 상비약 등 생필품 꾸러미도 전달됐다.매주 센터를 찾는다는 최벨라(71)씨는 “평소에도 이곳에 오면 늘 기분이 좋은데, 명절에 이렇게 모여 노래하고 음식을 나누니 더 행복하다”며 “남편과 딸, 손자와 함께 이 마을에서 10년째 살고 있다. 올해도 가족 모두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러시아에 있을 때는 설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한국에 와서 설 문화를 배웠고, 이제는 우리들도 매년 집이나 식당에서 잔칫상을 차리고 춤추고 노래하며 우리만의 설을 보낸다. 러시아에서는 명절에 물만두를 먹지만, 이제는 한국 문화를 따라 떡국도 함께 먹는다”며 “동포들이 이곳에 와서 맛있게 먹고 즐기며 웃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 · “쥐똥에, 중요 장치 방치까지”...1년 넘게 버려둔 항공기 잔해에 유가족 ‘분통’
- · “베트남 처녀 수입” 진도군수 망언 이후...세대 갈린 진도 민심
- · 광주 아파트서 고양이 토막 사체···잔혹해지는 동물학대
- · 광주역 열차 멈출까···신안철교 재가설에 ‘운행 중단’ 검토, 노조 '반발'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