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라이저 앞에서 생일케잌…"왜 돌아오지 않아" 곡소리도

"잘 키워놨는데… 잘 가라. 아들아. 잘 가."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지 꼭 1년이 된 29일 오전 8시 무안국제공항. 참사 이후 한동안 적막만 맴돌던 공항으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말없이 들어섰다. 공항은 1주기를 추모하기 위한 유가족과 시민들의 울음으로 채워졌다.

이날 공항 외부에는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 명찰을 받으려는 시민 1천200여명이 긴 줄을 이뤘다. 노부부부터 아이의 손을 잡은 가족까지,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었다. 추모식 전날 서울에서 무안에 도착한 권지연(33)씨도 줄 끝에 서 있었다. 권씨는 "꼭 참여하고 싶어서 직장에 연차를 내고 내려왔다. 전날 위령제에도 참석했다"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는데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상규명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 분하다. 유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싶었다"고 말한 뒤 눈시울을 붉혔다.
공항 1층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분향소가 눈에 들어왔다.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위패 앞에 서면 누구도 오래 머물지 못했다. 고개를 깊이 숙이거나 합장한 뒤 조용히 자리를 비웠다. 분향을 마치고도 쉽게 돌아서지 못한 이들은 한참을 서 있다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위패 앞에는 국화꽃과 함께 생전 좋아했을 법한 과자와 음료가 놓여 있었다.

전북에서 온 박안수(64)씨와 이두례(62)씨 부부는 참사 당시 무안에서 여행 중이었다. 박씨는 "비행기가 불에 타는 모습도, 완전히 부서진 장면도 직접 봤다. 그날 이후 나에게도 트라우마로 남았다"며 "1년이 지나면서 모든 게 해결된 줄 알았는데, 아직도 유가족들이 공항에 텐트를 치고 계신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너무 몰랐던 것 같아 죄송한 마음뿐"이라고 고개를 떨궜다.
추모식이 시작되기 전부터 공항 안은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 오전 9시3분, 추모사이렌이 울리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1분 남짓한 침묵이 끝나자 훌쩍이는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추모 영상 '집으로 가는 길'에서 179명의 희생자 이름이 하나하나 불리자 "왜 아직도 집에 못 가게 하느냐", "돌려내라"는 울부짖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유가족들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오열했고, 함께 온 가족의 부축을 받기도 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도 함께했다. 이태원 참사로 24살 딸을 잃은 정미라(49)씨는 "국가가 안전을 제대로 관리했다면 이태원도, 무안공항도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며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르는 현실이 너무 닮아 있다.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삶은 매일이 지옥이다. 하루빨리 국가가 나서 진상규명을 해달라"고 말했다.
오후 2시께 유가족들은 은 피해 규모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돼 온 활주로 로컬라이저 둔덕으로 이동했다. 콘크리트 둔덕에 가까워질 수록 유가족들의 곡소리는 커졌다. 허허벌판 한 구석에 시간이 멈춘 듯 산산이 부서진 콘크리트 둔덕과 사방으로 튄 파편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1년이 지났지만 현장은 여전히 사고 직후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유가족들의 발걸음은 둔덕 앞에서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몇몇 유가족들은 허리를 굽힌 채 흙을 손으로 헤치며 바닥을 살폈다. 혹시라도 남아 있을지 모를 가족의 물건을 찾는 듯한 모습이었다. 둔덕 주변에서 12월에 태어난 희생자 16명을 기리는 작은 추모도 이어졌다. 유가족들은 살아 있었다면 생일을 맞았을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불러가며 생일 초에 불을 붙였다. 생일 축하 노래가 조심스럽게 시작됐지만, 노래는 이내 울음에 묻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유가족들은 먼저 떠난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모은 박스 주변에 흰 국화 한 송이씩 헌화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한 유가족의 하늘을 향해 소리쳤고 이어 "잘가"라며 유가족들의 말이 이어졌다. 편지가 담긴 박스는 하늘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기 위해 태워졌다.
사고로 부모를 잃은 고지연(48)씨는 구조물을 한참 바라보다 고개를 떨궜다. 고씨는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인데, 실제로 보니 너무 커서 화가 난다. 저런 구조물을 활주로 끝에 뒀다는 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저것만 없었어도 살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그는 "혹시라도 부모님 물건이 남아 있을까 싶어 바닥을 여러 번 살펴봤다. 작은 흔적이라도 있을 것 같아서 눈을 떼지 못했다"고 했다.
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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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 땅에서 맞는 설···음식·노래·웃음 가득한 고려인마을
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고려인 동포들이 명절 음식을 나눠 먹고 있다. 강주비 기자
“설은 가족과 보내는 날이라고 배웠어요. 여기선 우리 모두가 한가족입니다.”설을 앞둔 광주 고려인마을은 고소한 음식 냄새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고향을 떠나 조상의 땅인 한국에 정착한 고려인 동포들은 둥근 상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노래를 부르며 그들만의 명절을 맞고 있었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고려인 동포들이 명절 음식을 나눠 먹고 있다. 강주비 기자12일 오전 10시30분께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 1층에 들어서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곰탕 냄비와 분주히 오가는 손길이 눈에 들어왔다. 고려인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이곳에서 함께 식사를 하지만, 이날은 설을 앞두고 특별한 명절 상이 차려지고 있었다.상 위에는 전날부터 삶아둔 수육을 넣은 이날의 주메뉴 수육곰탕을 비롯해 미역·고사리나물을 비롯해 당근 김치, 러시아식 토마토 반찬, 만두, 과일, 빵 등 각종 후식까지 가득 올랐다. 준비한 음식은 100인분에 달했다. 모두 같은 고려인 동포들이 나흘 전부터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해 직접 만든 음식들이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지하 강당에서 진행된 노래교실에서 김마리따씨가 우리나라 전통 민요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강주비 기자찹쌀떡을 직접 빚어 고물을 묻히는 모습은, 음식만 다를 뿐 여느 한국 가정의 설 준비와 다르지 않았다.우즈베키스탄 국적 박실바(74)씨는 “집에서는 만들기 어려워 자주 못 먹는 음식들이 있다. 명절만큼은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원하는 음식을 이웃들에게 물어보며 메뉴를 골랐다”며 “무려 나흘 전부터 장을 보고, 음식 손질을 하며 준비했다. 힘들어도 다 같이 둘러앉아 웃으며 준비해 먹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웃어 보였다.같은 시각 센터 지하 강당에서는 또 다른 설맞이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50여명의 고려인들은 책상에 둘러앉아 ‘우리나라 전통공예 체험’에 참여했다. 검은색 손거울 위에 자개 스티커를 붙이며 나전칠기를 배우는 시간이었다.숨을 참으며 조심스럽게 스티커를 붙이던 이들은 이내 완성된 거울을 들여다보며 서로의 작품을 비교했다. “예쁘다”는 감탄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기념사진을 남기는 이들도 있었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지하 강당에서 진행된 전통공예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고려인들이 자개 스티커로 꾸민 손거울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강주비 기자이어, 강당에 전통 민요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든 김마리따(70)씨는 가사를 보지 않고 능숙하게 노래를 이어갔다. 손뼉을 치며 호응하던 고려인들은 이내 후렴구를 함께 따라 불렀다. 이어진 ‘남행열차’ 무대에서는 어깨를 들썩이며 박자를 맞추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서툰 발음이었지만, 누구보다 흥겹고 열정 가득한 노랫소리가 강당을 가득 채웠다.김씨는 “우즈베키스탄에 있을 때 합창단 활동을 하며 아리랑과 남행열차를 배웠다”며 “한국에 설을 지내며 이 노래를 부르니 고향 생각도 나고 더 뜻깊다. 이렇게 동포들과 함께하니 외롭지 않다”고 전했다.프로그램이 끝나자, 고려인들은 일제히 1층으로 향했다. 빈틈이 없을 만큼 각종 음식으로 가득 채워진 상에 둘러앉아 서로의 그릇에 수육을 덜어주고 반찬을 권하는 따뜻한 풍경이 펼쳐졌다. 러시아어와 한국어가 섞인 대화 속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고향에서의 추억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한국에서의 생활을 공유하기도 했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 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고려인들이 함께 먹을 음식들을 준비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이날 2월에 생일인 7명을 위한 작은 생일파티도 마련됐다. 러시아 생일축하 노래가 울려 퍼졌고, 케이크에 꽂힌 초를 함께 불었다. 생일자들은 쑥스러운 듯 웃었고, 주변에서는 박수가 쏟아졌다. 생일 선물로 마련된 칫솔·치약 세트와 마스크, 상비약 등 생필품 꾸러미도 전달됐다.매주 센터를 찾는다는 최벨라(71)씨는 “평소에도 이곳에 오면 늘 기분이 좋은데, 명절에 이렇게 모여 노래하고 음식을 나누니 더 행복하다”며 “남편과 딸, 손자와 함께 이 마을에서 10년째 살고 있다. 올해도 가족 모두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러시아에 있을 때는 설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한국에 와서 설 문화를 배웠고, 이제는 우리들도 매년 집이나 식당에서 잔칫상을 차리고 춤추고 노래하며 우리만의 설을 보낸다. 러시아에서는 명절에 물만두를 먹지만, 이제는 한국 문화를 따라 떡국도 함께 먹는다”며 “동포들이 이곳에 와서 맛있게 먹고 즐기며 웃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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