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故) 김영철 열사의 자녀 김연우씨가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오월 영령들의 정신을 기렸다.
28일 한국무용가 김연우씨와 공연 제작진 등 11명은 이날 오후 5시께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를 방문해 오월영령을 참배했다.
1948년 순천에서 3남 중 둘째로 태어난 김영철 열사는 1978년 들불야학이 창립되면서 강학들과 친해지기 시작했고 형제처럼 가깝게 지냈다. 야학 수업이 끝나면 윤상원·박효선·박관현·박용준·임낙평 등 열사들은 10평 남짓한 김영철 열사의 집으로 찾아와 사랑방처럼 막걸리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이후 1980년 5월 신군부의 계엄군과 맞서 옛 전남도청에서 끝까지 저항하다 붙잡힌 뒤 갖은 고문을 겪으며 사망했다.
추모탑 분향을 마친 김씨는 직원들과 함께 이동해 고 김영철 열사의 묘역을 참배하며 "아버지께서 걸어오신 들불야학과 항전의 걸음에 감사한다"며 "아버지가 생전에 콜라를 아주 좋아하셨다. 오늘은 술 대신 콜라를 드리겠다"고 말하며 헌화했다.

이후 김씨와 직원들은 김 열사와 함께했던 박효선 열사, 박용준 열사, 박관현 열사, 그리고 영혼결혼식을 맺은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와 박기순 열사, 신영일 열사의 묘역을 차례로 돌며 과거를 되돌아보고 헌화, 그리고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헌화와 묵념을 한 묘역은 김씨에게 큰 의미를 가진다.
아버지를 비롯한 오월 열사들이 김씨의 오월 공연 '별.빛 맞춤' 속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김연우 씨는 "어느덧 5·18민주화운동의 핏빛 역사가 4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또, 다시 한 번 악몽을 안겼던 12·3 비상계엄도 어느덧 4개월을 바라보고 있다"며 "고난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를 바라보며 참담함을 느끼기도 했고, 과거의 상흔이 겹쳐 보이면서 역사는 과거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번 공연을 통해 아버지를 비롯한 오월 영령들이 우리 마음 속에 살아 있음을, 떠난 이들과 살아가는 이들이 공존하면서 미완의 완성을 향해 나아감을 담고 싶었다"며 "저항의 몸짓과 춤을 통한 연대로 오월정신의 훼손을 막고 회복시키는 것이 무용가이자 예술가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씨가 오는 4월10일 선보이는 '춤과 춤꾼의 에피소드극-별.빛 맞춤'은 기존 공연에서 장르를 넓혀 김 열사와 딸 연우 씨의 이야기를 에피소드로 담아 이야기를 풀어가는 공연이다.
차솔빈기자 ehdltjstod@mdilbo.com
-
"구조는 빠르게, 수습은 섬세하게"...붕괴 현장 지킨 소방관
지난 11일 오후 1시58분께 광주 서구 치평동 광주대표도서관 공사 현장 붕괴 사고가 발생해 작업자 4명이 매몰, 사흘에 걸쳐 구조됐다. 사진은 구조에 투입된 서부소방서 119구조대의 모습. 왼쪽부터 소방사 신상돈, 소방교 이혜준, 소방위 이광복, 구조대장 박형주, 소방장 임성환·조장원, 소방교 박기성. 서부소방서 제공
"구조 대상자를 발견하면 구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묵념부터 합니다. 최대한 예의를 지키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광주대표도서관 붕괴 사고 현장을 총괄 지휘한 광주 서부소방서 119구조대 박형주 대장은 수색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철제 구조물과 콘크리트가 뒤엉킨 잔해 더미 속에서 구조대는 아주 작은 단서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빅형주 대장은 이번 사고를 구조 난도가 높은 현장이었다고 설명했다. 기둥이나 지지대 역할을 하는 구조물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콘크리트가 타설 도중 한꺼번에 내려앉으면서 내부에 남은 공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박 대장은 "층이 그대로 포개지듯 내려앉은, 이른바 팬케이크 형태의 붕괴"라며 "구조 대상자가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제한적이었고, 중장비나 첨단 장비를 투입해 활용하기에도 여건이 좋지 않았다. 실제로 내시경 카메라와 음향 탐지기, 열화상 카메라 등 가용 장비는 모두 현장에 투입됐지만, 붕괴 형태상 활용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이런 상황에서 수색과 구조 중심은 사람의 판단과 눈에 의해 이뤄졌다. 사고 직후 현장을 지휘하던 서부소방서장이 구조대와 함께 실종 인원 수와 마지막 실종자의 작업 동선을 빠르게 정리했고, 이를 바탕으로 수색 범위가 압축됐다. 박 대장은 "서장님이 큰 틀에서 정리를 해줬고, 그 방향에 맞춰 구조대가 움직였다"며 "육안 수색으로 첫 번째 구조 대상자를 확인했고, 이어 두 번째 구조 대상자의 위치도 비교적 이른 시간 안에 특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두 번째 구조 대상자 수습은 특히 어려웠다. 초기 육안 수색 과정에서 신체 일부가 확인됐지만 구조 대상자 위에는 PC빔 두 개가 겹쳐진 채 깊게 압착돼 있었다. 수습에는 6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박형주 대장은 "구조대원들은 엎드린 채 PC빔 아래 공간으로 몸을 밀어 넣어 구조 대상자 아래에 있는 콘크리트를 손으로 긁어냈다. 구조 대상자 위에 PC빔 두개가 올라가져 있어 밑에서 조금씩 파내는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호미와 삽, 꽃삽 같은 손도구가 주로 쓰였다"고 설명했다.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작업은 서두르지 않았다. 구조대는 모든 구조 대상자를 수습할 때 신체와 최소 5~10㎝ 이상 이격을 둔 상태에서 콘크리트를 절단했다. 이미 숨진 상태임을 알고 있는 상황이지만 구조 과정에서 대상자를 넘어가거나 신체를 건드려야 할 경우에는 대상자에게 "넘어가겠습니다", "지금 건드리겠습니다" 같은 말을 건넸다.박형주 서부소방서 119구조대장. 서부소방서 제공박형주 대장은 "구조 과정에서는 최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2차 훼손이 되지 않도록 노력했고 신체 작은 조각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유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가능한 한 모든 잔해를 확인했다"고 말했다.한파 속 밤샘 구조는 구조대원들에게도 큰 부담이었다. 현장에서는 최대한 교대와 휴식을 보장하려 했고, 눈이 내리기 전 수습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 작업이 이어졌다. 박 대장은 "콘크리트가 굳으면서 열이 나 화상 위험도 있었기에 두꺼운 양말을 신으라고 지시했다. 분진 등으로 호흡기 부담도 컸다"고 말했다.박 대장은 한파 속 수색과 열악한 구조 여건보다도 현장에서 유가족들이 구조 소식을 기다리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 구조 대상자의 자녀가 '아버지가 계시던 곳을 한 번만 보게 해달라'고 말했을 때, 참으려고 했지만 저도 울컥했다"며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더 힘들었다. 가족들에게 최대한 온전한 상태로 돌려드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털어놨다.마지막 구조 대상자가 수습됐을 때, 현장에 있던 소방관들은 별다른 지시가 없었어도 그 자리에서 경례로 예를 표했다. 박 대장은 "현장에 들어서는 순간, 개인적인 감정을 붙잡고 있을 여유는 없다"며 "제복을 입으면 조건반사처럼 몸이 먼저 움직인다"고 말했다.박형주 대장은 대형 붕괴와 수난, 특수재난 현장을 두루 경험한 구조대원으로 국제구호대원으로 해외 재난 현장에도 투입된 바 있는 베테랑이다. 특수사고 대응과 현장 지휘 관련 교재와 논문을 집필하는 등 구조 역량 강화에도 힘써왔다.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 · 실종된 송년회 '연말 특수' 붕괴...광주 상권에 닥친 '한파'
- · 12·29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 "편향 조사에 진상규명 1년째 제자리"
- · '기억하라 12·29' 제주항공 참사 1주기 전국서 추모행사
- · 무등일보 '2025 광주전남민주언론상' 대상 영예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