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지역 서점···전남의 동네 책방도 소멸 위기

입력 2025.03.11. 17:12 강주비 기자
전남 7개 군, 서점 '1곳' 뿐…할인 등 자구책도 효과 無
지원 조례있지만 정책은 부족…"시민 참여 중심 지원책 必"

지역 유일한 서점인 영광군 영광읍 '한길서림'의 모습. 강주비 기자

전남 지역 인구가 줄어들메 따라 서점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현재 전남 17개 군 중 9개 군은 서점이 단 한 곳만 남아있는 '서점 멸종 위기' 상태다. 지역 서점의 소멸은 지역 문화 기반 붕괴의 신호로 해석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온라인에 밀려 발길 끊긴 향토서점

"요즘엔 책을 사러 오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온라인 서점이 더 싸고, 배송도 빠르니까요."

지난 5일 영광군 영광읍 '한길서림'에서 만난 대표 김모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1995년 문을 연 한길서림은 30년 가까이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아 온 서점이지만, 대형·온라인 서점의 저렴한 가격과 편리함에 밀려 찾는 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역 서점은 2000년대 온라인 서점의 확대와 독서인구 감소 등으로 인한 경영난이 원인으로 꼽힌다.

김씨는 "전 도서 10% 할인을 해도 손님이 오질 않는다. 온라인에선 그보다 더 싸게 팔고, 대형 서점은 각종 혜택까지 주는데 동네 서점이 경쟁하기엔 역부족"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책 한 권을 팔면 700원 남는 수준이다. 인터넷 서점의 발달로 손님들의 발길도 끊겨 당장 문을 닫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지역 유일한 서점인 영광군 영광읍 '한길서림'의 모습. 강주비 기자

실제 이날 한길서림을 찾은 손님은 한 시간 동안 단 한 명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학생들과 학부모, 지역 주민들이 오가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지만 이제는 하루 종일 몇 명 오지 않을 때도 많다.

상황이 악화되면서 한길서림과 함께 지역을 지키던 작은 서점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엔 더욱 어려워졌다.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하면서 서점을 찾는 발길도 끊겼고, 이후에도 손님은 돌아오지 않았다.

김씨는 "주변 서점이 하나씩 문을 닫는 걸 보면서 '우리도 이제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매출은 반토막인데 고정비는 줄지 않으니 빚만 쌓여 서점을 접어야 하나 고민도 했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생존을 위한 변화를 모색하기도 했다. 김 씨는 결국 서점 2층을 북카페 형태로 바꿨다. 독서 모임, 강연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사람들을 다시 불러모으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예전 같은 활기를 되찾기엔 역부족이었다.

김씨는 "북카페로 바꿨다고 해서 사람들이 당장 몰려오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학생들이 학원 가기 전 들러 2층에서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면 힘이 난다"며 "여전히 찾아주는 손님들이 있어서, 아무리 어려워도 서점을 계속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관내 유일한 서점인 영광군 영광읍 '한길서림'의 모습. 강주비 기자

◆전남, '서점 멸종 예정 지역' 최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의 '2024 한국 서점 편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남의 서점 수는 81곳으로, 서울(488곳)과 경기(493곳)의 16% 수준에 불과했다. 인구 규모가 비슷한 대전(106곳), 강원(91곳), 전북(106곳)과 비교해도 현저히 적다.

이마저도 빠르게 줄어드는 추세다. 2022년 88곳이던 전남 지역 서점은 2024년 81곳으로 감소했다.

특히 전남은 전국에서 '서점 멸종 예정 지역'이 가장 많은 곳으로 나타났다. 강진·고흥·신안·영광·완도·장흥·진도·함평·화순 등 9개 군은 서점이 단 한 곳만 남아있는 상태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관계자는 "서점 수 감소는 인구 감소, 고령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이들 지역의 서점은 시간이 지나며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서점은 단순한 상업시설이 아니라 문화적 인프라 중 하나이므로, 지자체 차원의 활성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전남도에는 2020년 '전남도 지역서점 활성화 및 지원 조례'가 제정됐지만, 실질적인 정책은 부족한 상황이다. 현재 운영 중인 정책은 도서관이나 교육청 등 공공기관이 책을 구매할 때 '지역 서점 인증제'를 활용하도록 권고하는 수준에 그친다. 전남문화재단의 문화예술진흥기금사업도 '예술인 육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지역 서점 관련 사업은 전무하다.

관내 유일한 서점인 영광군 영광읍 '한길서림'의 모습. 강주비 기자

◆"서점은 문화 인프라… 지자체 지원 필요"

전문가들은 지역 서점의 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시민 참여를 중심으로 한 지자체 차원의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강경호 문학평론가는 "정책적 지원이 없다면 골목 책방들은 대형 서점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며 "예술인 육성보다는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행사를 통해 서점에 대한 친밀도를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인 업자가 행사를 주최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작가와의 만남, 헌책 사기 운동 등 지자체의 연계·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인자 '소년의 서' 대표는 "광주 동구의 경우 '올해의 책' 선정 사업을 통해 학생과 직장인에게 1년에 한 권씩 책을 제공하고, 동네 서점에서 직접 도서를 대출할 수 있는 '동네서점 바로대출' 정책 등을 운영하고 있다"며 "예산과 규모에 얽매이기보다는 지역의 인문 생태계를 구축하고 활성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협력 사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영상=손민아기자 minah8684@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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