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를 뒤흔든 비상계엄 사태가 대통령 탄핵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환희로 가득찼던 광주·전남의 연말 분위기가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여객기 참사로 순식간에 살얼음판이 됐다.
특히 사고 여객기 사망자 157명이 광주·전남 지역민이란 소식이 전해지자 애도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구조된 2명을 제외하곤 전원 사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충격에 휩싸인 지역민들은 혹여나 하는 마음으로 가족·친지 등 주변에 안부를 확인했다.
경기침체에 탄핵 정국 장기화로 얼어붙은 소비심리가 여객기 참사를 계기로 더욱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단체 모임과 행사 등 연말 특수를 기대한 상인들에게 올해는 악재가 겹겹히 쌓인 최악의 해로 기억될 가능성이 커졌다.
◆계엄·탄핵 이어 여객기 참사…전례 없는 국가 위기
지난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는 12·3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 여파로 국정 혼란이 더욱 가중된 상황에서 터진 대형 참사였다.
탑승객 181명을 태운 제주항공 여객기가 착륙 중 활주로 외벽에 충돌한 뒤 화재가 발생해 179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이는 국내에서 발생한 항공기 사고 중 피해 규모가 가장 큰 사고로 기록됐다.
종전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낸 사고는 1993년 아시아나 해남 추락 사고로 66명이 숨졌다.
정부는 무안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전국 17개 시·도마다 최소 한 곳 이상 분향소를 설치·운영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형 재난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야 할 대통령실과 총리실 기능이 탄핵 여파로 마비됐고, 더불어민주당이 내년도 예비비를 2조원가량 삭감하면서 향후 여객기 참사 대응에 영향을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광주·전남 사망자 157명…애도 물결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사망자 179명 중 157명은 광주·전남 지역민이었다.
가족·친지의 비보를 접한 지역민들은 연일 깊은 애도를 표했다.
사망자 중에는 연말 크리스마스를 맞아 부푼 마음으로 해외 나들이에 나선 가족 단위 승객들이 많아 안타까움을 더했다.
한 광주시민은 "최근에 자녀들과 함께 동남아 여행을 다녀와서 그런지 이번 사고를 처음 접했을 때 너무 놀랐다"며 "광주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아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어줄 예정이다. 희생자 모두 아무런 고통 없이 눈 감으셨기만을 바란다"고 했다.
한 전남도민은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대한민국이 전례 없는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여객기 참사까지 터지다니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며 "무안공항 이용객 대부분이 광주·전남 지역민이다.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들이라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했다.
국내 주요 포털 사이트들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추모를 위해 마련한 온라인 공간에는 20만명 넘는 누리꾼들이 몰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네이버 추모 공간에는 이날 18만명이 넘는 누리꾼들이 '추모 국화 달기' 기능을 이용해 애도를 전했고, 다음 추모 공간을 이용해 애도의 뜻을 전한 누리꾼도 4만명을 넘어섰다. 네이트 역시 '추모 댓글'을 남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으며 300개 넘는 추모 댓글이 달렸다.
◆갑작스런 참사에 행사 줄취소…울상 짓는 상인들
대통령 탄핵안 가결 후 범국민적으로 지역상권 살리기에 동참하는 분위기가 감지됐으나 예상하지 못한 여객기 참사가 터지면서 연말 특수를 노린 상인들은 침울한 모습이다.
여기에 여객기 참사와 관련해 정부가 다음 달 4일까지를 국가애도 기간으로 정하면서 전국에 예정된 제야의 타종 행사와 해맞이 행사 등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축소됐다.
지자체는 행사 대신 분향소를 설치해 조문을 받거나 추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애도 시간을 갖기로 했다.
광주·전남 상공회의소 등 경제계도 신년 인사회를 일제히 취소했다. 광주상의와 광주경영자총협회는 내년 1월3일 열기로 한 지역 경제계 신년 인사회도 취소했다.
한 음식점주는 "상황이 아주 안 좋다"면서 "관공서는 예약이 다 취소됐고, 예약 문의도 들어왔다가 없어졌다. 코로나 때보다 최악"이라고 했다.
이관우기자 redkcow@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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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파면 후 5월 앞둔 민주묘지···지역·국적 가리지 않고 북적 20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방문객들이 문화관광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뼈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아죠."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후 5월을 앞둔 시기 국립5·18민주묘지를 찾는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을 읽고 감명받아 5·18민주묘지까지 찾은 이들이 많았다.전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광주를 찾아온 사람들은 신군부에 맞서 싸웠던 오월 영령들에 대해 배우고 공부하며 오늘날 성공적으로 지켜낸 자유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되새겼다.20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추모탑에서 전주 서머나교회 교인들이 묵념하고 있다.20일 오전 방문한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비 내린 직후의 구름 낀 날씨였지만 시민들의 발걸음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개인은 물론 가족 단위, 단체,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민주묘지를 찾기도 했다.참배광장을 지나 우뚝 서 있는 5·18민중항쟁추모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거나 추모탑 양쪽에 있는 무장항쟁군상과 대동세상군상 등 여러 조형물의 모습을 눈에 담으려는 듯 민주묘지 이곳저곳을 열심히 둘러보는 이도 있었다.미리 참배를 예약해 놓은 이들은 보훈해설사의 지도 하에 오월 영령에게 묵념을 한 후 묘지를 둘러보고, 묘비 뒤편에 기록된 사람들의 메시지를 어루만지며 읽기도 했다.일부 외국에서 온 이들은 문화관광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묘역을 둘러보고, 열사들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들의 과거를 되돌아보기도 했다.20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추모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유남이(45.여)씨 부부영국 길포드에서 온 유남이(45·여)씨는 "1980년생으로서 5월을 앞두고 영국인 남편과 함께 국립5·18민주묘지를 방문하게 됐다. 의무교육부터 대학교까지 지속적으로 역사를 배워 왔고, 관심을 가져 왔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큰 것 같다"며 "영국에서도 독서 클럽을 운영하며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물론 여러 한국 도서를 소개해 왔다. 한국 역사의 큰 발자국 중 하나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전주에서 온 이송재(65)씨는 "80년 5월 당시 대학생이자 5·18을 직접 맞닥뜨린 당사자인지라 더욱 다가오는 의미가 크다. 부활절을 맞아 교회 사람들과 함께 5·18민주묘지를 방문하게 됐다"며 "계엄부터 대통령 탄핵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하마터면 우리의 일상을 빼앗길 수도 있었다. 뼈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경각심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다시한번 여기 잠들어 있는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20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시민들이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박희복(35)씨는 "학생 때 이후로 처음 방문하는 것 같다. 한강의 소설을 최근에 읽었는데 감명을 받았고, 여러 시국이 겹치면서 여자친구와 함께 이곳을 방문하게 됐다"며 "학생 때는 억지로 끌려온지라 역사적 의미 같은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책도 읽고, 계엄이나 탄핵 등 여러 사건도 거치면서 내 의지로 방문해 오월 영령들을 마주하게 됐다"고 밝혔다.차솔빈기자 ehdltjstod@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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