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확인 호명되자 망연자실
현장 확인 대기하며 ‘발동동’

"그렇게 이름이 불리길 기다렸는데 정작 확인하려니까 가슴이 무너집니다"
무안국제공항 대합실에서는 늦은 시간에도 수많은 유가족들이 뜬눈으로 버텼으나 피해자의 신원이 확인된 순간 이들의 얼굴은 허탈함과 눈물로 얼룩졌다.
29일 오후 10시께, 늦은 시각에도 무안국제공항 대합실은 여객기 사고 피해자들의 신원을 확인하려는 유가족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합실 1층과 2층에 빼곡하 설치된 150여개의 재난구호쉘터에는 하루종일 피해자의 소식을 기다리다 지친 유가족들이 잠시 몸을 기대 쉬고 있었다.
대부분 연로한 60대 이상 유가족들로 바닥에 몸은 붙였으나 잠을 청하는 이는 없었다.
이따금 뚫려있는 쉘터 천장으로 한 유가족의 흐느낌이 들리기 시작하면 여기저기로 울음이 번져 절규에 가까운 울부짖음으로 바뀌곤 했다.
쉘터를 나온 유가족들은 담요 하나에 의지해 대합실에서 TV화면과 스피커만 바라보며 피해자의 이름이 불리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대합실 한쪽에서는 현장에 있는 유가족들로부터 DNA를 채취하는 과정도 진행 중이었다.
오후 8시 38분께 179명의 시신이 모두 수습됐으나 오후 10시 30분까지 신원이 확인된 피해자는 88명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경찰은 피해자들의 DNA와 대조 작업을 위해 순차적으로 유가족들의 DNA를 채취했다.
대합실에서 시시각각 새롭게 신원이 확인된 이들의 이름이 발표되려 하자, 모두들 스피커 가까이 접근해 귀를 기울였다.
피해자의 이름을 들은 유족들은 '아' 하는 외마디 탄식과 함께 질끈 눈을 감았다. 또 다른 이는 일순간 환호성을 내뱉은 후 이내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모습은 신분 확인 유가족 대기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무안공항 사고현장 활주로 인근에 설치된 임시안치소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한 유가족은 "하루 종일 기다리던 이름인데 신분확인이 되고 이제 확인하러 가야한다고 생각하니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구나 싶어서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일부 유가족은 일정치 않은 현장 통제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30대 유가족 배모씨는 "대기실 안팎의 차도 다르고, 안내 창구에서 이동하라고 해서 이동했더니, 저기 버스에서는 아니라고 하고, 이게 벌써 세 시간이 넘었다"며 "언제까지 이런 주먹구구식 운영을 하면서 유가족들을 탓할 거냐"고 화를 냈다.
이들은 순차적으로 버스에 탑승해 임시안치소에서 시신을 확인한 뒤, 사망확인서를 작성하고 장례절차를 밟게 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대기 중인 다수의 버스는 전남도에서 숙소 이동을 위해 지원한 버스로 임시 안치소로 가는 버스가 아니다"며 "임시안치소로 한꺼번에 가시더라도 시신 확인과 여타 절차에 시간이 걸리니 조금만 기다려주시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제주항공 비행기참사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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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 땅에서 맞는 설···음식·노래·웃음 가득한 고려인마을
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고려인 동포들이 명절 음식을 나눠 먹고 있다. 강주비 기자
“설은 가족과 보내는 날이라고 배웠어요. 여기선 우리 모두가 한가족입니다.”설을 앞둔 광주 고려인마을은 고소한 음식 냄새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고향을 떠나 조상의 땅인 한국에 정착한 고려인 동포들은 둥근 상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노래를 부르며 그들만의 명절을 맞고 있었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고려인 동포들이 명절 음식을 나눠 먹고 있다. 강주비 기자12일 오전 10시30분께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 1층에 들어서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곰탕 냄비와 분주히 오가는 손길이 눈에 들어왔다. 고려인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이곳에서 함께 식사를 하지만, 이날은 설을 앞두고 특별한 명절 상이 차려지고 있었다.상 위에는 전날부터 삶아둔 수육을 넣은 이날의 주메뉴 수육곰탕을 비롯해 미역·고사리나물을 비롯해 당근 김치, 러시아식 토마토 반찬, 만두, 과일, 빵 등 각종 후식까지 가득 올랐다. 준비한 음식은 100인분에 달했다. 모두 같은 고려인 동포들이 나흘 전부터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해 직접 만든 음식들이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지하 강당에서 진행된 노래교실에서 김마리따씨가 우리나라 전통 민요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강주비 기자찹쌀떡을 직접 빚어 고물을 묻히는 모습은, 음식만 다를 뿐 여느 한국 가정의 설 준비와 다르지 않았다.우즈베키스탄 국적 박실바(74)씨는 “집에서는 만들기 어려워 자주 못 먹는 음식들이 있다. 명절만큼은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원하는 음식을 이웃들에게 물어보며 메뉴를 골랐다”며 “무려 나흘 전부터 장을 보고, 음식 손질을 하며 준비했다. 힘들어도 다 같이 둘러앉아 웃으며 준비해 먹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웃어 보였다.같은 시각 센터 지하 강당에서는 또 다른 설맞이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50여명의 고려인들은 책상에 둘러앉아 ‘우리나라 전통공예 체험’에 참여했다. 검은색 손거울 위에 자개 스티커를 붙이며 나전칠기를 배우는 시간이었다.숨을 참으며 조심스럽게 스티커를 붙이던 이들은 이내 완성된 거울을 들여다보며 서로의 작품을 비교했다. “예쁘다”는 감탄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기념사진을 남기는 이들도 있었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지하 강당에서 진행된 전통공예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고려인들이 자개 스티커로 꾸민 손거울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강주비 기자이어, 강당에 전통 민요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든 김마리따(70)씨는 가사를 보지 않고 능숙하게 노래를 이어갔다. 손뼉을 치며 호응하던 고려인들은 이내 후렴구를 함께 따라 불렀다. 이어진 ‘남행열차’ 무대에서는 어깨를 들썩이며 박자를 맞추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서툰 발음이었지만, 누구보다 흥겹고 열정 가득한 노랫소리가 강당을 가득 채웠다.김씨는 “우즈베키스탄에 있을 때 합창단 활동을 하며 아리랑과 남행열차를 배웠다”며 “한국에 설을 지내며 이 노래를 부르니 고향 생각도 나고 더 뜻깊다. 이렇게 동포들과 함께하니 외롭지 않다”고 전했다.프로그램이 끝나자, 고려인들은 일제히 1층으로 향했다. 빈틈이 없을 만큼 각종 음식으로 가득 채워진 상에 둘러앉아 서로의 그릇에 수육을 덜어주고 반찬을 권하는 따뜻한 풍경이 펼쳐졌다. 러시아어와 한국어가 섞인 대화 속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고향에서의 추억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한국에서의 생활을 공유하기도 했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 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고려인들이 함께 먹을 음식들을 준비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이날 2월에 생일인 7명을 위한 작은 생일파티도 마련됐다. 러시아 생일축하 노래가 울려 퍼졌고, 케이크에 꽂힌 초를 함께 불었다. 생일자들은 쑥스러운 듯 웃었고, 주변에서는 박수가 쏟아졌다. 생일 선물로 마련된 칫솔·치약 세트와 마스크, 상비약 등 생필품 꾸러미도 전달됐다.매주 센터를 찾는다는 최벨라(71)씨는 “평소에도 이곳에 오면 늘 기분이 좋은데, 명절에 이렇게 모여 노래하고 음식을 나누니 더 행복하다”며 “남편과 딸, 손자와 함께 이 마을에서 10년째 살고 있다. 올해도 가족 모두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러시아에 있을 때는 설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한국에 와서 설 문화를 배웠고, 이제는 우리들도 매년 집이나 식당에서 잔칫상을 차리고 춤추고 노래하며 우리만의 설을 보낸다. 러시아에서는 명절에 물만두를 먹지만, 이제는 한국 문화를 따라 떡국도 함께 먹는다”며 “동포들이 이곳에 와서 맛있게 먹고 즐기며 웃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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