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떠올리며 민주주의 소중함 되새겨
“불의 맞선 용기 대단”, “광주에게 빚져” 등

"계엄을 겪어보니 광주가 생각났습니다. 우리는 1980년 5월의 광주에게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2024년 12월3일,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계엄군 모습은 44년 전 80년 5월, 총칼로 광주시민을 무참히 짓밟은 계엄군의 모습과 정확히 겹쳤다.
이는 '80년 5월'을 겪은 세대에게 극심한 공포와 아픔을 느끼게 했지만, 말과 글로 그때를 배운 젊은 세대에겐 광주의 외로움과 고통을 가늠하게 했다. 눈앞에서 벌어진 비상계엄은 시작도 전에 막을 내렸지만 영화나 책으로 그동안 접했던 80년 5월 이상의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온라인 상에는 21세기의 비상계엄을 막아낼 수 있었던 힘과 용기는 '80년 광주'의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고백하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 속의 주인공 동호를 통해 광주의 민주화운동을 깨닫게 된 해외 누리꾼들도 다시 한번 광주의 투쟁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현대사의 비극을 통해 광주의 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굳건히 지켜내고 있음을 확인하는 한편 오월영령의 희생에 대한 감사와 민주주의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고 있다.
11일 무등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 4일부터 이날 현재까지 블로그와 SNS 등에서 '5월 광주'에 대한 글이 잇따르고 있다.
글에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총과 곤봉을 든 계엄군이 시민들을 무참히 폭행하는 사진, 계엄군의 총에 목숨을 잃은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는 조천호 군의 사진, 계엄군 앞에 무릎을 꿇고 있거나 두 손이 등 뒤로 묶인 채 일렬로 엎드려 있는 사진 등이 첨부돼 있었다.
사진 속 모습들은 80년 5월17일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 이후 실제 벌어졌던 일이다. 계엄군의 무자비한 만행에 맞서 하나로 뭉쳐 계엄 해제를 외치며 대항하다가 시민 166명이 숨지고, 2천617명이 다쳤다.
사진과 함께 적힌 문구의 내용은 "그때의 광주는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 "불의에 맞선 용기가 정말 대단하다", "다시 한번 광주에 고맙고 미안하다", "앞으로는 그들을 외롭게 하지 않아야겠다" 등이었다.
5·18 당시 고립됐던 광주를 떠올리는 글도 있었다.
한 작성자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우리는 스마트폰 등으로 모든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공유했지만 5월 광주는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계엄군과 맞서 싸웠다"며 "오늘날 같은 상황이었다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었던 일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남겼다.
댓글에서도 "사진만 봐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 "광주에게 빚을 졌다", "잊지 말아야겠다" 등의 반응이 나타났다.
한 누리꾼은 "절대로 용납돼서는 안 될 일이 또 벌어졌다. 수많은 광주시민들이 희생으로 얻어낸 민주주의가 훼손됐다"며 "비상계엄으로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한 윤 대통령과 그를 감싸는 국민의힘을 5월 광주처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이번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것이다"고 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지난 주말 서울 집회에 참석했는데 윤 대통령 탄핵안 투표에 집단으로 불참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을 보고 너무 화가 났다. 다른 사람들을 따라 국민의힘 중앙당사 앞까지 쫓아가 잘 알지도 못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따라 부르는 데 문득 5월 광주도 이런 감정이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국민의힘은 광주시민들이 앞에서 트라우마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 윤 대통령이 탄핵되고 국민의힘이 정녕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때까지 계속 투쟁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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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 땅에서 맞는 설···음식·노래·웃음 가득한 고려인마을
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고려인 동포들이 명절 음식을 나눠 먹고 있다. 강주비 기자
“설은 가족과 보내는 날이라고 배웠어요. 여기선 우리 모두가 한가족입니다.”설을 앞둔 광주 고려인마을은 고소한 음식 냄새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고향을 떠나 조상의 땅인 한국에 정착한 고려인 동포들은 둥근 상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노래를 부르며 그들만의 명절을 맞고 있었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고려인 동포들이 명절 음식을 나눠 먹고 있다. 강주비 기자12일 오전 10시30분께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 1층에 들어서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곰탕 냄비와 분주히 오가는 손길이 눈에 들어왔다. 고려인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이곳에서 함께 식사를 하지만, 이날은 설을 앞두고 특별한 명절 상이 차려지고 있었다.상 위에는 전날부터 삶아둔 수육을 넣은 이날의 주메뉴 수육곰탕을 비롯해 미역·고사리나물을 비롯해 당근 김치, 러시아식 토마토 반찬, 만두, 과일, 빵 등 각종 후식까지 가득 올랐다. 준비한 음식은 100인분에 달했다. 모두 같은 고려인 동포들이 나흘 전부터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해 직접 만든 음식들이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지하 강당에서 진행된 노래교실에서 김마리따씨가 우리나라 전통 민요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강주비 기자찹쌀떡을 직접 빚어 고물을 묻히는 모습은, 음식만 다를 뿐 여느 한국 가정의 설 준비와 다르지 않았다.우즈베키스탄 국적 박실바(74)씨는 “집에서는 만들기 어려워 자주 못 먹는 음식들이 있다. 명절만큼은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원하는 음식을 이웃들에게 물어보며 메뉴를 골랐다”며 “무려 나흘 전부터 장을 보고, 음식 손질을 하며 준비했다. 힘들어도 다 같이 둘러앉아 웃으며 준비해 먹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웃어 보였다.같은 시각 센터 지하 강당에서는 또 다른 설맞이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50여명의 고려인들은 책상에 둘러앉아 ‘우리나라 전통공예 체험’에 참여했다. 검은색 손거울 위에 자개 스티커를 붙이며 나전칠기를 배우는 시간이었다.숨을 참으며 조심스럽게 스티커를 붙이던 이들은 이내 완성된 거울을 들여다보며 서로의 작품을 비교했다. “예쁘다”는 감탄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기념사진을 남기는 이들도 있었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지하 강당에서 진행된 전통공예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고려인들이 자개 스티커로 꾸민 손거울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강주비 기자이어, 강당에 전통 민요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든 김마리따(70)씨는 가사를 보지 않고 능숙하게 노래를 이어갔다. 손뼉을 치며 호응하던 고려인들은 이내 후렴구를 함께 따라 불렀다. 이어진 ‘남행열차’ 무대에서는 어깨를 들썩이며 박자를 맞추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서툰 발음이었지만, 누구보다 흥겹고 열정 가득한 노랫소리가 강당을 가득 채웠다.김씨는 “우즈베키스탄에 있을 때 합창단 활동을 하며 아리랑과 남행열차를 배웠다”며 “한국에 설을 지내며 이 노래를 부르니 고향 생각도 나고 더 뜻깊다. 이렇게 동포들과 함께하니 외롭지 않다”고 전했다.프로그램이 끝나자, 고려인들은 일제히 1층으로 향했다. 빈틈이 없을 만큼 각종 음식으로 가득 채워진 상에 둘러앉아 서로의 그릇에 수육을 덜어주고 반찬을 권하는 따뜻한 풍경이 펼쳐졌다. 러시아어와 한국어가 섞인 대화 속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고향에서의 추억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한국에서의 생활을 공유하기도 했다.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설 맞이 행사가 열린 가운데, 고려인들이 함께 먹을 음식들을 준비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이날 2월에 생일인 7명을 위한 작은 생일파티도 마련됐다. 러시아 생일축하 노래가 울려 퍼졌고, 케이크에 꽂힌 초를 함께 불었다. 생일자들은 쑥스러운 듯 웃었고, 주변에서는 박수가 쏟아졌다. 생일 선물로 마련된 칫솔·치약 세트와 마스크, 상비약 등 생필품 꾸러미도 전달됐다.매주 센터를 찾는다는 최벨라(71)씨는 “평소에도 이곳에 오면 늘 기분이 좋은데, 명절에 이렇게 모여 노래하고 음식을 나누니 더 행복하다”며 “남편과 딸, 손자와 함께 이 마을에서 10년째 살고 있다. 올해도 가족 모두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러시아에 있을 때는 설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한국에 와서 설 문화를 배웠고, 이제는 우리들도 매년 집이나 식당에서 잔칫상을 차리고 춤추고 노래하며 우리만의 설을 보낸다. 러시아에서는 명절에 물만두를 먹지만, 이제는 한국 문화를 따라 떡국도 함께 먹는다”며 “동포들이 이곳에 와서 맛있게 먹고 즐기며 웃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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