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차례상 간소화···'약과' '개성주악' 일상 스민 전통음식

입력 2024.09.13. 11:25 강승희 기자
■ 최영자 남도의례음식장에게 듣는 명절전통음식
가족, 친척과 모여 직접 만든 명절 음식 나누던 과거
손 많이 들어가는 전통음식…요즘은 음식 구매·간소화
프리미엄 전통과자 브랜드화 등 전통디저트 붐 일어
SNS발달로 현장 수강생 들었지만, 조리법 배움 여전
"전통음식 노하우 체계적 전수해 후계자 양성 힘쓸 것"
최영자 남도의례음식 명인과 그의 후계자 이은경 무형유산남도의례음식 전승교육사가 지난 11일 전통문화관에서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전통문화음식 강좌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강승희기자 wlog@mdilbo.com

가족, 친척이 한 데 모여 풍성한 명절 음식과 따뜻한 정(情)을 나눴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차례상이 간소화되고 직접 음식을 하기보단 사서 먹거나 여행을 떠나기도 하는 등 추석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남도의례음식장 1세대였던 고(故) 이연채 여사의 대를 이은 최영자 명인과 그의 후계자 이은경 무형유산남도의례음식 전승교육사를 통해 전통적인 추석 차례상의 모습과 일상 속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전통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왼쪽부터) 이은경 무형유산남도의례음식 전승교육사와 최영자 남도의례음식 명인.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가족, 친척 한 데 모여 명절 음식 나누던 추석

최영자 명인의 기억 속 추석 명절 풍경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풍성함'이다.

장손이었던 아버지 댁으로 온 친척들이 한 데 모이면 어머니, 고모와 함께 둘러앉아 정성스레 송편을 빚고 차례상에 올릴 맛깔스러운 전과 나물 등을 준비해 음식을 나눠먹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최 명인은 "지금이야 그때의 상차림을 의례음식이라고 구분하지만, 어릴적에는 명절, 제사, 집안행사라면 자연스레 집안 여자들이 모여 음식을 만들었다"며 "배우려 하지 않아도 음식을 만들어왔고 그 과정이 재미있었다. 그러다 함께 음식을 해오던 고모(남도의례음식장 1세대였던 이연채 명인)의 후계자가 됐다"고 말했다.

추석 차례상에는 기본적으로 ▲전류인 육전, 어전, 야채전 ▲탕류로 두부탕 또는 고기탕 ▲송편 ▲한과, 약과 ▲북어포나 명태포 ▲고사리, 도라지를 포함한 나물류 ▲사과와 배 등 과일류 등이 올라가며 특히 광주는 홍어가 추가되고 벌교는 꼬막이 놓이는 등 지역 특성에 따라 음식이 추가된다.

최 명인은 '추석 음식' 하면 송편이 으뜸이라고 강조했다.

추석 송편은 멥쌀에 뜨거운 물을 붓고 찰진 반죽을 만든 후 고물로 동부를 넣어 빚는다. 이때 반죽이 찰져야 예쁜 송편을 빚을 수 있다고 최 명인은 설명했다.

또 달달한 약과도 빠질 수 없는 명절 음식이다.

약과는 밀가루에 참기름과 술을 넣고 소금으로 간 맞춘 반죽을 밀대로 약하게 밀어 얇게 펴고 접는 과정을 반복한 후, 틀에 맞춰 자르거나 가운데를 잘라 꽈배기 모양으로 만든 뒤 약불로 15~18분 정도 서서히 기름에 튀긴다. 마지막으로 조청에 담그는데 생강을 추가하면 더욱 맛이 좋아진다.

밀대로 약하게 밀어서 접고 펴는 과정을 잘해야 약과에 겹겹이 층이 생기며, 잘 부풀게 하기 위해서는 불조절도 중요해 결코 만들기 쉬운 음식은 아니다.

최 명인은 "전통음식은 만드는 과정에는 손이 많이 들어간다"며 "그만큼 맛이 좋기도 하고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바라는 정성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영자 남도의례음식 명인과 그의 후계자 이은경 무형유산남도의례음식 전승교육사가 만든 전통음식. 사진은 (왼쪽부터) 다식, 꽃매작과, 약과.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간소화된 차례상…가족과 나눠먹기 좋은 음식은

준비에 긴 시간과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 만큼 남다른 의미를 지닌 전통음식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삶의 형태와 문화가 변화하면서 추석 명절 차례상의 형태도 바뀌는 모양새다.

최 명인은 "요즘 추석 차례상은 올리는 음식 가짓수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며 "송편, 잡채, 전류 몇 가지 놓는데 이마저도 사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사)소비자공익네트워크가 올 추석을 앞두고 전국 1천5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차례상 차림 계획을 묻는 질문에 대해 34.4%가 '간소화할 것'이라고 응답해 가장 많았고 '안할 것'(26.7%), '가족 식사상으로 대체'(24.0%) 등 순이었으며, '전통방식을 살려 예년처럼 할 것'은 14.5%에 불과했다.

또한 이러한 사회적 변화상을 반영해 광주 동구 전통문화관에서 매년 열어온 전통음식 강좌의 메뉴도 하반기에는 갈비찜, 잡채 등 전통음식 위주에서 올해는 고사리크림파스타, 견과류된장찌개, 묵은지들기름파스타 등으로 새로워졌다.

이는 수강생들의 강좌 신청이 메뉴의 영향을 많이 받는 데다, 전통음식을 배우려는 사람이 줄어듦에 따라 전통식재료를 활용해 비교적 배우기 손쉬운 퓨전 메뉴들로 구성한 것이다.

특히 '고사리크림파스타'는 고소한 맛이 큰 특징으로 올 추석 명절 어린이부터 어르신의 입맛까지 사로잡기에 충분한 메뉴다. 식재료가 스파게티면, 삶은 고사리, 베이컨, 양파, 우유, 생크림 등으로 간단하며, 추석 상차림을 위해 마련한 나물 반찬들을 색다르게 활용해 먹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약과' '개성주악' 디저트로 일상화된 전통음식

최 명인의 후계자로 나선 딸 이은경 무형유산남도의례음식 전승교육사는 "명절 차례상이 점차 간소화되고 있다고 해서 전통음식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며 "한과나 약과는 더이상 명절 때만 먹는 음식이 아니라 달달한 맛으로 인기를 얻어 평상시에 즐기는 전통음식이 됐다. 개성의 향토 음식인 개성주악 역시 마찬가지로 일상 속 디저트로 자리잡았다"고 했다.

이 소장의 말처럼 한과와 이의 한 종류인 개성주악, 약과를 비롯한 일부 전통음식에 대해 전통디저트붐이 일고 있다.

대형사들이 한과와 약과를 원형 그대로 팔기도 하지만 더욱 다양해진 맛과 형태로 개발하면서 대형마트, 편의점, 올리브영 같은 건강·뷰티 점포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돼 일상 속 간식으로 소비되고 있다.

일례로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골든피스'는 한국의 전통과자를 재해석한 프리미엄 약과를 판매하는데 최소 2만7천원부터 5만원대에 달하는 약과세트가 '베컴 약과', '지드래곤 약과' 등 유명인이 구매한 것으로 소문나면서 더욱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다양한 식감의 고급스러운 포장 때문에 선물용으로 구매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찹쌀가루에 멥쌀가루나 밀가루를 섞은 후 막걸리나 소주를 넣어 반죽해 둥글게 빚은 것을 기름에 지진 뒤 조청, 꿀 등에 약과처럼 집청해 만든 개성주악도 MZ세대(1981년~2009년생)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에 유통업계에서는 개성주악 팝업스토어를 여는가 하면, 카페에서도 커피와 즐길 수 있는 디저트로 자리매김했다.

최영자 남도의례음식 명인이 전통장 담그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전통음식의 현대화…"원형 전승 계속 돼야"

전통음식이 사회변화에 맞춰 다양한 모습으로 현대인들의 입맛을 매료시키고 있지만, 전통음식 명인과 후계자들은 전통음식의 원형도 지속 전승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은경 소장은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유튜브와 SNS를 통해 조리법을 보고 따라할 수 있다보니 직접 현장에서 배우려는 수강생이 줄어 수강 대기자가 줄을 서던 때는 과거가 됐다"면서도 "수강생들을 실제로 만나보면 주먹구구식으로 요리하기보다 체계적으로 정확한 조리법을 배워 가족들에게 건강하고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해주려는 사람들이 많음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통문화관에서는 전통음식 강좌를 통해 본래의 조리법을 전승함과 동시에 남도전통음식연구소에서는 매년 후계자를 배출해오고 있다. 칼 잡는 방법부터 마늘 다지기, 기본양념 등 기초적인 것부터 가르쳐 드린다"며 "남도 전통음식 전승에 대한 책임감으로 어머니 후계자로서 함께 다니며 어머니의 조리 과정을 계량·기록해 전승할 준비를 해왔다. 어머니의 노하우를 변함없이 전통 그대로 전수자들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최영자 명인은 추석을 포함한 명절 문화와 전통의례가 간소화되면서 이바지·폐백음식 등 전통음식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에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최 명인은 "명절 문화가 간소화되고 폐백음식도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사회가 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전통음식을 체계적으로 배우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이어 "저 역시 딸들의 폐백은 직접해주고 싶은 마음에 고모님께 열심히 배웠고 그 권유로 여기까지 왔다"며 "1990년대 광주YWCA '일하는 여성의 집'에서 한 강의를 시작으로 호남대학교, 남도향토음식박물관, 전통문화관 등에서 강의를 해왔고 하고 있는데, 수강생들이 제게 배운 후 시댁에 가서 배운대로 했더니 칭찬을 받았다고 하더라. 이때 최고로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도 내가 아는 모든 것을 공유해 더 많은 사람이 정확한 전통음식 조리법을 알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강승희기자 wlog@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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