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발'에서 '돈 먹는 하마'로··· "해법 찾아야"

입력 2024.09.05. 14:59 이윤주 기자
광주·전남 무상대중교통시대 열리나
1.21세기 대한민국 대중교통 현주소
국내 일제강점시 대구서 첫 선
이후 노선·정류장 갖추고 규격화
국민적 이동수단으로 자리매김
인구감소·업체 운영난 가속화
준공영제 도입 혈세낭비 지적도
"사회 공공재로 인식 전환할때"
광주 동구 한 버스정류장에 시내버스들이 정차하고 있다. 뉴시스

'무상교통'이 화두다. 교통복지가 보편적 복지정책이라는 지방자치단체들의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서다. 대중교통은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가 된 지 오래다. 이 때문에 대중교통을 대표하는 버스 노선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고, 일부 지자체들은 주민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으며 노선을 유지해 오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가 버스업체의 적자를 보전해 주는 대신, 수익성이 낮은 취약 지역까지 노선을 확대 운영하게 하는 시내버스 준공영제는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보전액은 물론 이를 악용하는 사례들까지 늘어나며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2006년 12월 버스준공영제를 도입한 광주의 경우 시내버스 지원액은 2020년부터 1천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시민을 볼모로 운행을 중단했던 목포 시내버스 사태도 준공영제의 민낯을 보여줬다. 불안한 준공영제가 아닌 공영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농어촌이 태반인 전남은 인구감소로 대중교통 기반이 흔들리며 상당수 주민들의 이동권마저 위협받고 있다. 이동권 약화는 의료나 쇼핑, 교육 등 필수적인 일상 활동 어려움으로 이어져 지방 소멸을 가속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치단체의 규모와 여건은 다르지만 교통복지는 전국 대부분 자치단체의 공통과제가 됐다.

◆'시민의 발' 시내버스

시내버스는 '시민의 발'이라는 수식어처럼 대표적인 대중교통수단으로 꼽힌다. 보다 빠르고 편리한 지하철도 있지만 이는 일부 대도시에만 한정되어서다. 전국 방방곡곡 산간벽지에서 섬마을까지 어디든 달려갈 수 있는데다 적은 비용으로 이동할 수 있어 서민들에게는 가장 친근한 이동수단은 단연 시내버스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2021년 3월 발간한 '2023년 대중교통 현황조사'를 보면 전국 391개 업체에서 운영하는 3만4만520대의 시내버스가 8천495개 노선을 운행한다.

농어촌버스는 전국 96개 업체에서 보유한 2천115대의 버스가 5천162개 노선을 운행한다. 마을버스는 442개 업체, 5천786대의 버스가 1천890개 노선을 운행하고 있다.

시내버스는 오랜 기간 '서민의 발'이었다.

작은 종이 회수권을 들고 앞다투어 만원버스에 오르면 '오라이'를 외치며 한 사람이라도 더 밀어 넣던 안내원, 교묘하게 회수권을 접거나 오려 내던 까까머리 학생들, 짐을 한가득 싣고 장을 다녀오던 할머니까지 오래전 시내버스는 시끌벅적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했다.

우리나라 첫 버스는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시작됐다. 1920년 일본에서 들여와 운행한 버스 4대가 출발이다. 정기노선과 버스정류소를 갖춘 시내버스는 역시 일제강점기인 1928년 서울 시내 주요 간선도로에 투입된 경성부영버스다. 전차를 지원하는 형식이었지만 경영에 어려움을 겪어 점차 쇠락했다.

광복 후에는 1949년 8월 서울승합 등 17개 회사가 서울시로부터 사업면허를 받아 273대가 운행을 시작한 것이 서울시 최초 시내버스 운행이다. 미군트럭을 개조한 짜집기형 버스가 대부분이었지만 1957년부터 승객수가 전차를 앞지르며 대표적인 대중교통수단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60년대는 정부의 강력한 정책에 힘입어 자동차 공업 5개년 계획이 발표되고 자동차보험도 도입됐다. 1962년 신진공업사에서 개발한 16인승 버스가 이듬해부터 대량생산을 시작했고, 대형버스를 규격화해 중간과 뒷부분 2곳에 문이 있는 형태로 제작됐다. 시내버스에 지금처럼 앞문이 생겨난 것은 1970년대부터다. 1979년에는 좌석버스제도가 도입되기도 했다.

시내버스 업계에 위기가 시작된 것은 1980년대 들어서다.

서울에 지하철이 개통되며 대중교통 수송분담률 1위를 지하철에 내줬고 1980년대 후분부터 본격적인 자가용 시대가 시작됐다. 도로에 승용차들이 늘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시내버스는 지하철 노선과 경합지역 노선을 줄이면서 외곽노선, 지하철 연계 등 노선을 다양화했다.

기술의 발달은 시내버스 풍경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1961년 교통부에서 도입해 승객들의 승하차를 돕고 요금을 받았던 여차장제(버스안내원)가 1982년 법 조문에서 빠지며 대한민국에서 사라진 직업이 됐다. 그동안 수동으로 열고 닫아야 했던 문을 운전사가 직접 여닫을 수 있게 됐으며, 하차벨을 설치해 승하차 소통도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후 앞문승차·뒷문하차 제도, 출입문 자동 개폐장치 등이 차례로 도입됐다.

2000년대에는 대기오염 개선 목적으로 천연가스버스가 도입됐고, 2003년과 2004년에는 교통약자가 쉽게 승하차할 수 있도록 저상버스 운행도 시작됐다. 2019년부터는 전기버스와 수소전기버스까지 등장해 조금씩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기노선이 없는 지역을 오가는 수용응답형(DRT)버스 일명 '콜버스'까지 생겨나 시민들의 이동을 돕고 있다.

◆돈 먹는 하마 '준공영제'

이제는 인공위성을 이용해 배차간격을 조정할 정도로 달라졌지만, 정작 시내버스는 애물단지로 밀리는 모양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인구 감소에 승용차 증가, 운송 원가 인상 등으로 운영난이 심화되고 있어서다.

버스회사들이 민간업체임에도 불구하고 당장 시내버스를 멈출 수 없는 터라 전국의 지자체들은 하나둘 준공영제를 도입, 막대한 혈세를 쏟아부어 왔다.

버스 준공영제란 지방자치단체가 버스 업체들의 적정 수입을 보장(실제로 손실보전)해 주는 대신에 노선 변경이나 증차를 할 때 관리·감독 권한을 행사하는 제도로, 2004년 서울에 처음 도입됐다.

당시 서울을 비롯해 전국의 시내버스 상황은 심각했다. 승용차가 도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 교통 혼잡은 극심했고, 경쟁에서 밀린 버스의 통행수단 분담률은 20%대로 급감했다. 과도한 경쟁으로 수익성만 추구하며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버스 회사가 적지 않았고, 난폭 운전과 들쑥날쑥한 배차 간격에 시민들의 불만도 커져갔다.

특히 경영난을 이유로 임금이 밀리고 운전기사들의 파업이 이어지며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자 결국 지자체가 노선 설정권을 갖고 버스회사는 여기에 맞춰 운영하되, 수익금은 운행 실적에 따라 배분 받고 적자분은 시에서 보조해 주는 준공영제가 실시됐다.

민영기업에서 수익사업으로 운영되던 시내버스에 공적자금이 투입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준공영제라는 낯선 제도에 버스회사와 노조의 반발도 적지 않았다. 버스회사는 노선권 박탈을, 버스노조는 일자리 상실 등을 걱정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준공영제는 예상밖 효과를 보여 난폭 운전과 함께 교통사고가 대폭 감소했고, 배차 정시성이 향상됐으며 승객 만족도도 높아졌다.

시내버스 준공영제는 서울을 시작으로 2005년 대전과 2006년 대구·광주에 이어 2007년 부산도 가세했다. 2009년 인천, 2017년 제주도, 2021년 충북 청주까지 현재 전국 8곳에서 시행 중이다.

지자체가 버스업체의 적자를 보전해 주는 대신, 수익성이 낮은 취약 지역까지 노선을 확대 운영하게 하는 시내버스준공영제 도입은 공급자 위주의 시스템을 수요자 중심으로 바꿨다는 데 의미가 컸다. 수입금 공동관리제, 재정지원 등을 통해 변두리 취약 지역까지 버스 노선을 확대하는 등 버스 운영체계의 공익성이 강화됐고 서비스 향상과 교통사고 감소 등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었다.

하지만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보전액은 물론 이를 악용하는 사례들도 늘어나면서 준공영제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시내버스 준공영제는 지자체가 수입금을 관리하고 노선별로 운송실적과 운송원가를 정산해서 적자분을 보전해주는 수입금공동관리제도 운영된다. 승객과 운송수입은 줄어든 반면 유류비나 인건비 등은 해마다 상승하고 있는데다, 시내버스 요금 인상은 쉽지 않아 적자폭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실제 지난 2022년과 2023년의 경우 전국적으로 시내버스 준공영제에만 연간 2조원 이상이 투입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시내버스 회사들의 방만한 운영과 부적정한 운영 사례들이 무더기로 적발되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지난 2022년 장기간 목포시내 전체를 마비시킨 목포 시내버스 사태도 버스준공영제에 회의적인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대중교통 무상시대로

대중교통은 수익창출 수단이 아닌 공공재로 인식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민간사업자의 벽지노선 운행 기피 등으로 농어촌버스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도 '완전 공영제'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농어촌의 경우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를 유지하는 것이 지역소멸 위기 극복에도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경북 청송은 농어촌버스를 지난해 전국에서 최초로 전면 무료화했다. 광역단체는 아니지만 지방소멸 위기 극복과 교통복지 향상을 위해 그 대상도 지자체 주민은 물론 관광객까지 넓혔다. 경북 봉화에 이어 진도와 충북 영동, 진천군 등에서도 무료 버스 제도를 잇따라 도입했다.

전남에서는 지난해 완도를 시작으로 올해 진도와 영암이 차례로 농어촌버스 무료화에 나섰다.

무료는 아니지만 16년 동안 버스완전공영제를 통해 버스요금을 1천원으로 유지하고 있는 신안군 사례도 눈여겨볼 만하다.

미국과 유럽의 여러나라들은 대중교통을 공영제로 운영 중이다. 또 대중교통 무료화를 이동권 개념을 넘어 기후위기 대안으로 접근하고 있다.

대중교통 무료화가 지역 경제 활성화, 승용차 탄소배출 저감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예측에서다. 특히 대중교통을 무료화함으로써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 이용을 유도해 자동차가 내뿜는 미세먼지와 탄소를 줄이는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재정부담에 결국 단계적 도입으로 선회했지만 전국 광역단체 최초로 '시내버스 무료화'를 시도했던 세종시 역시 상습적인 교통체증 해소와 함께 탄소배출 감축이 목표였다.

기획시리즈 '광주·전남 무상대중교통시대 열리나'는 광주와 전남의 대중교통 현주소를 조명하고 무상대중교통의 필요성을 살펴본다. 작은 군단위부터 시 단위 그리고 광역단체까지 국내외 다양한 자치단체의 규모별 무상대중교통 사례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교통 복지를 실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제시한다.

'버스'(Bus)의 어원은 라틴어인 '옴니버스'(Omnibus, 모든 이를 위한)에서 왔다고 한다. '모두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윤주기자 storyboard@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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