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추돌 사고를 내고 달아난 50대 운전자가 뇌전증에 의한 부분 발작 탓에 사고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을 가능성이 인정돼 무죄 선고를 받았다.
광주지법 형사5단독 지혜선 부장판사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치상),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기소된 A(55)씨에 대해 일부 공소 기각 또는 무죄를 선고했다고 14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4월27일 오전 11시48분께 광주 서구 치평동 한 도로에서 자신의 승합차로 B(56·여)씨의 경차를 뒤에서 들이받아 운전자가 다치는 사고를 내고도 구호 조치 없이 달아난 혐의로 기소됐다.
사고 당시 추돌 충격으로 B씨의 차량은 도로 연석에 부딪힌 뒤 뒤집어졌다. B씨는 갈비뼈 골절 등 전치 6주의 부상을 입었고 해당 차량은 폐차됐다.
A씨는 사고 직후 그대로 지인을 만나러 갔다가 뒤늦게 자가용 파손 사실을 알았다. 사고 2시간여 만에 경찰에 '사고가 난 것 같은데 언제 어디에서 발생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신고했다.
경찰은 이미 신고된 B씨의 경차 전복 사고와 관련성을 확인, 형사 입건했다. 조사 과정에서 음주 운전을 했거나 마약류를 투약하지도 않은 것으로 확인됐지만 기소됐다.
A씨는 "추측하기로는 사고 당시 발생한 물리적 충격으로 뇌전증 부분 발작이 나타나 사고 발생에 대한 기억이 일시적으로 없었던 것 같다. 뒤늦게 사고 사실을 안 뒤에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도주 이유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사고 후 달아나거나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고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재판장은 A씨에게 뇌전증 부분 발작으로 사고 자체를 인식 못 했을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인정했다.
재판장은 "A씨는 사고 직전 빠르게 달리다 정차한 B씨의 차량과 가까워져 경보음이 울리자 1.7초 사이에 시속 100㎞에서 시속 61.9㎞까지 감속했는데도 충돌했다. 사고 직후 A씨의 차량은 수초간 서행했고, B씨의 차량은 앞으로 빠르게 밀리다 2차 사고를 막고자 전방 교차로에서 좌회전했다. 이 과정에 연석과 부딪혀 전복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고 발생 이후 수초만에 A씨의 시야에서 B씨 차량이 사라졌다. A씨는 다시 신호에 따라 그대로 직진해 지인을 만났다. 운행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A씨가 특별히 서둘러 과속하는 등 이상 운전 정황이 보이지 않는다. 사고 전처럼 신호에 따라 정상 주행했다. 사고 발생을 인식하고 달아나는 운전자의 행태로는 이례적이라고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A씨가 과거 사고로 발병한 뇌전증으로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 의무 기록 등에도 'A씨가 부분 발작으로 인해 사고 상황 인식을 못했을 가능성은 있다'는 취지로 적혀 있다. 도주의 고의는 없었고 전방주시 의무 태만의 과실로 인한 사고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재판장은 공소 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되, 대신 적용 가능한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상)에 대한 공소는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된 만큼 기각했다.
이관우기자 redkcow@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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