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폭주족을 현장에서 쉽게 단속 못 하는 까닭은?

입력 2024.07.02. 17:32 박승환 기자
폭주족 구경하던 10대들 교통사고에 중상
경찰의 미온적인 폭주족 단속에 비난 쏟아졌지만
구상권 청구·민사소송 문제에 현실적으로 불가능
무리한 추적 대신 다른 방법 택하라는 법원 판단도
지난달 25일 오전 3시께 광주 서구 광천사거리에서 보행섬에 서 있던 A(19)군과 B(14)군이 20대 남성 C씨가 운전하던 승용차에 치였다. 광주 서부소방서 제공

3·1절이나 광복절을 비롯한 국가 기념일이면 도심 도로변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폭주족을 경찰이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리하게 추적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대법원 판례 때문에 현장에서 적극적인 단속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최근 광주 도심 한복판에서 폭주족을 구경하던 10대들이 교통사고로 크게 다친 사건이 조명을 받고 있다.

폭주족으로 인한 인명사고 위험이 큰 만큼 폭주족 단속에 나선 경찰들에게 과한 책임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높게 일고 있어서다.

2일 광주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오전 3시께 서구 광천사거리에서 보행섬에 서 있던 A(19)군과 B(14)군이 20대 남성 C씨가 운전하던 승용차에 치여 다리가 절단되는 등 중상을 입었다.

조사결과 사고 당시 A·B군은 6·25전쟁 발발 제74주년을 맞아 거리에 출현한 폭주족을 구경하고 있었다. 현장에는 A·B군 이외에도 30여명이 모여 있었다.

A·B군이 당한 교통사고가 폭주족의 행위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었지만, 사고 장면을 SNS로 접한 시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동시에 현장에 있던 경찰의 미온적인 대응에 비난을 쏟아냈다.

대체로 '폭주족이 날뛰는데 경찰은 에스코트만 했다', '차를 세우고 보고만 있을 뿐 단속은 하지 않는다', '경찰이 단속 안 하면 시민 안전은 누가 책임지냐', '누구를 위한 경찰인가' 등의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이 같은 반응만 보면 경찰이 폭주족을 적극적으로 단속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실제 3·1절이나 광복절 등 국가 기념일을 비롯해 매해 특정 날짜마다 반복되는 폭주족의 행위는 A·B군이 당한 교통사고처럼 항상 예측할 수 없는 큰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의 악으로 꼽힌다.

하지만 살인이나 강도, 이상동기범죄와 같은 강력범죄 용의자처럼 폭주족을 적극적으로 단속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경찰의 단속 과정에서 폭주족이 멈추라는 지시에 멈추면 다행이지만, 추적에 대항하거나 도주하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오롯이 경찰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헬멧도 착용하고 있지 않아 사고라도 나면 큰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구상권 청구와 민사소송 문제도 걸림돌이다. 법원에서 경찰의 단속이 필요성과 합리성을 충족하지 못했다며 피해자와 유가족의 손만 들어주고 있어서다.

대법원도 '신호위반이나 중앙선 침범과 같은 범칙금 통고서를 발부하는 교통단속을 2차 사고 발생 위험을 용인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추적하기보다는 향후 계속적인 수사가 가능하도록 차량번호를 기록하는 방법을 택했어야 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폭주족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현장에서 해산 명령만 반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도주하는 폭주족을 향해 바퀴를 권총으로 맞춰 제압하는 것은 영화 속 얘기다.

이와 관련 일선서 교통안전계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은 "단속 과정에서 인명피해가 발생하면 항상 '과잉진압'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내부에서 '차라리 단속 안 하고 욕 먹고 말지'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이유는 그만큼 일선 경찰들이 민·형사상 책임으로부터 보호받고 있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현실이다"며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면 책임을 과하게 지우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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