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런 일은 처음···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야"

입력 2024.05.24. 18:09 이정민 기자
평년 200평당 20㎏ 양파 250망 생산…올해 절반 뚝
농민들 “씨알 작고 상품 가치 떨어져 제값 못 받아”
24일 오후 함평군 나산면 한 양파밭에서 농민 안응균씨가 누렇게 변한 채 말라버린 양파밭을 가리키고 있다.

"20년 농업 인생 이런 일은 처음 겪습니다. 수확할 수 있는 양파가 없어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농민들을 보호해줘야 합니다."

고온과 일조량 감소 등 이상기후로 인해 양파에 생육장애가 생기면서 수확을 앞둔 전남지역 양파 농가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정부는 이 같은 이상기후를 재해로 인정하고 피해 조사에 나섰지만, 농민들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더 적극적인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24일 오후 함평군 나산면 인근 양파 농가. 함평군 500농가가 전국 양파 생산량의 10% 가량을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수확을 보름 정도 앞둔 현시점에서 푸른 빛을 띠어야 할 양파가 누렇게 말랐다. 특히 양파가 어린아이 주먹만큼 밖에 자라지 않은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양파 씨알이 작았다. 끝없이 펼쳐진 양파밭 가운데 한 농민이 한숨을 내쉬며 양파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이곳에서 20년간 양파 농사를 지었다는 안응균(55)씨는 "양파가 제대로 크려면 기온이 25도 이하가 적당한데 지금은 너무 기온이 높다"며 "특히 일조량도 중요한데 3월부터 비가 많이 내리면서 양파에 생육장애가 생겨 수확할 수가 없을 정도다"고 토로했다.

24일 오후 함평군 나산면 한 양파밭에서 농민 안응균씨가 누렇게 변한 채 말라버린 양파를 들어올리고 있다.

실제로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3개월간 전남지역 주요 시·군 평균 강수량은 평년(73㎜)보다 49% 증가한 110㎜, 일조시간은 평년(183시간)보다 24% 감소한 159시간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양파가 커야 할 시기에 때아닌 고온과 비가 많이 내려 일조량이 감소하면서 양파가 제대로 크지 않은 것이다. 이날도 한낮 최고 기온이 29도 가까이 되는 뜨거운 열기 속에 양파가 삶아지다시피하고 있었다.

안씨는 "보통 200평의 양파밭에서 한망에 20㎏짜리 양파가 250망 정도 나와야 하는데 지금은 150망 정도밖에 나오지 않을 것 같다"며 "이 150망도 제대로 크지 않아서 품질이 낮은 '하품'이라 제값도 받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생육장애가 생겨 씨알이 작은 양파(아래)와 정상 양파 모습.

이어 "시장 흐름이라는 게 물량이 없으면 상품의 가격이 올라가야 하는데 정부에서는 수입이라도 해서 양파 물량을 푼다"며 "그렇게해서 가격을 못올라가게 막으면 제값을 받지 못하는 농민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지금 양파를 수확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게되는데 곧 벼를 심어야해서 수확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 답답하다"며 "농업은 국민들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데 정부에서 기본적으로 작물 마다 최저 비용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유통 구조 등을 개선하는 등 제도 마련을 해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농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인근에 또 다른 농민 안명진(63)씨는 "15년째 이곳에서 8천평 가량 양파 농사를 하고 있는데, 올해는 죽을 맛이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정부에서 재해로 그나마 인정을 해줘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된 보상이 이뤄질지는 모르겠다"며 "지금같이 심각한 때에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를 해서 적극적으로 정부가 보상을 해줘야 농민들이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24일 오후 함평군 나산면 한 양파밭에서 농민 안명진씨가 누렇게 변한 채 말라버린 양파밭을 가리키고 있다.

한편,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2일 전남을 비롯해 전북, 경북, 경남, 제주 등 양파 생육 불량이 나타난 광역단체를 대상으로 피해 신고 접수·조사를 요청했다. 농림부는 각 광역단체에 보낸 공문을 통해 추대(꽃대 오름) 분구(알 갈라짐) 등 최근 발생하는 양파의 생육 불량이 겨울철 고온, 잦은 강우, 일조량 감소 등에 따른 피해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또 담당 지방자치단체별로 내달 3일까지 피해 신고 접수와 정밀 조사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전남도는 이에 따라 양파 재배지의 읍·면·동 단위로 농가별 피해 현황을 접수하고, 현장 조사할 방침이다.

글·사진=이정민기자 ljm7da@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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