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은 돈 앞에 평등하지 않더라”
제한급수 문턱서 30년전 트라우마
식수난에 163일 '밤샘 물받기' 일상
부자동네는 '펑펑' 씁쓸한 빈부격차
'없는 사람들'에 더 혹독해지는 재난
2023 무등일보 특별 대기획
[제한급수 경고…재난의 양극화] 제1부 물과 불평등 ⑤가뭄에 드러난 불편한 진실
내 나이 80, 산수(傘壽)를 넘었네요. 산(傘)을 파자(破字)하면 팔(八)과 십(十)이 된다고 해서…. 보통 팔순이라 하죠. 장조(杖朝)라고도 하는데, 주나라 조정에서 여든 살이 되면 신하가 지팡이 짚는 걸 허락했다는 데서 말미암았죠. 쓰는 말에서부터 나이 먹은 티가 팍팍 나네요 ㅎㅎ. 그 만큼 경험 많고 다양한 삶의 군상을 지켜봐 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주세요.
주소는 '광주 서구 천변좌로 12-16'. 임동오거리에서 서구청 방면으로 양동교를 지나 쭉 오다 보면 오른쪽 언덕 꼭대기에 자리 잡은 곳. 바로 '발산마을'이죠. 광주의 대표적 달동네를 꼽을 때 마다 제 이름이 불립니다. 6·25전쟁 이후 광주천을 따라 피란민들이 모여들면서 터를 닦았죠. 많을 땐 건물이 330여채나 됐 답니다.
1970년대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청춘들이 몰려들었어요. 광주천 건너 1㎞ 가량 떨어진 곳에 전남방직·일신방직이 있어서죠. 그 땐 24시간 3교대로 근무하던 여공들이 많았어요. 값 싼 생필품 구하기도 쉬웠죠. 걸어서 20분 거리에 양동시장이 있어요. 호남권 최대 전통시장이죠.
'휴 우∼'.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지금은 많이 늙었죠. 도로·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은 무척 열악합니다. 오죽하면 도심 속 낙후지역의 대명사가 됐겠습니까. 그 나마 23년 전 8차선 양동로가 뚫리면서 '도심내 고립지역'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불량·노후 주택이 조밀조밀 모여 있어요. 골목길은 차량 진출·입이 곤란하답니다. 폭이 2~3m에 불과해서죠.
지금은 빈집들이 더 많아요.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떠나서죠. 그래서 허름한 주택가를 알록달록한 색칠을 한 주택과 벽화들로 꾸며 밝고 화사한 동네로 바꿔놨어요. 2016년 수립한 '도시재생 전략 계획' 덕분입니다. 레트로 바람이 불 때 마다 'SNS 핫플'로 심심찮게 소개되곤 하죠. 아 참, 여기서 나고 자란 양학선 선수를 빼 놓을 수 없어요.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체조영웅, 다 들 아시죠?
동네사람들끼리는 가족·친구 처럼 지내요. 시쳇말로 '없는 사람들'이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며 '있는 정, 없는 정' 쌓여서죠. 그래서 비밀이 없어요. "김씨네 막내딸이 올해 결혼한다지?" "신랑이 무려 열 살이나 많다네", "박씨가 얼마 전 일을 그만뒀대" "그만두고 싶어서 그만뒀겠어?", "최씨네 장남이 며칠 전 아들을 낳았대" "할머니가 손주를 애타게 기다렸는데, 잘 됐네." 이웃집 숟가락 갯수까지 꿸 정도죠.
그래서인지, 어려운 일 일수록 잘 뭉쳐요. 제한급수 문턱까지 갔던 지난 3월 12일 아침도 마찬가지였죠. 이날 오전 6시쯤, '제한급수 위기!'라며 물 절약을 알리는 재난문자가 신경질 적으로 울려댈 때였죠. '동복댐 저수율 19.87%.' 마의 20%가 14년 만에 무너졌다고 아침 댓바람부터 쏟아지는 뉴스에, 동네 아재들이 하나 둘 서복수씨 집에 모여 들었죠. 사랑방 같은 곳이에요. 인테리어 일을 했던 복수씨는 강산이 다섯 번 변하는 동안 살아온 찐 '토박이'였습니다.
"형님! 이대로라면 또 제한급수 하겠던데요."
"지긋지긋한 코로나19 한숨 돌리나 했더니…. 쯧쯧."
속에 담아둔 말을 어렵게 꺼낸 이웃집 김씨와 박씨 얼굴엔 불안감이 스칩니다.
"왜들 그래. 새삼스럽게…"
복수씨는 무덤덤하게 내뱉었지만, 30년 전 아픔이 '트라우마'처럼 되살아 납니다.
■ 1992년, 광주 격일제 제한급수
1992년 12월 중순쯤. 서울로 대학 간 복수씨의 첫째 딸이 첫 겨울방학을 맞았을 때였죠. 광주 식수원인 동복댐의 저수율이 3.7%까지 떨어졌어요 지금보다 15%p 이상 낮았으니, 완전히 말랐다고 봐야겠죠. 결국 광주 전 지역에 하루걸러 하루만 수돗물이 공급되는 격일제 제한급수가 시작됐어요. 방학이라 집으로 내려온다는 딸을 극구 말리던 복수씨의 모습이 아직도 선 합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얼마나 보고 싶었겠어요. 더구나 낯선 객지에서 고생하는 딸 인데…. 복수씨는 하나 뿐인 딸이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그런 재난 상황을 경험하게 하기 싫었던 거예요. 그래서 보고 싶은 마음도 한 켠에 묻어둬야만 했죠.
광주에선 92년 12월 21일부터 이듬해 6월 1일까지, 163일간 제한급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광주시내 전역과 전남도 일부지역에 제한급수가 시작됐다. 광주시는 21일부터 광주천과 용봉천을 경계로 동서로 나누고 광산구는 정수장 입구를 경계로, 남북으로 나누어 홀수일에는 동구 전역과 북구 전 지역(동운동 본촌동을 제외) 주민 12만 가구와 광산구 남쪽 송정동 도산동 주민 7천8백가구, 나머지 지역은 짝수일에 수돗물을 공급키로 했다.'('광주 전지역에 급수제한'이 실시된다는 내용의 당시 신문 기사 중 일부.)
그 때 그 고통은 상상도 못해요. 지금이야 집집마다 수도가 있죠. 그 때만 해도 마을 중턱에 17가구 전체가 사용하는 공동수도 하나가 전부였어요. 하루에 12시간, 그중에서도 저녁 시간대에만 물이 공급됐죠. 복수씨는 물론 마을 사람들 모두가 물을 받느라 밤 잠을 설치기 일쑤였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낮엔 돈을 벌어야만 했으니까요.
좁은 골목길은 항상 사람들로 빽빽했습니다. 소방차가 못 들어오니 물 나오는 시간이 되면 공동수도 앞에 양동이를 들고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밀려들면서죠. 각 가정마다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이 물 받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복수씨는 50만~6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아 생계를 유지했죠. 딸아이 대학 등록금도 전부 대출을 받은 상황이라 고된 일도 그만 둘 수 없었습니다.
■ "약수터마다 장사진" "생수값, 석유 2배"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어느 날이었죠. 하루는 복수씨가 반상회에서 아이디어를 하나 냈어요. "물탱크를 설치해 지하수를 끌어올리자." 뭐라도 해야 된다는 강박이 심할 때였어요. 배수관에서 녹물이 섞여 나오면서였죠. 급수와 단수가 반복되면서 관에 녹이 꼈던 거죠. 녹물은 끓여 먹는 것 조차 불가능했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힘을 보탰습니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광주·전남지역엔 식수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서민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신문 보도를 좀 살펴보죠.
'갑작스런 격일제 급수 소식에 밤새 수돗물을 받아 두느라 밤잠을 설쳤다' '시민들은 시내 음수대 및 약수터를 찾아 식수를 구하기 위해 장사진을 이뤘다' '여관·음식점·공중목욕탕 등 물 사용이 많은 접객업소들은 영업시간을 단축하는 등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생수가 석유보다 2배 이상 비싼 가격에 거래돼 소비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등등.
시도는 성공적이었요. 우선 동네 꼭대기에 물탱크를 설치했죠. 1만t 규모였는데, 주민들 하루치 사용량이었어요. 쓰면 다음날 또 물을 받는 식으로 해서 호스를 가정 마다 연결했죠. 24시간 내내 지하수를 쓸 수 있다는 기쁨이 얼마나 컸던지…. 낮에도 물이 나온다는 게 처음엔 믿기지 않았어요.
복수씨는 광주시청에서 소독약을 얻어와 물탱크 안에 덩어리째 넣었어요. 위생을 위해서였죠. 다행히 탈이 난 사람들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광주 전 지역이 가뭄 상황이다 보니 지하수 양이 한정적이었죠. 결국 한 방울의 물이라도 아끼기 위한 절약 정신이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 "부촌에선 물 콸콸 … 얼마나 아깝던지"
'빈부격차'의 현실도 경험했다고 해요. 잘 사느냐, 못 사느냐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이 달랐기 때문이죠. 돈 있는 사람들에겐 제한급수가 남의 나라 일처럼 느껴졌을 거라는 거죠. "광주에선 동명동이 부자들이 사는 동네죠. 그 때 동명동으로 일을 나가 보면 설거지를 하더라도 물을 콸콸 틀어놓고 하는 등 아끼는 게 없었어요. 그 때 씽크대로 흘러내리던 그 물이 얼마나 아깝던지…." 광주가 다 같이 겪는 물 부족이었지만, 사실은 아닌 거죠. 거짓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복수씨를 포함해 마을 사람들의 화장실 변기에는 지금도 물이 가득 담긴 페트병이 있습니다.
"형님! 예나 지금이나 돈 있는 사람들은 다시 찾아온 물 부족에 아무런 감흥도 없겠죠?"
"농담이 아니라 물을 한 방울이라도 아끼기는커녕 돈 주고 살 게 뻔해요."
이어진 김씨와 박씨의 말에 복수씨는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만약 제한급수가 시행된다면 92년 상황과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없는 사람들'만 힘든 법이죠. '재난은 돈 앞에서 평등하지 않더라'는 건, 30년 전 복수씨가 생생하게 경험한 제한급수의 교훈인 셈입니다.
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이 기획기사는 서사적 글쓰기인 '내러티브 저널리즘(narrative journalism)'을 활용했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제한급수 위기에 가슴 졸이며 생활했던 경험 등을 현장감 있게 전달해 보자는 취지에서입니다. 관찰자로서 기자 자신이 직접 일하면서 보고 느낀 감정과 인간관계 등을 단순 사실 전달식 기사 형태에서 벗어나 소설처럼 이야기하듯 구성했습니다. 물 부족이 현실화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 위험 등을 독자 여러분들께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 엉터리 도면에 곳곳 지뢰밭···뒤떨어진 재난행정 정비를 2023 무등일보 특별 대기획[제한급수 경고…재난의 양극화] 제2부 본격화된 물 전쟁 ③광주시 노후화된 컨트롤타워"공사 현장에서 땅 파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불안합니다."8월 중순쯤, 광주 서구 금호동 모 카페서 만난 김길은(31)씨는 가슴이 먹먹하다고 했다. 이 카페를 운영하는 그는 개업 석달여 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지난 6월 1일 오후 7시께 도심 한복판에서 발생했던 어처구니없는 수해 탓이었다. 인근 도시철도 2호선 1단계 2공구 현장에서부터 엄청난 양의 물이 순식간에 밀려들었다. 공사 도중 상수도관이 터지면서다.당시 사고로 쏟아져 나온 물은 8천여t. 교차로 중간 지점에선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다. 10m 넘게 뿜어 오른 물은 주변 상가를 덮쳤다. 손 쓸 틈도 없이 허리춤까지 차 올랐다. 문틈으로 물이 밀려 들어오고 에어컨·전등에서도 줄줄 샜다.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었다. 실내 인테리어는 물론 카운터 계산대와 제빙기·커피머신 등 침수 피해를 당한 전자기기·기계들은 쓸 수가 없게 된 것이다.김씨는 지난 3월 카페를 인수한 새내기 자영업자다. 한달여 간의 복구 끝에 7월 3일 문을 다시 열었지만, 상실감이 크다. 그는 "가게를 재오픈 하는 데 수천만원이 들었다"면서 "광주시로부터 피해보상금을 아직 못받다 보니, 자비로 부담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김씨처럼 '지하철 공사장 상수도관 파손'으로 침수 피해를 입은 곳은 약국과 과일가게·미용실·정육점 등 10여 곳에 달한다.가뭄이 극심했던 올해 초, 유독 상수도관 파손 사고가 많았다. 이유가 뭘까.현장은 지뢰밭에 비유되곤 한다. 빈번한 사고 발생 탓이다. 앞선 지난 2월 도시철도 2호선 남구청~양림휴먼시아 구간에서 토목공사를 하던 중 50㎜ 분기관 파손으로 누수가 발생했다. 4월에도 풍금사거리 2호선 공사현장에서 땅을 파던 중 상수도관이 터졌다. 2호선 공사가 본격 시작된 2020년부터 현재까지 발생한 상수도관 파손 사고는 총 26건(누수량 4만4천917t)에 달한다.◆끊이지 않는 상수도 사고, 대부분 관재(?)전문가들은 상수도 관련 사고가 대부분 관재(官災)라고 지적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체계적이지 못한 시스템이 매번 사고를 일으킨다는 거다. 도시철도 공사장 사고가 대표적이다.광주시가 갖고 있는 관련 자료들은 현장에선 무용지물이다. 예컨대, 시에는 상수도·하수도·도시가스·전기·난방·통신 등 6대 지하시설물의 매설위치와 심도 등을 기록한 'GIS(지리정보시스템)'가 있다.실제 현장에서 땅을 파기 전, 시설물이 매설됐는 지 여부를 확인하는 실시설계도면도 이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문제는 도면이 실제 시설물 구조와 다르다는 점이다.도면은 2호선 착공 전인 2019년 8월, 1단계 1∼6 공구 전 구간을 대상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사업 지연과 함께 구간 별 착공시점 차이 등 변화가 생기면서 잇단 사고가 터져나오고 있다. 급수관·배수관 등을 포함한 작은 규모의 수도관의 경우 수시로 공사를 한다.광주시 GIS엔 정보가 수정되지만, 4년 전 도면엔 반영되지 않는다. 상수도관 파손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다. 도면과 실제 매설 현장의 괴리는 또 있다. 분기마다 업데이트되는 GIS는 광주시 내부망 컴퓨터로만 사용할 수 있다. 정작 관련 정보가 필요한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상수도관만 기록한 별도의 GIS 구축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마시는 물 부실 관리는 시민의 안전, 생명과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지난 2월 덕남정수장에서 5만7천여t 넘는 물이 그대로 버려진 사고는 상징적이다. 하루 20만명이 사용할 물이었다. 최악의 가뭄 탓에 시민들이 '절수운동'에 발벗고 나선 때였다. 당시 서구·남구·북구·광산구 2만8천576세대에 수돗물이 중단됐다.광주시 상수도 행정의 불신으로 이어졌다. 그 간 정기 안전 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보고서 허위 작성과 초동 대처 미흡 등 전반에 걸쳐 부실이 확인되면서다. 사고의 여파는 컸다. 단수 사태 피해보상을 받은 결과 총 186건이 접수됐고, 피해보상액 신청은 1억3천700만원에 달했다. 이처럼 상수도사업본부는 매년 크고 작은 사건·사고에 휘말렸다. 앞선 2019년 11월엔 남구·서구 일대에서 이물질 수돗물 사고가 있었다.수돗물이 붉어 흙탕물이 섞인줄 알았는데, 확인해보니 발암물질인 나플탈렌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경악할만한 사고에 이용섭 당시 시장이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그 뒤로도 수돗물 사고는 계속됐다. 전문가들이 물 관리·운영 컨트롤타워에 실질적 쇄신과 함께 지속가능한 시스템 구축을 주문하는 배경이다.◆재난행정 연속성 중요… 전문 조직 필요인력 문제도 심각하다. 상수도본부엔 전문성을 갖춘 직원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 수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정수시설운영관리사의 경우 1급 2명, 2급 4명 등이 부족하다. 해당 자격증 시험이 어렵다 보니 관련 전문가 찾기가 쉽지 않다. 이들을 유인할만한 인센티브도 부족하다. 여기에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상하수도 업무와 무관한 인력을 배치하는 등 안일한 인사 관행도 문제로 꼽힌다.상수도본부는 업무 특성상 경험있고 노하우를 가진 전문인력의 장기간 근무가 필요하다. 하지만 평균 근무연수는 1년 8개월쯤 된다. 5급 이하 간부는 1년 5개월, 6급 이하는 1년 10개월에 불과하다. 이 마저도 하위직급들이 많아 즉각적인 대처가 늦곤 한다. 흐린물 발생, 긴급 누수복구 등 사고가 발생했을 때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전문인력도 부족한 실정이다.박미정 광주시의원은 "상수도관 공사 중 자주 파열되고 물이 솟는 이유 중 하나는 공사하는 분들의 인건비와도 관련된다"며 "숙련된 포크레인 기사가 필요한데 저단가계약으로 하다보니 인건비 절감밖에 없어 더 사고 잦다"며 "내부적으론 중간 관리자에 비해 경험없는 초급직원들에게 업무량이 쏠리다 보니, 일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배울수 있는 시스템이 안된다"고 설명했다.그릇된 인식도 문제다. 광주시민의 안전과 직결된 곳이지만, 공무원들 사이에선 '상수도사업본부로 가는 건 유배'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오래전부터 상수도 관련 업무는 대표적인 '한직'으로 분류돼 왔기 때문이다. 인사 때마다 인력난을 겪는 이유다. 조직 내부도 문제다. 교육 등을 통한 전문성 강화 의지도 많지 않다. 지난해 말 기준, 법정교육 이수율은 44%에 그쳤다.최근 뉴노멀이 돼 가는 이상기후 탓에 적응보다는 변화가 더 빠르게 다가온다.송창영 광주대 건축학부 교수는 "재난 행정은 연속성이 가장 중요한데, 행정 시스템이 계속 변화하는 기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면서 "기후변화에 대비한 재난안전역량센터를 새롭게 만들어서 재난과 관련된 법과 매뉴얼을 끊임없이 보완해 과학적이고 항구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필요하다면 조례를 제정해서라도 재난 행정이 선제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경국기자 hkk42@mdilbo.com·박승환기자
- · 극단의 가뭄·호우 겪고도···광주시, 허울뿐인 물관리
- · "법적 계획만 번지르르··· 모니터링·전문 인력 중요"
- · 광주시민 23만여명 '극한 기후' 위협 노출
- · 21세기 말이면 겨울이 사라질수도···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