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에도 가진 자들은 여유 "불편하면, 떠나면 그만"

입력 2023.07.12. 13:11 이삼섭 기자
제1부 물과 불평등 ⑤가뭄에 드러난 불편한 진실
'물 부족 스트레스' 피해 리조트·풀빌라로
하룻밤 수십만원 객실 "없어서 못팝니다"
코로나19 때도 방역수칙 피해 해외로 러시
알바 등 고용취약층 '대규모' 해고와 대조
베트남 푸꾸옥의 한 리조트 풀빌라 수영장에서 가족 여행객이 물놀이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장소와 무관함. 뉴시스

2023 무등일보 특별 대기획

[제한급수 경고…재난의 양극화] 제1부 물과 불평등 ⑤가뭄에 드러난 불편한 진실

"광주에서 '물 아껴쓰란' 말 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잉∼."

지난 4월 경기도 가평의 모 골프&리조트. 남편과 함께 둘이서 찾은 80평 넘는 객실에 들어선 A(30대 여성)씨의 얼굴에 비로소 미소가 번진다. 눈 앞에 푸른색이 감도는 프라이빗 풀장이 시선을 꽉 채우면서다. 창 밖엔 넓은 호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여기다." '가뭄 피난처'를 제대로 찾았다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광주광역시에서 물 좋기로 소문난 이 곳에 오려고 4시간 가까이 차를 몰고 온 보람이 있었다. 수영장에 노천탕, 사우나까지…. 말 그대로 '물의 천국'이었다. 광주는 지금 제한급수 문턱까지 갔다. 지난해 여름부터 본격화 된 가뭄 탓이다.

"돈 많은 사람 정말 많아." 괜스레 남편의 옆구리를 찔러봤다.

여긴 딴 세상이었다. 1억5천만원 대 회원권이 있어야 하고, 하룻 밤에 객실 사용료로 50만원가량을 지불해야 했다. 그럼에도 예약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더 비싸고 고급스런 객실일수록 더 힘들었다. 담양·여수 등 광주 근교 쪽도 알아봤지만, 웬만큼 유명한 리조트 사정은 매 한가지였다. 우린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그게 가평까지 찾아온 이유였다.

요즘 일상이 너무 스트레스였다. 프라이빗 풀장 옆 데이 베드(Day bed·낮잠이나 휴식 취하는 의자)에 누우니 광주에서의 루틴이 되살아 난다. 지난해 가을부터 "가뭄이다", "물이 부족하다", "물 절약 해야한다"며 온통 난리였다. A씨는 그렇다고 딱히 물을 아껴쓴 것도 낭비한 것도 아니었다. 물 절약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기억도 별로 없다. 크게 공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말고 펑펑 써. 물 값이 싸서 그래. 물 가격이 올라야 귀한 줄 아는거지."

"맞아. 너무 싸긴 해. 커피와 디저트 먹는 가격이 물 보다 더 비싸잖아."

친구들과 요즘 핫 한 '물 이야기'를 하다보면 결국은 값이 너무 싸다는 쪽으로 결론 나곤 했다. 그러다보면 '나처럼 물을 펑펑쓰는 사람들 때문에 물이 부족해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오래 가진 않는다. 물 쓰는데 별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걱정되는 건 레스토랑 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아버지 프랜차이즈 가맹사업을 도우고 있는 A씨는 시내에 직영 식당도 하나 있다. 그래서 매일 받고 있는 '상수원 고갈로 제한급수가 시행될 수 있다'는 재난 문자가 불편했다. 식당 운영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여름에 물이 끊기면 식당은 어떡해?"

"사서 걱정하지 마. 제한급수되면 휴업하고 미국에서 좀 쉬다 오면 되지 않겠어?"

남편의 신박한 대응책에 솔깃했다. 코로나19 때 행복했던 경험이 되살아나면서다. 지난해 여름,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에서 한달 간 생활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한국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코로나19 감염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자가격리와 마스크 착용 등 거리두기 방역 정책이 귀찮고 싫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특유의 온화한 날씨에 아름다운 해변까지…. '미국에서 한달살기'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광주에서 불편한 일이 생기면, 없는 곳으로 가면된다.

"나야 미국에서 쉬다 오면 좋지만 응옥(가명)씨나 재한(가명)이는 어쩌지…."

두 명 모두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수년 전,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20대 초반의 응옥은 손 끝이 야무졌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성실하고 당찼다. '코로나19 때 일자리를 잃으며 정말 고생 많았는데….' 대학생인 재한도 눈에 밟히긴 마찬가지. 생활비라도 벌어보겠다고 평일이건 주말이건 시간나는 대로 일했다. 이들이 다시 일자리를 잃게 하는 건 썩 내키지 않았다.

한편으로 '닥치면 어쩌겠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들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할 의무는 없어서다. 그럼에도 불편한 감정이 한 켠에 똬리를 튼다.

가평까지 온 김에 인근 청평호 드라이브에 나섰다. 가뭄에 바닥을 드러낸 동복호·주암호와 달리 맑은 물을 가득 품은 호수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여기에서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까짓것, 제한급수가 오면 어떠랴.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이 기획기사는 서사적 글쓰기인 '내러티브 저널리즘(narrative journalism)'을 활용했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제한급수 위기에 가슴 졸이며 생활했던 경험 등을 현장감 있게 전달해 보자는 취지에서입니다. 관찰자로서 기자 자신이 직접 일하면서 보고 느낀 감정과 인간관계 등을 단순 사실 전달식 기사 형태에서 벗어나 소설처럼 이야기하듯 구성했습니다. 물 부족이 현실화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 위험 등을 독자 여러분들께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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