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부족 스트레스' 피해 리조트·풀빌라로
하룻밤 수십만원 객실 "없어서 못팝니다"
코로나19 때도 방역수칙 피해 해외로 러시
알바 등 고용취약층 '대규모' 해고와 대조
2023 무등일보 특별 대기획
[제한급수 경고…재난의 양극화] 제1부 물과 불평등 ⑤가뭄에 드러난 불편한 진실
"광주에서 '물 아껴쓰란' 말 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잉∼."
지난 4월 경기도 가평의 모 골프&리조트. 남편과 함께 둘이서 찾은 80평 넘는 객실에 들어선 A(30대 여성)씨의 얼굴에 비로소 미소가 번진다. 눈 앞에 푸른색이 감도는 프라이빗 풀장이 시선을 꽉 채우면서다. 창 밖엔 넓은 호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여기다." '가뭄 피난처'를 제대로 찾았다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광주광역시에서 물 좋기로 소문난 이 곳에 오려고 4시간 가까이 차를 몰고 온 보람이 있었다. 수영장에 노천탕, 사우나까지…. 말 그대로 '물의 천국'이었다. 광주는 지금 제한급수 문턱까지 갔다. 지난해 여름부터 본격화 된 가뭄 탓이다.
"돈 많은 사람 정말 많아." 괜스레 남편의 옆구리를 찔러봤다.
여긴 딴 세상이었다. 1억5천만원 대 회원권이 있어야 하고, 하룻 밤에 객실 사용료로 50만원가량을 지불해야 했다. 그럼에도 예약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더 비싸고 고급스런 객실일수록 더 힘들었다. 담양·여수 등 광주 근교 쪽도 알아봤지만, 웬만큼 유명한 리조트 사정은 매 한가지였다. 우린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그게 가평까지 찾아온 이유였다.
요즘 일상이 너무 스트레스였다. 프라이빗 풀장 옆 데이 베드(Day bed·낮잠이나 휴식 취하는 의자)에 누우니 광주에서의 루틴이 되살아 난다. 지난해 가을부터 "가뭄이다", "물이 부족하다", "물 절약 해야한다"며 온통 난리였다. A씨는 그렇다고 딱히 물을 아껴쓴 것도 낭비한 것도 아니었다. 물 절약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기억도 별로 없다. 크게 공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말고 펑펑 써. 물 값이 싸서 그래. 물 가격이 올라야 귀한 줄 아는거지."
"맞아. 너무 싸긴 해. 커피와 디저트 먹는 가격이 물 보다 더 비싸잖아."
친구들과 요즘 핫 한 '물 이야기'를 하다보면 결국은 값이 너무 싸다는 쪽으로 결론 나곤 했다. 그러다보면 '나처럼 물을 펑펑쓰는 사람들 때문에 물이 부족해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오래 가진 않는다. 물 쓰는데 별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걱정되는 건 레스토랑 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아버지 프랜차이즈 가맹사업을 도우고 있는 A씨는 시내에 직영 식당도 하나 있다. 그래서 매일 받고 있는 '상수원 고갈로 제한급수가 시행될 수 있다'는 재난 문자가 불편했다. 식당 운영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여름에 물이 끊기면 식당은 어떡해?"
"사서 걱정하지 마. 제한급수되면 휴업하고 미국에서 좀 쉬다 오면 되지 않겠어?"
남편의 신박한 대응책에 솔깃했다. 코로나19 때 행복했던 경험이 되살아나면서다. 지난해 여름,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에서 한달 간 생활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한국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코로나19 감염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자가격리와 마스크 착용 등 거리두기 방역 정책이 귀찮고 싫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특유의 온화한 날씨에 아름다운 해변까지…. '미국에서 한달살기'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광주에서 불편한 일이 생기면, 없는 곳으로 가면된다.
"나야 미국에서 쉬다 오면 좋지만 응옥(가명)씨나 재한(가명)이는 어쩌지…."
두 명 모두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수년 전,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20대 초반의 응옥은 손 끝이 야무졌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성실하고 당찼다. '코로나19 때 일자리를 잃으며 정말 고생 많았는데….' 대학생인 재한도 눈에 밟히긴 마찬가지. 생활비라도 벌어보겠다고 평일이건 주말이건 시간나는 대로 일했다. 이들이 다시 일자리를 잃게 하는 건 썩 내키지 않았다.
한편으로 '닥치면 어쩌겠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들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할 의무는 없어서다. 그럼에도 불편한 감정이 한 켠에 똬리를 튼다.
가평까지 온 김에 인근 청평호 드라이브에 나섰다. 가뭄에 바닥을 드러낸 동복호·주암호와 달리 맑은 물을 가득 품은 호수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여기에서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까짓것, 제한급수가 오면 어떠랴.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이 기획기사는 서사적 글쓰기인 '내러티브 저널리즘(narrative journalism)'을 활용했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제한급수 위기에 가슴 졸이며 생활했던 경험 등을 현장감 있게 전달해 보자는 취지에서입니다. 관찰자로서 기자 자신이 직접 일하면서 보고 느낀 감정과 인간관계 등을 단순 사실 전달식 기사 형태에서 벗어나 소설처럼 이야기하듯 구성했습니다. 물 부족이 현실화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 위험 등을 독자 여러분들께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 엉터리 도면에 곳곳 지뢰밭···뒤떨어진 재난행정 정비를 2023 무등일보 특별 대기획[제한급수 경고…재난의 양극화] 제2부 본격화된 물 전쟁 ③광주시 노후화된 컨트롤타워"공사 현장에서 땅 파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불안합니다."8월 중순쯤, 광주 서구 금호동 모 카페서 만난 김길은(31)씨는 가슴이 먹먹하다고 했다. 이 카페를 운영하는 그는 개업 석달여 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지난 6월 1일 오후 7시께 도심 한복판에서 발생했던 어처구니없는 수해 탓이었다. 인근 도시철도 2호선 1단계 2공구 현장에서부터 엄청난 양의 물이 순식간에 밀려들었다. 공사 도중 상수도관이 터지면서다.당시 사고로 쏟아져 나온 물은 8천여t. 교차로 중간 지점에선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다. 10m 넘게 뿜어 오른 물은 주변 상가를 덮쳤다. 손 쓸 틈도 없이 허리춤까지 차 올랐다. 문틈으로 물이 밀려 들어오고 에어컨·전등에서도 줄줄 샜다.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었다. 실내 인테리어는 물론 카운터 계산대와 제빙기·커피머신 등 침수 피해를 당한 전자기기·기계들은 쓸 수가 없게 된 것이다.김씨는 지난 3월 카페를 인수한 새내기 자영업자다. 한달여 간의 복구 끝에 7월 3일 문을 다시 열었지만, 상실감이 크다. 그는 "가게를 재오픈 하는 데 수천만원이 들었다"면서 "광주시로부터 피해보상금을 아직 못받다 보니, 자비로 부담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김씨처럼 '지하철 공사장 상수도관 파손'으로 침수 피해를 입은 곳은 약국과 과일가게·미용실·정육점 등 10여 곳에 달한다.가뭄이 극심했던 올해 초, 유독 상수도관 파손 사고가 많았다. 이유가 뭘까.현장은 지뢰밭에 비유되곤 한다. 빈번한 사고 발생 탓이다. 앞선 지난 2월 도시철도 2호선 남구청~양림휴먼시아 구간에서 토목공사를 하던 중 50㎜ 분기관 파손으로 누수가 발생했다. 4월에도 풍금사거리 2호선 공사현장에서 땅을 파던 중 상수도관이 터졌다. 2호선 공사가 본격 시작된 2020년부터 현재까지 발생한 상수도관 파손 사고는 총 26건(누수량 4만4천917t)에 달한다.◆끊이지 않는 상수도 사고, 대부분 관재(?)전문가들은 상수도 관련 사고가 대부분 관재(官災)라고 지적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체계적이지 못한 시스템이 매번 사고를 일으킨다는 거다. 도시철도 공사장 사고가 대표적이다.광주시가 갖고 있는 관련 자료들은 현장에선 무용지물이다. 예컨대, 시에는 상수도·하수도·도시가스·전기·난방·통신 등 6대 지하시설물의 매설위치와 심도 등을 기록한 'GIS(지리정보시스템)'가 있다.실제 현장에서 땅을 파기 전, 시설물이 매설됐는 지 여부를 확인하는 실시설계도면도 이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문제는 도면이 실제 시설물 구조와 다르다는 점이다.도면은 2호선 착공 전인 2019년 8월, 1단계 1∼6 공구 전 구간을 대상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사업 지연과 함께 구간 별 착공시점 차이 등 변화가 생기면서 잇단 사고가 터져나오고 있다. 급수관·배수관 등을 포함한 작은 규모의 수도관의 경우 수시로 공사를 한다.광주시 GIS엔 정보가 수정되지만, 4년 전 도면엔 반영되지 않는다. 상수도관 파손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다. 도면과 실제 매설 현장의 괴리는 또 있다. 분기마다 업데이트되는 GIS는 광주시 내부망 컴퓨터로만 사용할 수 있다. 정작 관련 정보가 필요한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상수도관만 기록한 별도의 GIS 구축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마시는 물 부실 관리는 시민의 안전, 생명과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지난 2월 덕남정수장에서 5만7천여t 넘는 물이 그대로 버려진 사고는 상징적이다. 하루 20만명이 사용할 물이었다. 최악의 가뭄 탓에 시민들이 '절수운동'에 발벗고 나선 때였다. 당시 서구·남구·북구·광산구 2만8천576세대에 수돗물이 중단됐다.광주시 상수도 행정의 불신으로 이어졌다. 그 간 정기 안전 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보고서 허위 작성과 초동 대처 미흡 등 전반에 걸쳐 부실이 확인되면서다. 사고의 여파는 컸다. 단수 사태 피해보상을 받은 결과 총 186건이 접수됐고, 피해보상액 신청은 1억3천700만원에 달했다. 이처럼 상수도사업본부는 매년 크고 작은 사건·사고에 휘말렸다. 앞선 2019년 11월엔 남구·서구 일대에서 이물질 수돗물 사고가 있었다.수돗물이 붉어 흙탕물이 섞인줄 알았는데, 확인해보니 발암물질인 나플탈렌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경악할만한 사고에 이용섭 당시 시장이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그 뒤로도 수돗물 사고는 계속됐다. 전문가들이 물 관리·운영 컨트롤타워에 실질적 쇄신과 함께 지속가능한 시스템 구축을 주문하는 배경이다.◆재난행정 연속성 중요… 전문 조직 필요인력 문제도 심각하다. 상수도본부엔 전문성을 갖춘 직원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 수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정수시설운영관리사의 경우 1급 2명, 2급 4명 등이 부족하다. 해당 자격증 시험이 어렵다 보니 관련 전문가 찾기가 쉽지 않다. 이들을 유인할만한 인센티브도 부족하다. 여기에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상하수도 업무와 무관한 인력을 배치하는 등 안일한 인사 관행도 문제로 꼽힌다.상수도본부는 업무 특성상 경험있고 노하우를 가진 전문인력의 장기간 근무가 필요하다. 하지만 평균 근무연수는 1년 8개월쯤 된다. 5급 이하 간부는 1년 5개월, 6급 이하는 1년 10개월에 불과하다. 이 마저도 하위직급들이 많아 즉각적인 대처가 늦곤 한다. 흐린물 발생, 긴급 누수복구 등 사고가 발생했을 때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전문인력도 부족한 실정이다.박미정 광주시의원은 "상수도관 공사 중 자주 파열되고 물이 솟는 이유 중 하나는 공사하는 분들의 인건비와도 관련된다"며 "숙련된 포크레인 기사가 필요한데 저단가계약으로 하다보니 인건비 절감밖에 없어 더 사고 잦다"며 "내부적으론 중간 관리자에 비해 경험없는 초급직원들에게 업무량이 쏠리다 보니, 일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배울수 있는 시스템이 안된다"고 설명했다.그릇된 인식도 문제다. 광주시민의 안전과 직결된 곳이지만, 공무원들 사이에선 '상수도사업본부로 가는 건 유배'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오래전부터 상수도 관련 업무는 대표적인 '한직'으로 분류돼 왔기 때문이다. 인사 때마다 인력난을 겪는 이유다. 조직 내부도 문제다. 교육 등을 통한 전문성 강화 의지도 많지 않다. 지난해 말 기준, 법정교육 이수율은 44%에 그쳤다.최근 뉴노멀이 돼 가는 이상기후 탓에 적응보다는 변화가 더 빠르게 다가온다.송창영 광주대 건축학부 교수는 "재난 행정은 연속성이 가장 중요한데, 행정 시스템이 계속 변화하는 기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면서 "기후변화에 대비한 재난안전역량센터를 새롭게 만들어서 재난과 관련된 법과 매뉴얼을 끊임없이 보완해 과학적이고 항구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필요하다면 조례를 제정해서라도 재난 행정이 선제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경국기자 hkk42@mdilbo.com·박승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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