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고 현상에 이은 가뭄까지 '사중고'
낭설에 보해 불매 운동 등 피해 발생
산단, 가동 중단 직전까지 내몰려
영농철 앞두고 농가도 전전긍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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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무등일보 특별 대기획?
[제한급수 경고…재난의 양극화] 제1부 물과 불평등 ③산업·농업용수 비상
"가뭄에 물도 부족한데 보해 소주 말고, 가뭄 피해가 없는 지역에서 만든 OO 소주 마시자."
광주광역시가 제한급수 문턱까지 갔던 지난 3월 중순쯤, 보해 직원인 A(39)씨는 모임에 나갔다 황당한 경험을 했다. 고교 동창들과의 저녁 술 자리에서 유언비어 수준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근거없는 소문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극심한 가뭄 탓이었다. 우선, 보해는 제품 생산에 수돗물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 말을 직접 들은 A씨는 억울했다.
"보해소주와 보해복분자주 등 모든 제품은 지하 암반수로 만든다."
A씨는 술은 이번 광주·전남 가뭄 피해와 상관없다고 설명하고 설득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사실 이 같은 이야기를 들은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주변에선 '한 방울의 물이라도 아끼려면 보해 제품을 마시면 안된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 앞에서도 이런 대화가 오갈 줄은 예상치 못했다.
"직원인 내가 있는데도 이 정도인데, 다른 술자리에선 어땠을까요." 그 간 가뭄지역에서 생산된다는 이유만으로 외면 받았을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다.
'동복댐 저수율이 18.76%에 그쳤다. 양치컵 사용, 샤워시간 줄이기, 설거지통 사용하기 등 가뭄 극복을 위해 생활 속 물 절약 실천에 적극 동참해 달라.' 이튿날 오전, 동복댐 저수율 현황이 안전 안내 문자로 전해져 왔다. 광주시는 전방위적 물 절약에 나선 터였다. 물 부족 위기가 닥친 지난해 11월부턴 하루에 2∼3차례씩 왔다. 신문·방송 뿐만 아니라 각 기관 홈페이지, 소셜미디어, 블로그, 전광판, 엘리베이터TV 등엔 온통 가뭄 극복 이야기만 나왔다.
A씨는 씁쓸했다. 근거없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퍼져 나간다면, 불매 운동으로 인한 피해는 막심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특히 술은 수질과 관련이 깊다. 그는 "가뭄 기간에 보해는 판매량이 감소하고 임직원들 사기가 꺾이는 등 피해를 입었다"며 "이러한 유언비어는 출처를 확인하기도 어려운데다 이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 산출이 쉽지 않아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선에서만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뭄 위기가 본격화된 광주·전남에선 다양한 분야로 피해가 확산했다. 생활용수는 물론 공장에 쓰이는 산업용수와 농작물에 쓰이는 농업용수 등에도 비상이 걸렸다. 마실 물이 부족하다보니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국내 최대 석유화학·철강 업체가 입주한 여수·광양국가산업단지가 대표적이다. 공장들이 가동 중단 직전까지 내몰렸다. 공업용수를 공급받는 주암댐 수위가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면서다. 일부 공장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여수산단에서는 LG화학, 롯데케미컬 등 대형 석유화학업체와 협력업체까지 200여 개 기업이 비슷한 사정을 겪었다.
여수·광양산단에선 주암댐에만 하루 70만t을 공급받아야 한다. 가뭄으로 물 부족이 심화되자, 수자원공사 등은 하루 20만t인 섬진강 취수량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섬진강 인근 어민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공업용수로 강물이 더 빠져나가면 염분이 높아져 재첩 서식환경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영농철 농민들의 마음도 타들어 갔다. 논에 물을 한참 채워 넣어야 할 3월에, 전남지역 농업용 저수지 평균 저수율은 50%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평년 대비 30%p 줄었다. 비가 조금 내리면서다. 지난해 여름 장마 때 중부지방인 서울은 552.6㎜, 수원은 622.9㎜로 빗물이 쌓였지만 남부지방에서는 광주 209.6㎜에 그치는 등 충분히 내려주지 못했다. 올 여름에도 이 정도 강수량에 그친다면 흉년수순을 밟게 될게 뻔해 '농촌 인심'은 사치가 됐다.
설상가상, 식수가 부족한 지자체들은 농업용수에 욕심을 냈다. 가뭄 대책으로 '농업용수 식수 전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농민들 마음은 숯덩이가 됐다. 마실 물조차 부족한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농번기를 앞두고 농업용수 마저 고갈되면 생계를 이어갈 방법이 없어 막막했던 것이다.
같은 물이지만, 같이 쓸 수 없는 정책 시스템. 현행법상, 산업·농업, 생활용수는 수질 차이가 없더라도 용도에 맞지 않으면 사용하기 어렵다. 농업용수는 농어촌 정비법에 따라 만든 시설이다. 농업 외 다른 용도로 사용해선 안되고, 물을 이동시킬만한 수단도 없어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돼야만 한다.
한경국기자 hkk42@mdilbo.com·이예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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