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바람 수익 수단 정책 실험 무대로
박우량 전 군수 결단 비롯 공무원 한뜻
단순한 수혜자 아닌 주체자로 내세워
불신과 규제 벽 넘어 ‘공유자산’ 결단
‘개발 이익 주민에게’ 국내 유일 사례


인구 소멸, 고령화는 농어촌을 상징하는 대표적 단어가 됐다. 지방자치단체는 인구 감소를 타개하기 위해 인구출산장려금 지급 등 다양한 시책을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재정 부족 등 지자체의 시책 추진에는 한계가 있다. 위기에 빠진 농어촌을 살리기 위해 이재명 정부는 보편적 지원 형태의 기본 소득을 선택하고 본격 추진에 나섰다. 바로 농어촌 기본 소득 시범사업이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은 2026∼2027년 2년 동안 인구감소지역 10개 군을 선정해 해당 지역에 주민등록을 두고 30일 이상 거주하는 주민에게 매월 15만원의 지역사랑상품권을 지급하는 사업이다. 선정된 지역은 경기 연천군, 강원 정선군, 충북 옥천시, 충남 청양군, 전북 순창군과 장수군, 전남 신안군과 곡성군, 경북 영양군과 경남 남해군 10곳이다. 재원은 국비 40%, 시·도비 30%, 군비 30%로 부담한다. 신안군과 영양군은 자체 재원으로 5만원을 추가해 월 20만원을 지급할 예정이다.
정부가 기본소득 정책을 추진하는 목적은 지역경제 활성화, 인구 유입, 주민 삶의 질 개선이다.

무등일보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햇빛연금 기본소득 시책을 시행하고 있는 신안군 사례의 성공 과정을 2차례에 걸쳐 엮는다.
신안군 햇빛연금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정책이 아니다. 이 제도는 ‘지역의 자원을 누가 소유하고, 그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했다. 섬과 바다로 둘러싸인 신안은 태생적으로 개발의 중심에서 비껴나 있었고, 발전사업이 추진될 때마다 주민들은 늘 결과를 지켜보는 입장이었다. 신안군 ‘신재생에너지 이익공유제’의 시작은 이 오래된 구조를 바꾸겠다는 행정의 문제의식이 구체적인 정책으로 옮겨진 순간이었다.

◆단체장 결단에서 조례 제정까지
민선 7기 출범과 함께 박우량 전 신안군수는 신재생에너지를 단순한 산업 정책이 아니라 ‘주민 소득 정책’으로 규정했다. 신안의 햇빛과 바람은 기업의 수익 수단이 아니라 군민 모두의 공동 자산이라는 인식이었다. 전국에 전례가 없는 발상이었고, 실패할 경우 정치적·행정적 책임이 분명한 선택이었지만, 박 전 군수는 방향을 분명히 했다. 행정조직은 그 결단을 현실로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2018년 8월 6일, 신안군은 기자회견을 통해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을 주민과 공유하겠다는 정책 구상을 공식화했다. 발표 직후 행정은 곧바로 실행 단계로 들어갔다. 8월 9일 읍·면장 회의를 열어 조례 제정 취지와 기본 구조를 공유했고, 현지 여건 점검을 병행했다. 이어 8월 13일부터 17일까지 전 읍·면을 순회하며 주민 설명회를 열었다. 공무원들은 섬을 오가며 마을회관과 경로당에서 주민들의 질문을 직접 마주했다.

초기 주민 반응은 기대보다 의구심에 가까웠다. “지금까지 개발은 늘 남 좋은 일 아니었느냐”, “정말 돈이 나오느냐”는 질문이 반복됐다. 일부 주민은 목소리를 높였고, 일부는 설명회 자체를 불신의 눈으로 바라봤다. 담당 공무원들은 제도의 구조와 수익 배분 방식을 차분히 설명하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다시 검토해 다음 설명회에서 보완했다. 행정의 설명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8월 22~23일에는 사업자와 전문가가 참여한 공청회가 열렸다. 법적 근거, 수익 구조, 행정 개입의 범위를 두고 격론이 오갔다.
주민 참여와 사업 지속성 사이의 균형점을 찾기 위한 논의가 이어졌고, 이러한 절차를 거쳐 같은 해 10월 5일 ‘신안군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 등에 관한 조례’가 제정됐다. 재생에너지 개발이익을 주민 소득으로 연결한 전국 최초의 제도적 출발선이었다.


그러나 조례 제정은 또 다른 시험의 시작이었다. 불과 3주 뒤인 2018년 10월 29일부터 감사원 감사가 시작됐다. 정책은 곧바로 제도적 검증대에 올랐고, 행정 내부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약 1년 2개월 동안 이어진 감사 과정에서 공무원들은 조례 문구 하나, 정책 취지 하나까지 모두 설명해야 했다. 주민들 사이에서도 “감사까지 나온 정책이 계속될 수 있겠느냐”는 불안이 번졌다.
2019년 12월 4일 통보된 감사 결과는 ‘주의’ 조치였다. 감사원은 정책 취지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고, 법률 위임 범위와 절차적 정당성을 보완하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주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오해될 소지가 없도록 조례를 합리적으로 정비하라는 취지였다. 이 결과는 정책이 제도적으로 완전히 부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됐다.

◆주민 참여 이끌어낸 진행형 정책
햇빛연금 운영 과정에서는 주민 참여 방식을 둘러싼 또 다른 도전이 있었다. 신안군은 주민을 단순 수혜자가 아닌 주체로 세우기 위해 협동조합 모델을 도입했다. 2018년 10월 19일 발기인 모집 공문이 통보됐고, 자라도 협동조합은 2019년 8월 발기인 회의를 통해 대표 선출과 조합원 모집을 진행했다. 같은 해 9월 5일 설립 신고가 완료됐고, 조합원 136명이 참여했다.

하지만 운영 과정에서 한계도 분명했다. 조합원 변동 시마다 열어야 하는 총회, 대의원 선출과 운영 비용, 배당으로 인한 기초생활수급자 등 복지 대상자의 혜택 상실 우려, 조합원에게 귀속되는 책임 문제가 주민 참여를 제약했다. 현장의 목소리는 행정에 전달됐고, 신안군은 이를 외면하지 않았다. 이후 운영 구조는 조합원 중심에서 보다 완화된 회원 중심 방식으로 조정됐다. 자라도의 경우 2021년 4월 첫 햇빛연금 지급 당시 협동조합 가입률은 59.9%였지만, 정책은 중단되지 않았다.

실제 지급이 시작되면서 주민 반응은 뚜렷하게 달라졌다. 금액의 많고 적음보다도 매년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소득이라는 점이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한 주민은 “큰돈은 아니지만, 햇빛이 우리 재산이라는 걸 처음 실감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발전소 이야기만 나오면 반대부터 했는데, 이제는 왜 생기는지부터 묻게 된다”고 전했다. 개발을 바라보는 주민 인식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청년층은 “섬에도 장기적인 소득 구조가 생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중장년층은 “밖에서만 돈 벌어가던 구조가 처음으로 바뀌었다”는 평가를 내놨다. 지급 기준과 금액, 지속 가능성을 둘러싼 논의는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질문의 방향은 ‘왜 하느냐’에서 ‘어떻게 더 나아질 것인가’로 옮겨갔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국내 재생에너지 설치 용량은 약 35GW에 이르지만, 발전 수익을 주민 개인에게 직접 소득으로 지급하는 사례는 신안군이 사실상 유일하다. 이는 제도의 완결성보다, 조례 제정과 감사 대응, 운영 구조 조정까지 이어진 행정의 집요한 실행이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 수많은 공무원들이 현장을 지키며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안군 ‘신재생에너지 이익공유제’의 시작은 한 사람의 결단에서 출발했지만, 이를 현실로 만든 것은 행정의 집요한 실행과 주민들의 현실적인 반응이었다. 이 제도는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며, 신안이 스스로의 자산 가치를 소득으로 전환해 가는 과정 그 자체다.


무등일보는 앞으로 햇빛연금에 이어 바람연금과 지역 기본소득 모델 전반을 놓고, 그 성과와 한계를 더욱 집중 취재해 연속 보도할 예정이다.
신안=박민선기자 wlaud22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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