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三無’ 섬의 그늘

@김현주 입력 2026.09.09. 14:20

“경찰이 잘못한 일이긴 한데, 뉴스 몇 줄에 제주 전체가 범죄도시가 돼 버렸어요.”

대문 밖까지 나와 손님을 기다리던 한 제주 상인이 길을 묻는 낯선 이에게 속상함을 토로하며 던진 넋두리다. 시끌벅적해야 할 제주 관광지를 생각하며 찾아간 거리에는 ‘둘러보고 가라’는 호객마저 건넬 대상이 없다. 발길이 끊긴 점포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얼굴에 그늘이 짙다.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나부끼는 ‘임대 문의’ 플래카드가 제주 관광의 현주소를 대변했다.

예부터 제주는 1만 8천 신(神)이 거하는 평온한 섬이자, 도둑과 거지, 대문이 없는 ‘삼무(三無)의 땅’으로 불렸다. 서로를 깊이 신뢰하며 이웃의 정을 나누던 이 공동체의 안녕이 최근 발생한 여성 실종·사망 사건으로 근간부터 흔들리고 있다. 수사 기관의 초기 대응 부실과 허위 종결 논란으로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진 자리에 무분별한 억측과 괴담이 빠르게 침투했다. 여기에 일부 언론마저 기다렸다는 듯 자극적인 범죄 통계를 앞세워 제주를 거대 범죄도시로 낙인찍는 데 합세했다.

더 큰 문제는 사건의 여파가 특정 지역을 넘어 제주 전체에 대한 일률적인 혐오와 낙인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제주를 위험 구역으로 규정하고 관광 자제를 유도하는 자극적인 프레임이 빠르게 형성됐다. 마치 옛 설화 속 도깨비(영감신)나 액운이 몰고 온 환란처럼, 아무런 죄가 없는 소상공인과 주민들이 생계 위협과 심리적 위축이라는 2차 피해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단 한 번의 비극으로 삶의 터전 전체가 매도당하는 현실은 억울함을 넘어 참담함마저 느끼게 한다.

이러한 지역 비하와 낙인은 사태의 본질을 가릴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특정 지역에 주홍글씨를 새기는 자극적 접근이 아니다. 공권력의 엄정한 책임 규명, 수사 체계의 근본적 개선, 그리고 실질적인 안전망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

지자체와 경찰은 취약 지역의 CCTV를 확충하고 순찰을 강화해 ‘삼무의 고장’이라는 객관적 치안 지표를 회복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언론과 사회 역시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자극적 비하로 지역 공동체에 상처 주는 행위를 멈추고, 사실에 기반한 냉정한 시선으로 주민들의 터전을 지키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김현주 취재 3본부 부장 5151k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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