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과 R&B(리듬앤블루스), 록 등 대중음악이 세계화된 것은 1960년대 무렵이다. 50년대 ‘록클롤의 황제’인 엘비스 프레슬리가 그 물꼬를 텄다. 라디오 중심으로 음악이 유통됐던 당시 미국인들은 프레슬리를 흑인으로 오해했다. 장르와 창법, 목소리가 흑인들의 블루스와 유사했기 때문이다.
프레슬리의 등장은 미국 백인들을 열광시켰다. 이들은 흑인들의 전유물이었던 프로복싱과 록음악에 빠져들었다. 전설적 헤비급 챔피언인 록키 마르시아노와 프레슬리가 그 주인공이었다.
프레슬리의 인기는 대서양 건너편 영국을 자극했다. 영국 록음악 밑바탕에는 스키플이라는 음악이 있었다. 리버풀 출신의 네 젊은이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등 4인조 비틀스도 스키플 음악을 기초로 자신들의 음악세계를 구축했다.
60년대는 비틀스의 시대였다. 이들은 62년 첫 데뷔 후 영국 등 유럽을 휩쓸고 미국에 상륙했다.
역사를 이를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 불렀다. 이후 롤링스톤스와 더후 등 숱한 영국 록밴드들이 미국 시장을 장악했다.
비틀스의 미국 활동은 순탄치 않았다. 소속사 EMI의 미국 자회사인 캐피톨 레코드가 음반 출시에 딴지를 걸었다.
하지만 메릴랜드 15살 소녀 마샤 엘버트가 한 라디오 디제이에게 비틀스 노래를 틀어달라는 요청에 대세는 기울었다.
비틀스는 그래미와 악연의 연속이었다. 64년 신인상 등 2개 부문 수상에 그쳤다.
그래미측의 텃새와 질투가 컸다. K-팝의 전도사인 BTS(방탄소년단)가 최근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나뉘기보다는, 그 자체로 들려지고 사랑받기를 바란다”며 미국 그래미상에 작품을 출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발단은 지난 6월 16일 그래미를 주관하는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가 새 부문으로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를 신설했는데 K팝과 J팝 등에 이시아 안어를 의미 있게 써야 한다는 단서를 단 데 대한 대응으로 해석된다.
그래미 출품과 수상 여부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소신 발언이다. 충분한 재능과 실력, 자생력을 갖췄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비틀스는 오직 음악 하나로 인류의 가슴 속에 살아남았다. 이제 BTS의 차례다.
최민석 문화스포츠에디터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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