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본질은 '참정권'

@이정민 입력 2026.06.21. 13:40
[청주=뉴시스] 박은수 기자 = 충북대학교 학생들이 17일 충북 청주시 충북대 정문에서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2026.06.17. mercurypark@newsis.com

6·3 지방선거가 끝났지만 서울 송파구 등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후폭풍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선거 당일 투표소를 찾고도 투표를 하지 못한 유권자들의 분노는 너무나 당연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참정권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며, 국가와 선거관리 당국은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이번 사태의 본질 역시 분명하다. 투표를 하겠다는 국민에게 투표용지를 제때 제공하지 못했고, 그 결과 일부 유권자가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명백한 관리 부실이며, 책임 있는 사과와 철저한 진상 규명, 재발 방지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사태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행정 실패를 비판하고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를 근거로 선거 전체를 부정하거나 근거 없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실제로 일부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선거 조작 의혹을 주장하는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정작 참정권이 침해된 유권자들의 피해와 분노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확인되지 않은 음모론이 중심에 서는 기형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 선관위의 실책을 비판하는 것과 선거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엄연히 구분돼야 한다. 관리 부실에 대한 책임 추궁은 필요하지만, 아무런 근거 없이 선거 결과 전체를 불신하도록 만드는 행위는 오히려 민주주의의 토대를 흔들 수 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둘러싼 논란이 음모론의 장으로 변질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렇다고 선관위의 책임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번 사태는 선관위 조직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선관위는 헌법기관이다. 선거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행정부나 정치권으로부터 독립된 지위를 부여받았다. 특정 권력이 선거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민주주의적 장치다. 그러나 최근 여러 논란을 통해 드러난 모습은 국민 기대와 거리가 멀다.

실제로 선관위는 각종 채용 비리 의혹과 방만한 조직 운영 논란에 이어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까지 겪으며 스스로의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

헌법기관이라는 이유로 비판과 감시의 사각지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독립성은 보장받되 책임성 역시 강화돼야 한다. 선거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 오히려 국민의 신뢰를 잃는다면 존재 이유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관위의 잘못을 정확히 짚고 책임을 묻는 일이다. 왜 투표용지가 부족했는지, 누구의 판단이 문제였는지, 유사한 사태를 막기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그것이 참정권을 침해당한 유권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본질은 부정선거가 아닌 국민의 소중한 한 표를 제대로 보장하지 못한 선거 행정의 실패다.

이정민 취재1본부 차장 ljm7da@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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