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사과

@김현주 입력 2026.04.15. 15:26

사과의 사전적 정의는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이다. 여기서 핵심은 용서를 비는 ‘대상’이 명확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서 목격되는 사과의 풍경은 기묘하다.

진심 어린 참회를 들어야 할 피해자는 철저히 소외된 채, 가해자들이 카메라와 마이크, 혹은 익명의 대중 앞에서만 고개를 숙이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고(故) 김창민 영화감독을 집단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가해자는 피해 유족이 아닌 유명 유튜버의 채널에 출연해 사과했다. 유족 측은 사건 발생 후 단 한 번의 직접적인 사과도 없었다며, 언론 뒤에 숨어 미안하다고 말하는 행태를 ‘또 다른 폭력’이라 규정했다.

‘음료 3잔’을 무단 반출 했다는 이유로 아르바이트생을 고소해 물의를 빚은 카페 점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정작 상처 입은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아파트 입주민’을 향해 사과문을 올렸다.

이를 두고 대다수의 대중은 “사과해야 할 대상이 틀렸다”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행태는 사과가 본연의 목적인 ‘관계 회복’을 떠나, 철저히 자신의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 이른바 ‘사과의 도구화’다. 가해자들이 대중 매체를 찾는 이유는 명확하다. 불특정 다수의 감정을 자극해 비난의 수위를 낮추고, 재판에서 유리한 정상 참작의 근거를 마련하거나 영업 손실을 막기 위함이다.

피해자에게 직접 다가가 용서를 구하는 과정은 고통스럽고 법적 리스크가 따르지만, 매체를 통한 사과는 자신의 입장만을 편집해 전달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전략이 된다.

문제는 이러한 ‘전시용 사과’가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된다는 점이다. 피해자가 아닌 대중을 향해 던지는 일방적인 고백은 사죄가 아니라, 가해자의 자기만족과 형량 감수를 위한 기만적 퍼포먼스에 불과하다.

진정한 사죄는 화려한 수식어나 매끄러운 입장문에 담기지 않는다. 사과의 주도권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있어야 한다. 가해자가 진정으로 뉘우치고 있다면, 카메라를 끄고 피해자의 일상이 회복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책임과 침묵의 자숙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화려한 영상 속의 사죄가 아니라, 피해자의 고통을 끝까지 마주하려는 무겁고 낮은 자세다.

김현주 사회에디터 5151k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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