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신상공개

@이정민 입력 2026.05.06. 17:07
광주 광산경찰서 전경

어린이날이었다. 아이들의 웃음이 넘쳐야 할 날, 광주는 깊은 공포에 잠겼다.

일면식도 없는 여고생을 향해 흉기를 휘두른 20대 남성. 그는 경찰 조사에서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다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정말 ‘우발적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치밀하게 준비된 ‘대상 없는 공격’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피의자는 흉기를 준비했고, 늦은 밤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범행 대상을 골랐다. 이는 충동적 행동이라기보다 누군가를 향해 방향이 설정된 아주 치밀한 계획범죄라는 의심이 든다.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은 이 사건의 책임을 흐릴 위험이 있다. 마치 사회가 그를 잘못된 길로 이끈 것이 아닐까라는 동정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냥 흉악범일 뿐이다.

범행을 저지린 후 행적을 보면 그것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택시를 여러차례 갈아타고, 중간에는 세탁방에 들러 피 묻은 옷을 세탁하기도 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던 사람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렇게까지 범행을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인생을 포기하려던 사람이 맞을까.

이번 사건으로 지역 사회는 분노와 걱정이 교차하고 있다. “혹시 우리 아이도…”라는 불안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더 참담한 것은 유가족의 현실이다. 아침에 집을 나섰던 생떼 같은 아이가 돌아오지 못했다.

피의자는 ‘충동’을 말하지만, 유가족은 평생을 감당해야 할 고통을 떠안게 됐다.

피의자에게 엄벌을 처해야 하는 이유다.

또 이런 사건이 반복될 때마다 같은 질문이 나온다. 피의자에 대한 신상 공개 여부다.

물론 신상공개는 자의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살인이나 성폭력 같은 특정강력범죄 가운데 범행의 잔혹성과 피해의 중대성이 크고, 충분한 증거가 확보됐으며, 공개를 통해 얻는 공익이 크다고 판단될 때에만 가능하다. 경찰은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범죄의 중대성과 공개 필요성, 피의자의 인권 침해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따져 이름과 나이, 얼굴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

그럼 이 사건의 피의자는 어떤가. 살인을 저질렀고, 잔혹했으며, 피해의 중대성이 크고, 증거가 확실하다. 신상 공개 여부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다.

이정민 취재1본부 차장 ljm7da@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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