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는 석유의 시대이자 미국의 세기였다. 21세기에 접어든 지금도 그 힘은 유효하다. 석유의 역사는 미국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1857년 변호사와 은행장 등으로 구성된 한 유력 투자그룹이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최초로 석유 사추를 개시했다. 이때 등장한 사람이 ‘석유왕’ 록펠러였다.
석유 하면 떠오르는 중동이 주목받은 것은 1938년 이후다.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 유전이 터진 것이 이 무렵이다. 이란(페르시아)은 1908년, 이라크에서 1927년 원유가 발견된 점과 사우디의 국가형성이 늦었던 것도 한 원인이다.
그런데 오스만 투르크(튀르키예)가 1차대전 패전국이 되면서 아랍세계와 중동 지형이 급변했다. 아랍 맹주 자리를 놓고 두각을 나타낸게 아라비아반도의 사우드 가문과 하심 가문이다. 사우디 가문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나왔고 하심 가문에서 오늘날의 요르단과 이라크를 건국했다. 여기에는 중동을 좌지우지했던 영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2차대전 이후 중동이 세계의 화약고가 된데는 영국의 정책도 한몫을 했다. 이후 세계 패권을 장악한 미국은 원활한 석유 확보와 영향력 확대를 위해 사우디 건국에 깊숙이 개입했다. 루즈벨트는 록펠러 등을 보내 석유 개발을 도왔고 안보를 책임지는 대가로 석유 거래를 달러로만 사용할 것을 요구했다. 달러가 세계 기축 통화로 자리잡은 결정적 계기였다.
그러나 사우디는 OPEC(석유수출기구)를 결성, 석유 가격 결정권을 행사하며 세계 경제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OPEC은 유가가 내려갈 때마다 감산으로 시장을 쥐락펴락했다. 이후 석유는 공급망의 핵심자원이자 ‘무기’가 됐다. 미국·이란전쟁이 길어지면서 유가가 급등하는 등 경제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 쓰레기봉투와 플라스틱도 마음대로 쓸 수 없을 지경이다.
그동안 우리는 값싸게 공급되는 석유 덕분에 평온한 일상과 편리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모든 일상이 동맥경화에 걸릴 처지에 놓였다. 석유의 역습이다. 양측의 휴전 발표로 포성은 멈추겠지만 석유를 둘러싼 혼란과 불편은 언제든 우리 생존을 위협할 수 있음을 방증한다. 날마다 마시는 공기처럼 당연한 것은 없다. 석유의 역습을 일시적 현상으로 넘길 수 없는 이유다.
최민석 문화스포츠에디터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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