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고 이금주 회장이 남긴 역사와 기록

@이용규 입력 2026.03.10. 17:17
이용규 신문디자인국장

지난 5년전 세상을 떠난 고 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장은 일제 강점기 피해자들의 벗이었다. 그는 환갑이 넘은 69세때인 1988년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를 결성, 일본정부를 상대로 싸움에 나섰다. 고인은 광주와 전남 곳곳에 흩어져 사는 일제 징용 군인·군무원·노무자·여자근로정신대·일본군위안부 등을 직접 찾아가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현재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새 사무실 한켠에 있는 7차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며 하루에도 몇 번씩 일본 관계자와 주고받은 팩스와 메모 한 장까지 그대로 보관되있다. 국가기록원 디지털 작업을 마친 서류 박스 54개 분량에 담긴 각종 빛바랜 문서와 자료는 피해자들의 한과 절규, 설움을 꼼꼼히 기록한 보고서이다.

고 이금주회장은 한일간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거인이었다. 결혼 2년만에 태평양전쟁에 징집된 남편을 잃은 슬픔이 그를 평생 일본과의 투쟁에 나서게 하는 동력이었다. 이후 1948년 친정아버지를 따라 처음 밟았던 광주는 그가 강제동원피해자 보상 투쟁의 치열한 전사로 태어나는 토대였다.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를 결성하고 일본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7건의 소송에서 17차례 기각되는 쓰라림을 맛봤다. 결국 난공불락의 성은 허물어지고, 한일협정 문서공개, 포스코 상대 소송제기 등 최대 현안인 강제집행 문제를 양국 시민사회 화두로 끌어냈다. 고인의 아들 부부와 손자 등 3대가 광주유족회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일제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정의 회복에 진심이었다.

고인이 열정적으로 생산한 일제강제동원 피해자의 각종 자료는 대한민국의 아픈 매듭의 생생한 역사이다. 광주시가 지난해 발표한 대로 고인의 기록물은 유네스코 등재 추진이 돼야 하고, 옛 전일방부지에 일제 강제동원기념관도 차질없이 열려야 하는 이유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임시 소장하고 있는 기록물들을 이곳으로 옮겨와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한 독지가의 제공으로 광주 남구의 단독주택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한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어디에도 없는 나라’라는 제목의 이금주회장의 평전을 발행하고 오는 14일 새둥지 집들이도 준비하고 있다. ‘일본에 소송을 하러 갈때마다 왜 우리가 적국에 가서 우리 피해를 얘기해야 합니까’라고 치욕감이 들었다는 고인의 외침처럼 힘겨웠지만 굴복하지 않았던 한 여인의 외로운 투쟁과 삶이 고스란이 녹아있다. 외롭게 뚜벅뚜벅 나아가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에도 박수를 보낸다.

이용규 신문디자인국장 hpcygle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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