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경양방죽, 홈플러스, 광주시청

@이용규 입력 2026.02.03. 18:07

광주시 동구 계림동 옛 광주시청 자리에 들어선 유통시설 홈플러스가 17년만에 역사속으로 퇴장했다. 홈플러스 자리였던 경양방죽 6만5천여평은 불과 89년만에 흔적도 없이 메워지고, 그 위에 세워진 시청사 처럼 스러지는 상업시설은 광역통합의 거센 물결에서 씻겨나가는 광주의 기억을 보는 것같아 씁쓸하다.

조선 세종때 전라감사 김방이 축조해 수백년 광주의 농토를 적신 젖줄이자 휴식공간이었던 경양방죽은 1937년 일제에 의해 손이 탔다. 1935년 광주가 부(府·지금의 시)로 승격이후 동명동을 중심으로 급증하는 일본인들의 택지공급을 위해 지금의 계림동 505번지 일대 6만5천여평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4만5천531평을 매립했다. 당시 최홍종 목사를 중심으로 격렬한 매립반대투쟁으로 4분의 1(2만2천909평)은 제외됐다. 그것도 1967년 수질오염을 이유로 태봉산을 헐어 메워버렸다. 광주시는 1969년 할당된 3천754평 위에 지상 3층규모로 광주시청사를 신축, 광산동에서 계림동으로 이전했다. 1986년 광주직할시로 승격되고, 전남과 분리했다. 1989년 5층, 1991년 7층으로 증축 사용해오다 2005년 치평동시대를 열었다.

1940년대 경영방죽 모습. 광주시민속박물관 제공

도시의 생얘는 생성과 성장,소멸의 과정을 거친다. 급격한 도시팽창으로 광주는 개발에 방점을 두었다. 이 과정에서 생겨난 공간은 기억과 역사의 축적물이다. 계림동은 단순한 땅이 아니었다. 많은 평가와 해석이 따르나, 경양방죽과 시청사, 유통센터 변천은 시기마다 행정과 시민들의 필요에 의한 결과물이었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자연경관이었던 유동 일대 유림숲과 태봉산, 경양방죽 등이 보존됐다면 광주의 도시경쟁력은 더 훨씬 나아졌을것이라는 아쉬움은 있다. 광주전남이 40년만에 통합을 향해 나가고 있다. 광주전남의 미래 도시계획은 더 역동적일 것이다. 도시가 성장과 소멸을 거듭하기에 역사성을 갖고 있는 공간은 그 자체가 콘텐츠가 되도록해야 한다.

계림동 홈플러스터는 단순한 개발 대상의 부동산이 아닌 광주를 기억하는 하나의 조각이다. 오로지 사람의 손과 가축력에 의존했던 시대에 경양방죽을 축조하기 위해 동원된 수십만 민중의 땀과 눈물의 서사는 간단치 않다. 씨줄과 날줄로 얽힌 광주의 역사는 콘텐츠로 부활해야 한다. 민간 소유의 부지이기에 장소의 이력을 생각해 광주시가 방안을 모색했으면 한다.

이용규 신문디자인국장 hpcygle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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