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이순신과 보성 열선루

@이용규 입력 2025.11.10. 17:44

최근 보성에서 이순신 열선루 축제가 열렸다. 보성 열선루 축제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400여년전 바람앞에 촛불같던 조선을 위기에서 구한 이순신 장군의 지략과 나라사랑을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되살리는 시간이었다. 이순신에게 보성은 전략지로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깊은 인연을 갖고 있는 곳이다. 1592년 4월13일 조총을 앞세우고 순차적으로 부산에 상륙한 15만명의 왜군은 20일만에 한양에 상륙했다. 선조는 작전상 도성을 비우고 파천을 감행했다. 육전에서 허망한 패전을 거듭하던 조선은 해전을 압도했다. 호사다마라고, 연승행진을 이어가던 이순신에게 불운이 닥친다. 선조 임금의 명령을 거부한 죄명으로 삼도수군통제사직을 박탈당하고 투옥된다. 그런데 후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원균이 이끈 수군은 왜군에 의해 초토화됐고,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을 받는다. 1597년 8월 3일이었고, 남은 병사는 15명이었다. 조선 수군 재건에 나선 이순신은 보성을 전초기지로 삼았다. 보성군수를 역임한 방진의 딸인 부인 방씨가 자란 곳이 보성이었다. 이순신은 1597년 8월 9일부터 18일까지 보성에 머무르며 군사와 군량을 모으고, 화살 등 군기와 군선을 제작했다. 이해 9월16일 판옥선 13척과 왜선 133척의 대결인 명량대전의 기적을 이끌어내는 밑돌을 놓았다.

이순신의 보성 10일간 활동에서 열선루는 지도자의 고뇌와 결단이 녹아있는 장소이다. 현재 보성읍 보성리 보성군청 북쪽에 자리한 열선루는 15세기 건립된 정자였다. 몇차례 규모와 이름을 바꾼 열선루에 이순신은 진도군수 부임때 들렀던 곳을 비롯해 4차례 찾아왔다. 특히 조선 수군 재건의 중심이된 보성에서 활동하던 그가 '신에게 지금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고 육전 참여를 거부하는 내용의 장계를 써서 조정에 올렸던 곳이 열선루다. 전황을 제대로 알지 못한 선조가 보낸 조선 수군 철폐 유지에 대한 답이었다. 우리에게 국민시조로 알려진 '한산섬 달밝은 밤에 큰 칼옆에 차고' 시작되는 한산도가를 쓴 곳도 열선루라고 전 독도박물관 이종학관장이 주장한 적이 있다. 열선루터는 지난 2014년 노기욱 남도이순신연구소장에 의해 공식 문헌을 통해 확인됐고, 지난 7월 11년만에 지금의 자리에 복원됐다. 열선루에는 400여년전 명나라와 일본의 전장터가 된 조선을 지켜낸 이순신의 선사후공의 정신과 이름없는 호남 민초들의 살아있는 역사혼이 오늘도 흐른다.

이용규 신문디자인국장 hpcygle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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