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그해 5월 우리는···

@최민석 입력 2025.05.11. 14:38

그 해 5월 어린이들은 하루하루 설레고 들떠 있었다. 다가오는 운동회와 봄 소풍 준비로 학교 가는 날이 즐거웠다. 엄마는 언제 소풍 가냐고 운동회 언제 열리느냐고 연신 물었다. 도시락으로 김밥 싸야 한다며 달력을 보면서 장날을 손꼽았다. 학교 수업은 오후 학사 일정을 절반으로 줄이고 청팀과 백팀으로 나눠 운동회 연습과 매스 게임 준비로 여념이 없었다. 수개월 전 대통령이 서거했음에도 평온한 일상은 지속되고 있었다.

이것이 필자가 기억하는 초등학교 시절 1980년 5월의 풍경이다.

학교 행사 외에도 5월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축하해야 날이 많은 달이었다.

5월 중순이 지나며 심상 찮은 일들이 벌판을 감싸는 안개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행인들은 눈에 띄게 줄었고 경찰들의 발길이 바빠졌다. 부모들은 골목과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에게 오후 5시 국기 하강식이 열리기 전인데도 귀가를 재촉했다. 선생님들은 소풍과 운동회를 취소했고 느닷 없는 휴교령으로 집에 머문 날이 많았다.

TV 뉴스에서는 정규 방송이 중단되고 뉴스 특보가 이어졌다. 그 해 5월 13일이 지나자 거리에는 대학생 형들과 한 무리의 청년들이 무리를 지어 탄 유리창 깨진 버스와 트럭 행렬이 시내를 누볐다. 어른들은 광주 민주화 시위가 목포와 함평, 무안 등 전남 곳곳까지 번지고 있다며 아이들에게 외출 금지령을 내렸다.

광주에 군인들에 의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는 등 흉흉한 소식들이 들려왔다. 학교는 휴교령이 풀리고 모든 일상이 정상화됐지만 이전의 모습은 아니었다. 총칼과 무력으로 진압된 그 해 5월의 고통과 상처는 45년이 흐른 이 시간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진상규명은 뒷전이고 폄훼와 왜곡은 일상사가 됐다. 12·3 계엄은 또 다시 45년 전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시민들의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의지와 열망에 힘입은 동력과 한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인용으로 계엄 사태는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비롯된 혼란과 갈등, 분열 등은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남겼다.

역사는 항상 가진 것을 지키는 것보다 한 번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일이 어려운 일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민주주의는 흐르지 못하고 고인 물이 될 때 생명력을 잃는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지켜내고 가꿀 때 온전한 꽃을 피운다. 그것이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의 교훈이다.

최민석문화스포츠에디터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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