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5·18을 맞는다. 45주년이 되는 올해 5·18 기념행사는 지난해 12·3 비상계엄을 온 국민의 저항으로 막아낸 이후 맞는 첫 5·18 기념일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유신시절 군부대 비밀조직 하나회 멤버인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은 1979년 10월26일 독재자 박정희 사망 이후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12·12군사반란을 강행해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하고 군부를 장악했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됐고 대학 캠퍼스와 노동현장에는 민주화의 요구가 거셌다. 신군부는 이듬해 5월17일 비상계엄 확대와 함께 대학가에 계엄군을 주둔시키고 학생과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았다. 5월18일 전남대 정문 앞에서 계엄군과 대학생들의 충돌을 시작으로 광주에 투입된 7공수여단 33대대 병력은 시위에 참여한 학생만이 아니라 거리에 눈에 띄는 시민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곤봉을 휘둘렀다. 부마항쟁 진압에 그랬듯이 공포심을 조장해 시위에 참여치 못하게 할 속셈이었다. 광주시민들은 처음에는 공수부대의 잔혹한 폭력에 맨몸으로 맞섰지만 계엄군의 무차별적 발표에 더 이상 희생을 막기 위해 총을 들었다. 치안이 부재한 상황에서도 강력사건은 발생치 않았고 질서가 유지되는 해방구였다. 5월 광주시민은 피와 밥을 함께 나눴다. 시민들은 헌혈에 기꺼이 참여했고 김밥과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들에게 전했다. 택시 기사들은 도망치는 시위대를 도왔다. 광주 5월은 참여와 나눔의 생명공동체였고, 이 정신은 12·3 계엄에서는 주먹밥이 카드 선결제로 진화하는 또 다른 면을 보였다.
80년 5월 극한의 공포 속에서 생명을 건 연대는 12·3 계엄의 밤을 제압하는 성취로 이어졌다. 항쟁기간 계엄군의 발포 명령은 여전히 미궁이다. 계엄 수뇌부가 이를 꼭꼭 숨기다보니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는 더 교묘해지고 있다. 모든 역사 왜곡 세력 주장은 그 자체로 일고의 가치도 없으나 문제는 우리가 역사의 현실을 바라보는데 영향을 미친다. 계엄 세력들이 감추려 한 것에 5·18 진실이 숨어있다. 45주년 5·18은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케 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전국민적 축제 속에서 5·18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총의들이 모아져야하는 이유다. 또 표만 의식하고 5·18을 사태로 부르는 이들에게 과연 광주민주화운동을 바라보는 진정성이 있을까. 내란 잔존 세력들이 횡행하는 5월 떠나지 않는 의문이다. 이용규 신문디자인국장 hpcygle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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