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

@김현주 입력 2025.02.16. 16:27

2주 전 설을 맞아 온 가족이 둘러앉았을 때 최대 화두는 대전에 사는 둘째 조카의 태권도 학원 문제였다. 올해 열 살인 조카는 사내아이답게 운동에 흥미를 붙였다. 문제는 하루에 두 번이나 학원을 가겠다는 것이다. 한참 뛰어놀기 좋은 나이라고는 하지만 학교가 끝난 뒤에 학원을 가려면 늦은 밤까지 밖에 머물 수밖에 없게 된다. 집에서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당연하다.

한창 성장기인데 운동보다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에 다다른 가족들은 한창 키에 민감한 아이에게 '너 키 안 클 수도 있어'라는 무시무시한 말로 태권도 학원을 한 번만 가면 좋겠다고 어르고 달랬다. 아이는 키가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면서도 끝내 학원을 한 번만 가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그렇게 뜯어말려도 듣질 않던 조카가 학원을 못 가고 있다는 것이다.

조카는 지난주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전 초등생 피살 사건이 일어난 학교에 다닌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천방지축이던 조카가 일순간 집 밖에 나가기 무섭다고 했다는 말을 듣고 아이가 느꼈을 공포가 가늠이 갔다.

어른들도 믿기 힘들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인데 아이들은 더했으리라. 더욱이 같이 학교에 다녔던 친구이자 동생에게 그런 끔찍한 일이 생겼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하루에 두 번도 마다하지 않던 태권도도 아빠가 직접 학원 앞까지 데려다줘야 줄 정도로 아이는 겁을 잔뜩 집어먹었다.

학생에게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인 학교에서 가장 신뢰하는 교사에게 끔찍한 일을 당했으니 아이들이 집 밖을 나서는 일 자체가 극한의 공포가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교사들의 '교권 침해' 반발에도 자녀보호앱 설치가 사건 이전 대비 70배 폭증했다는 언론 보도 역시 부모들도 아이를 집 밖으로 내보내는 일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세월호부터 이태원,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까지, 반복된 참사가 사회 구조적 문제에서 촉발됐음을 여실히 확인하고 느꼈음에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국민의 안전이 후순위로 밀려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할 것이라는 신뢰가 더 이상 무너지지 않게 정부와 관계 부처의 노력이 절실하다. 최소한 아이들이 등하교할 때 불안과 공포를 느끼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최우선으로 구축해야 할 것이다.

김현주 사회에디터 5151k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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