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바캉스의 미덕

@유지호 입력 2025.01.20. 18:01

휴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반겼다. 직장인들에겐 말 그대로 꿀맛 같은 '멈춤'이다.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간다. '삼국사기'에 기록이 남았다. '60일 이상 휴가를 얻은 관리는 내직이나 외직이나 모두 해직 처리하라'. 신라 35대 경덕왕(758년)의 명령이었다. 부모 간병을 위한 관리들의 휴가를 200일까지 줬다는 내용도 고려사 형법지 공식편에 있다.

제도화 된 건 조선 세종 때다. 엘리트 관료와 학자 배출 등을 위해서다. 조선왕조실록에 근거가 남았다. 젊은 문신들이 집에서 전심으로 글을 읽어 성과를 내도록 하는 '사가독서제'가 그 것이다. 책을 읽기 위한 휴가로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수 년을 줬다. 집현전 설치는 인재를 키우는데 한계가 있었다. 관청업무 탓에 학문에 전념하지 못한 탓이다.

관료들의 업무 시간은 탄력적이었다. 봄·여름엔 묘시(오전 5~7시)에 출근하고 유시(오후 5~7시) 퇴근했다. 가을·겨울엔 출근은 두 시간 늦게, 퇴근은 두 시간 빨랐다. 휴무일은 20일 정도. 왕·왕비·왕대비 생일과 설·추석 명절 등이다. 부모상이나 위독한 경우 휴가를 얻어 60일 가량 일손을 놓을 수 있었다. 출산휴가도 이 때 구체화 됐다.

요즘 휴가는 달력의 빨간날에 의해 좌우되곤 한다. 주 52시간 근무제·주 5일제가 정착되면서다. 법정 공휴일은 삼일절·개천절·성탄절 등 15일이다. 설날·추석·어린이날이 일요일과 겹칠 땐 대체 휴일이 인정된다. '관공서의 공휴일의 관한 규정'으로 정해지는데, 이는 대통령령이다. 날짜 중심인데다 음력으로 따지는 설·추석·석가탄신일이 있어 샌드위치 휴일 가능성이 높다.

설 명절 황금연휴가 완성됐다. 27일이 임시 공휴일로 지정되면서다. 직장인은 31일 연차를 쓰면, 25일부터 2월 2일까지 9일간의 휴가다. 서양에선 떠난다는 의미다. 바캉스는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다'를 뜻하는 라틴어 바카리오(vacatio)에서 유래했다. 최근 광주 트라우마치유센터엔 불안감을 호소하는 상담객들이 늘고 있다. 인생에서 한 번 경험하기 힘든 국가적 재난들을 잇따라 겪으면서다.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은 정월 초하루, 음력 1월 1일이다. 을사년의 첫 휴가, 바캉스의 미덕을 발휘해 보면 어떨까. 소비·관광 등 내수 경기 침체로 그 간 어려움을 겪어온 자영업자들에게는 위안과 선물이 될 수 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동서양의 공통된 지혜다. 유지호 디지털본부장 hwaone@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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