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4월 민주화 시위 중 숨진 고 강경대 열사가 34년 만에 소환됐다. 국회에서 반공청년단이라는 단체가 백골단을 조직해 윤석열 대통령 체포 저지를 밝힌 기자회견을 통해서였다. 1990년대 시위 현장에서 무자비한 폭력으로 강경대, 김귀정 열사의 생명을 앗아간 백골단의 이름에 귀를 의심했다. 백골단 조직 소식을 듣고 지난 10일 국회 소통관에 선 올해 84세인 고 강경대 열사의 아버지 강민조씨는 "백골단을 자처하는 인물들이 흰 헬멧을 쓰고 있는 모습을 텔레비전 뉴스 화면을 통해 봤을 땐 아찔했다"면서 "백골단에 의한 희생은 우리 경대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꼭 막겠다"고 절규했다.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아버지의 비통함은 34년 전 악몽을 떠오르게 한다. 고 강경대 열사는 1991년 4월 26일 명지대 경제학과 1학년 재학 중 참가한 집회에서 이른바 백골단으로 불리우는 사복 경찰 5명에게 쇠 파이프 등으로 집단 폭행당한 뒤 사망했다. 스무 살의 꽃이 피워 보지도 못한 채 시들어졌다. 그의 주검은 21일만인 5월18일 10만명의 애도속에 광주 금남로에서 노제를 치르고 망월동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2025년 하얀 헬멧을 쓴 백골단의 출현은 그로데스크하다. 1985년 서울시경찰국 산하에 창설돼 군사독재 시절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른 백골단 부활의 공표는 민주화 역사에 대한 부정으로 경악게했다. 90년대 대학을 다녔고 정치학자로 대학에서 민주주의를 강의해온 김민전 의원이 독재 정권의 백골단의 정체를 모를 리 없을 것인데, 이들을 국회에 끌어들인 저의가 의심스럽다. 민주당은 김민전 국회의원 제명을 공언했다. 김 의원은 태극기 집회탄핵 반대 모임에 참석, "가는곳마다 중국인들이 탄핵에 찬성하는 것이 본질이다"는 발언을 비롯해 윤 대통령 관저앞에 몰려가 법원의 적법한 체포 영장 집행을 저지했다. 정치라는 것이 진영, 세력간 과도한 요구나 주장을 할 수 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국민과 국가를 벗어나지 않는다. 비례대표로 의원 배지를 달기전 늘 입바른 소리를 했던 그의 정치 대상은 누구인 지 묻고 싶다. 그런데도 국민의힘 지도부는 그의 발언을 감싸고돌고 있다. 지도부가 한쪽 눈으로 만 보니 망언과 경거망동이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회의원은 국익이 우선이고 민심과 괴리해선 안된다. 민심을 따라가지 못하는 오로지 극우를 향한 심기 맞추기는 국민 통합이나 국민 화합은 아니다. 이용규 신문디자인국장 hpcygle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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