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판소리

@김혜진 입력 2024.09.08. 18:41

판소리는 17세기에 등장했다. 북 장단에 맞춰 소리꾼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음악이자 문학이자 연극으로 주로 하층민들 사이에서 받아 들여졌다. 지배계급이 즐기는 연회나 다름 없는 것이 판소리였다. 너나할 것 없이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예능 중 하나로 많은 이들이 모여들었다. 탁 트인 공간에서 펼쳐진 판소리는 누구나 보고 즐길 수 있었고 누구나 '얼쑤' '좋다'와 같은 호응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이었다. 소리꾼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피지배계급의 설움을 달랠 수 있었고 재미 뿐만 아니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판소리는 모두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 됐고 사람들은 이곳에서 연민의 정을 나누고 공감했으며 서로를 위로하고 용기를 얻기도 했다.

'말할 자격'을 굳이 따지지 않고 누구나 공평히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판소리는 피지배계급이 비로소 숨쉴 수 있는 구멍이 되어줬다.

9월 광주에는 이같은 '판'이 깔렸다. 누구나 즐기고 볼 수 있는 공간에서 마음 놓고 이 사회를, 이 세계를, 오늘날의 인류를 풍자하는 마당이 북구 용봉동 광주비엔날레 전시관과 남구 양림동에 펼쳐졌다.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이야기이다. 정의에 맞서 할 말 하는 광주정신과 판소리가 만났다. 미래의 인류를 위해, 지구상 모든 생명체와 이 존재들이 이루는 생태의 미래를 위해 전세계 72명의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할 말 하는 자리다.

사회 주류의 기준을 벗어난 작가들이 많이 참여했다. 1980~1990년대생의 젊은 작가들, 여성 등이 참여 작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이 눈에 띄고 절반 가량이 이번 비엔날레 주제에 맞춰 새롭게 제작됐다.

공감하고 위로하고 서로 용기를 북돋아줄 관객을 위한 판도 깔렸다.

'마당 푸드랩'이라는 이름의 야외 카페가 설치됐다. 음료와 음식을 매개로 어울려 함께 교감하는 장을 마련한 것이다. 사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있어 문제를 발견하고 공감하는 이타심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곳에서 쌓는 유대감과 서로 좁혀나가는 사람 사이의 공간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판은 깔렸으니 이제는 당신의 차례다. 함께 소리를 듣고 또 소리 내는 장으로 발걸음 해보길.

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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