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허송세월(虛送歲月)

@최민석 입력 2024.09.03. 14:40

허송세월(虛送歲月)

1990년대 중반 광주·전남 관가에서는 '허송세월'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광주시가 전남도에서 광역시(옛 직할시)로 행정 분리된 후 송모 광주시장과 허모 전남지사의 상생과 협력이 '동상이몽'으로 정책간 엇박자를 낸 것을 놓고 지역 언론들이 빗대어 유행시킨 단어였다. 당시 양 시도는 분리 이후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자신들의 지역 챙기기에만 급급한 행정으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었다.

'허송세월'은 말 그대로 삶에 가치 있는 일은 전혀 하지 않르면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을 말한다. 길고 지루했던 여름이 결국 허송세월한 채 서서히 물러가고 있다. 세월은 계절을 바꾸고 계절은 세월을 비껴 간다. 처서가 지났는데도 맹위를 떨치던 여름 폭염이 서서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여름은 8월 내내 무더위로 허송세월하더니 급기야 9월을 불러냈다. 하늘을 보니 어느새 해가 뜨면 조각구름들이 늘어가고 석양이 지나면 선선한 바람이 뺨을 어루만진다,

더위는 이마에 흥건한 땀만으로 성이 차지 않았던지 연일 열대야로 잠을 설치게 하더니 냉방기 사용 급증으로 전력소비를 부추겼다. 치솟는 수은주에 과일과 채소 등 농작물 작황은 엉망이 돼 버렸고 뜨거워진 바다는 양식장 멍게와 우럭 등 폐사가 속출하면서 추석에 팔 물고기가 없다고 할 정도로 그동안 들인 발품과 정성을 '허송세월'로 만들어 버렸다.

광주지하철 2호선은 어느새 1단계 공사가 77%의 공정률을 보이는 등 2026년 말 개통한다는 소식이다.

동전의 양면 같은 허송세월은 때로는 결실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기다렸던 것들을 허사로 만들거나 공염불에 그치게 하기도 한다. 모든 우주 삼라만상이 허송세월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여름이 삼켜버린 허송세월은 가을의 높은 하늘과 선선한 바람을 몰아오고 들녘 익어가는 벼는 농심을 웃음짓게 한다. 삶과 자연, 세상의 모든 것들이 허송세월을 품고 뚜벅뚜벅 나아가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허송세월만 한 채 출구를 못 찾는 사안들도 산적하다, 지역 최대 현안인 광주군공항 이전 문제, 전남권 의대 유치, '응급실 뺑뺑이'를 만들어 낸 '의료개혁' 문제 등 정작 문제 해결은 허송세월만 한 채 제자리 걸음이다.

작가 김훈의 비유처럼 우리 모두는 허송세월로 바쁘다. 더 이상 낭비되는 허송세월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최민석 문화스포츠에디터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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