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시골 의사들의 청진기(聽診器)

@최민석 입력 2024.06.19. 11:18

의사를 상징하는 대표적 의료기기이자 전유물인 '청진기'는 심장이나 폐 등 몸 속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도구를 말한다.

의사들은 환자들의 심장 소리를 듣기 위해 왼쪽 가슴에 청진기를 갖다대는 경우가 많다. 청진기는 지난 1816년 프랑스 내과의사 라에네크가 발명했다. 그가 만든 최초 청진기는 길이가 9인치에 직경이 1인치인 속이 빈 나무관이 주재료였고 3년 여 연구와 노력 끝에 청진기를 완성했다.

라에네크의 청진법은 1843년 현대 청진기의 원형을 만들어낸 모태가 됐고 이후 청진기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후 흰색 가운을 입은 전세계 의사들의 상징물로 자리매김했다.

의료환경이 취약했던 1970∼90년대 의사들은 일부 지역에서 '만병통치약'으로 불렸다. 의사수가 턱없이 부족했고 변변한 병·의원이 없었던 지방 특히 시골이 그랬다.

섬과 산간 오지가 많았던 전남지역 의료 인프라는 더욱 열악했다. 필자의 고향인 함평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면 단위 살던 이들은 5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버스를 타고 함평읍내 병원을 찾았다. 그 시절 함평읍엔 선광의원과 재생의원이라는 2개 의원급 병원이 운영됐다.

지금의 함평군청 앞에 함평군의회 청사 자리가 선광의원이 있던 곳이고 건너편에 재생의원이 있었다. 이 두 병원은 1970∼80년대 함평군민들의 만병통치약이었다. 두 병원은 다소 차이를 보였다. 선광의원이 전형적 개인급의원이었다면 재생병원은 소규모 병상을 갖추고 응급과 중증 환자들을 맞았다.

가벼운 증상이나 감기 등 일상질환을 앓는 환자들은 선광의원을 찾았고 교통사고나 큰병에 걸린 환자들은 재생의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두 병원 원장들은 휴일 없이 환자를 맞는 경우가 많았다. 병원에 오더라도 접수는 나중이고 치료가 먼저였다. 치료비도 받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상황이 심각하면 수술 메스도 들었다. 고인이 된 선광병원 정모 원장은 항상 청진기를 목에 두르고 있었다. 항상 웃는 모습으로 환자들을 맞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필자가 기억하는 시골 의사들의 모습이다. 환자와 국민들의 희생과 불편을 볼모로 한 의사들의 집단휴진이 싸늘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하루 빨리 청진기를 환자들의 가슴에 대며 아픈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의사들을 보고 싶다.

최민석 문화스포츠에디터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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