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광주 광천동 시민아파트

@이용규 입력 2024.06.17. 16:00

광주 광천동 시민아파트는 광주 최초의 연립형 아파트이다. 광주시가 1970년 거주지 정비 사업을 목적으로 6·25 전쟁 후 피난민들이 몰려 살았던 판자촌을 허물어 건축했다. 가·나·다 3개동이 ㄷ자형으로 연결된 총 184세대였다. 7평형과 10평형으로 층마다 공동세면장, 공동세탁장, 공동 화장실을 갖춘 구조였다. 시민아파트는 첫 광주 노동야학의 무대이자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흔적을 간직한 공간이다. 5·18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과 김영철, 박기순 등이 활동한 들불야학은 광천동 성당 교리학습실에서 나중 시민아파트 다동 2층으로 옮겨 둥지를 틀었다. 5·18 기간에는 학생과 노동자들이 투사회보를 발간, 역사를 기록했다. 철저하게 고립된 광주의 처참한 상황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노력이었다. 광천동 시민아파트 일대는 5천600세대가 들어서는 아파트단지로 탈바꿈된다. 도시가 생성과 소멸을 하니, 시대 흐름을 반영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광천동과 시민아파트는 광주의 도시화 산업화 과정의 축소판이다. 켜켜이 축적된 도시민의 삶의 채취를 포클레인 쇠발톱으로 마구잡이 갈아엎을 수 없는 이유다. 그동안 광주는 도시 팽창의 실행력은 재빨랐으나, 도시가 품고 있는 그 가치의 중요성을 살피고, 보존하려는 노력은 거의 없었다. 경영방죽이 하루아침에 매몰되고, 아시아문화전당 조성 당시 인근의 많은 근대 건축물이 사라진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뒤늦게나마 특별한 공간인 시민아파트에 대한 지역사회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 다행히 재개발조합, 광주시, 서구청, 가톨릭 광주대교구가 지난 2021년 시민아파트 나동과 광천동성당 일부를 기념공간으로 활용하는 합의를 이뤄냈다. 사업지구 내 거주민들이 모두 떠나면 수백년간 이야기를 머금은 한 마을이 사라지는 일은 몇 개월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재개발조합 측에선 지난 4월 정비계획 변경 및 특별건축구역 지정 신청을 서구청에 냈다. 사유재산을 침해받는 상황에서 대의적 명분에 용단을 내린 조합 측으로선 지극히 당연한 수순으로 이해할 수 있다. 3년 전 약속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당국과 재개발조합 측의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가 시작된 셈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다. 광주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공간을 시민의 공감대 속에서 보존해내는, 새로운 건축문화정책을 멋지게 써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용규 신문제작국장 hpcygle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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