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월이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있다. 담장 너머로 슬며시 얼굴을 드러낸 빨간 장미다. 장미는 수많은 꽃 중 '계절의 여왕' 5월에 가장 어울리는 꽃이다. 햇살이 넉넉해지고 바람이 잦아질 무렵 살포시 피어나 5월을 알린다. 개화한 장미는 수줍음도 머뭇거림도 망설임도 없다. 그저 지나치며 보는 이들에게 색과 향기를 전할 뿐이다. 5월은 그렇게 피고 지는 장미로 시작됐다가 끝난다. 머리와 발길 속에는 잊혀져도 가슴은 기억한다.
기억 속 5월은 즐겁고 기쁜 날도 많았다. 10대 학생 시절엔 소풍과 운동회로 주체할 수 없는 맥박에 신이 났고 관광버스에 올라 수학여행을 갈 때면 무엇 하나 부럽지 않았다. 누구랄 것 없이 그날 하루만큼 행복한 어린이날, 부모님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어버이날과 선생님의 가슴에 꽃을 달아주며 감사함을 전한 스승의 날도 있었다.
추억의 앨범 속 채워진 시간들은 지금도 새록새록 생각만으로도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5월은 무겁고 어두웠다. 광주의 5월은 더욱 그랬다. 5·18의 상처와 아픔 때문이다. 죄를 지은 것 없이 고개를 숙였고 떠나간 자들에게 미안했고 남은 이들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44년이 지났건만 올해도 그랬다. 18일이 지난 후 망월동 묘역 인근을 지나며 여러 생각이 스쳤다. 변함 없는 미안함과 주체할 수 없는 부채감이었다.
그날의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기억은 5월을 관통한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삶은 이어진다.
푸르름 가득한 대학 캠퍼스는 축제의 향연으로 들썩거리고 봄의 끝을 알리는 햇살과 바람은 몸을 흥건한 땀으로 적시는 여름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그리움과 고마움이 넘쳐나고 지나간 추억과 새로운 순간들로 채워지는 5월이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지나가고 있다.
시간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흘러간 시간을 돌이키는 것은 사람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는 세월을 무심하다고 한다. 올해 5월도 지난해 5월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었다. 저마다의 기억과 인식도 다를 것이 틀림 없다. 잘못되고 부조리한 것들도 모두 시간 속에 묻힌다. 5월도 그렇다. 행복과 기쁨도 그 속에 승선한다. 모두가 헐겁고 개운한 마음으로 5월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5월이 문을 닫으며 우리에게 건네는 쪽지다. 최민석 문화스포츠에디터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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