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가슴 설레는 기쁨으로 시작해 찬란한 슬픔으로 끝난다. 올봄은 유난히 어수선했다. 의대정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 갈등, 야당 압승으로 끝난 4·10 총선거, 과일 등 연일 치솟는 물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이란 등 숨가쁘게 돌아가는 중동 정세 등 때문이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가 싶더니 꽃들은 피기가 무섭게 꽃비로 거리에 내려앉았다. 4월 들어서는 때이른 초여름더위로 겉옷이 반팔로 바뀌더니 꽃들의 빈자리를 신록이 채워가고 있다.
가장 먼저 꽃망울을 드러낸 광양 매화와 구례 산수유는 흔적도 없이 몸을 감춰버렸고 어렵게 피어난 벚꽃은 무게를 이기지 못해 꽃잎들을 털어버렸다. 개나리는 노란색 미소를 찾아볼 수 없었다. 순서가 사라진 개화시기를 보여주는 늦봄의 전령사인 진달래와 철쭉이 가는 봄이 아쉽다는 듯 형형색색 자태를 뽐낸다.
꽃잎이 큰 겹벚꽃과 목련만이 이 시끄럽고 어지러운 봄을 온몸으로 이겨내며 꿋꿋이 버텨내고 있다.
해마다 반복되고 가고 오는 계절이건만 지난해 봄이 다르고 올봄의 느낌이 생경하다. 내년 봄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봄은 이토록 아름답고 눈부시지만 짧고 허무하고 눈물 겹다. 꽃이 피는 건 힘들고 지는 건 순간이다. 꽃이 지는 건 다음을 향한 필연이요 숙명이다.
신록을 거쳐 여름과 가을이 이어지는 것도 이같은 연유다. 가는 봄을 붙잡을 수 없지만 봄은 무작정 떠나지 않는다.
가는 봄이 아쉬운 이들은 넘쳐난다. 선거에 떨어진 낙선자나 이별을 눈앞에 둔 연인, 중간고사를 망친 대학생, 순간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음주사고를 낸 운전자 등 누구나 순간을 돌이키지 못해 결과를 망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분모는 '다시 돌아간다면…'이다.
안타깝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결과가 달라지라는 법은 없다. 설상 돌이킬 수 있다 해도 그 결과에 만족할 수도 없다. 지난 2001년 개봉한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주인공 은수와 상우의 사랑처럼 말이다. 영원할 것 같던 사랑도 변하고 돌아갈 수도 없다. 봄날은 가도 추억은 남는다.
그 추억 속의 시간들이 기쁘건 슬프건 모두의 뇌리 속에 그리움으로 새겨진다. 어수선한 세상과 혹독한 겨울 속에서도 기필코 봄은 오고 봄날은 간다. 봄이 우리에게 건네는 삶의 훈수다. 최민석 문화스포츠에디터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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