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시스템 공천' 유감

@유지호 입력 2024.02.28. 18:19

선거판은 전장(戰場)에 비유된다. 공천은 전쟁의 출발점이다. 영화 '대외비'엔 그 이면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 정치가 요동쳤던 1992년 총선이 배경이다. 14대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 해다. 특정인의 방해로 지역구 공천을 못 받게 된 후보자가 선거판을 뒤흔들려 한다. 몰래 빼돌린 핵폭탄급 카드를 담보로 검은 돈을 빌려 무소속 출마하면서다. 발단은 공천 갈등이다.

공천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긴 선거전의 첫번째 변곡점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원래 인사권이 있는 관아에서 임금에게 인물을 추천하는 것을 의미했다. 각각 문관과 무관의 인사권이 있는 이조·병조를 전조(저울질하는 관아)라 했는데, 이 곳 전조에서 세 명의 공직 후보자를 임금께 천거하는 것이 공천이다. 낙점은 임금이 이 셋 중 적임자의 이름 위에 점을 찍는 것을 뜻했다.

정당 공천제도는 70년 전 시도됐다. 자유당은 54년 3대 총선 때 대의원 투표와 평가 등을 종합해 공천을 주려했다. 내부 프로세스는 막혔다. 당 총재였던 이승만 대통령 재가 과정에서 후보자가 뒤바뀌면서다. 하향식 공천은 87년 민주화 이후 트랜드가 됐다. 탄탄한 지역 기반을 가졌던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이 전면에 등장하면서다. 지역구에서 1명을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는 88년 13대 총선 때 도입됐다.

총선은 차기 대선의 전초전이다. 민심의 향배를 가늠해 볼 수 있어서다. 당시 3김의 공천권은 거침 없었다. '표적공천' '자객공천' '막대기 공천' 등 신조어가 등장하던 때다. 민심에는 민감했다. 대권을 노렸기 때문이다. 국민이 원하면 과감하게 선택했다. 공천 과정에서 현역들이 우수수 떨어졌고, 새로운 인물이 발탁된 배경이다. 여론 수렴의 보완책이 됐다.

프로토콜은 바뀌었다. 국민 참여를 늘리는 방식이다. 요즘 말로 '시스템 공천'이다. 정당마다 공정한 기준과 민주적 절차를 강조한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다. 특정 계파의 세력 확대 수단으로 활용될 여지가 있다는 의미다. '사당화' '사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공천은 정당이 내세운 인물로 22대 국회 4년을 평가 받는 과정이다. 미래는커녕 비전·정책도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에게 무엇을 보여주려는지, 당선된 의원들과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공천 파동만 부각될 뿐이다. 국민은 밀려났다. 약수터에 약수가 없는 셈이다.

유지호 디지털본부장 hwaone@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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