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황혼에는 나도 늑대로 보일 수 있다

@한경국 입력 2024.01.25. 16:16

황혼은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는 무렵을 나타내는 단어다.

누를 황과 어두울 혼으로 이뤄진 황혼을 그대로 풀어쓰면 누런 어두움. 밝은 것인지 어두운 것인지 모를 정도로 애매한 느낌을 준다.

프랑스에서는 이 애매한 시기를 가리켜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이는 해질 무렵 언덕에서 달려오는 동물이 자신이 키우는 개인지, 자신을 해치려는 늑대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 시기라고 해서 이렇게 불려졌다고 한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관용적으로 선거철 민심을 얻기 위해 활동하는 정치인에게 쓰이곤 한다. 선거 기간 동안에만 약속을 지키는 것이 마치 개처럼 얌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선거가 끝나면 늑대처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경우를 자주 접해서 그럴 거다.

그런데 요즘에는 막 학교에 입학한 신입생, 첫 취업에 성공한 직장인 등에게도 이 표현을 쓰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이들의 본심을 알 수 없기 때문일까. 무슨 잘못이 있길래 이처럼 경계하는 것일까. 개와 늑대의 시간을 지나는 이들에게 크게 당한 상처라도 있는 것일까.

잘 생각해보면 개와 늑대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의 잘못은 사실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애초에 늑대를 자신의 개로 착각한 자신의 잘못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늑대가 개의 탈을 쓰고 속인거라면 늑대의 잘못이 크겠지만, 그게 아닐 경우 착각한 자신의 책임도 있다는 의미다.

정치인의 친절함, 신입생의 패기, 신입사원의 총명함을 기대한 것은 어쩌면 자신이 만들어낸 프레임일 지도 모른다.

정작 정치인은 친절하지 못한 대신 정책을 잘 만들어 낼 수 있고, 신입생은 열정이 없는 대신 머리가 좋을 수도 있다. 신입사원 역시 덜 총명하더라도 부지런하고 희생정신이 뛰어날 수도 있다. 다 각자의 장단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

다른 각도로 보면 개냐 늑대냐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 주는 교훈은 바로 시간이다.

늑대는 해질 무렵 언덕을 지나고 있었을 뿐이었다. 헷갈리는 시간에 서서 늑대를 바라보고 평가하는 자신의 문제는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황혼의 시기에 반려견이 내 옆에 있었다면, 늑대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잘 세웠다면, 개와 늑대의 시간에 대한 고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늑대, 혹은 개로 보여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지금 우리 시계는 몇시쯤에 놓여 있을까.

한경국 취재1본부 차장 hkk42@mdilbo.com

슬퍼요
0
후속기사 원해요
0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