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DJ) 대통령은 일명 '치트키'로 통한다. IMF 구제금융 등 국가부도 위기 상황에서도 외교와 내치, 경제에서 최고의 성과를 낸 점을 인정받으면서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내·외 정세가 급변할 때마다 모범 답안이 되고 있다. 시대를 꿰뚫었던 그의 탁월했던 혜안과 삶의 궤적을 좇는 재평가 작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이유다. '한·일관계의 교과서'로 불리는 'DJ-오부치 선언'이 대표적이다.
8일은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한 지, 정확히 25주년되는 날이었다. 일본은 식민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한 반성·사죄를 공식 문서에 담은 건 이 선언이 처음이었다. 당시 양국 관계는 마비 상태였다. 역사 교과서 왜곡과 독도 망언을 쏟아낸 일본 정치권과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YS의 대치 후유증은 컸다. 설상가상 DJ는 도쿄 납치사건의 피해자였다.
국내 여론의 반발은 거셌다. 그 간 굳게 닫혀있던 일본 대중문화의 빗장을 풀면서다. 가장 논쟁적 화두에 대해 DJ는 "우리가 겁낼 필요 없다"고 설득했다. 그의 예측대로 일본문화 개방은 한류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토대가 됐다. 2000년대 들어서자 '겨울연가'를 시작으로 한류가 일본을 휩쓸었다. K-POP 등 K문화 융성의 토대를 닦은 것도 DJ·오부치의 파트너십이 계기였던 셈이다.
극단적 진영 갈등이 되풀이 될 때마다 그의 리더십은 재조명된다. 시대를 읽는 선견지명 덕분이었다. DJ는 21세기를 화해와 통합의 시대로 봤다. 외교뿐만 아니라 국내 정치에서도 보수·진보의 화해가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DJT(김대중·김종필·박태준) 연합'은 집권의 기반이 됐다. 그의 정신을 기리고 지구촌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 해법을 논의하는 국제 학술대회가 잇따르고 있다. 5∼6일 고향인 신안에서 열린 '2023 김대중평화회의'가 대표적이다.
지난달엔 DJ와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등 정치와 생애가 닮은 세 지도자를 함께 회고하는 국제대회도 열렸다.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 그는 자서전에 "나는 최상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정교하게' 노력했음을 밝힌다"고 썼다. DJ-오부치 선언 관련해서다. 2024년은 그의 탄생 100년이 되는 해다. 화해와 통합, 포용 등을 통해 미래를 설계했던 그의 삶과 정치 역정이 정치권에 돌직구처럼 아픈 교훈을 던진다.
유지호 부국장대우 겸 뉴스룸센터장 hwaone@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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