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하늘빛이/문둥이는 서러워//보리밭에 달 뜨면/애기 하나 먹고//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서정주 '문둥이')
어릴 적 '문둥이'(한센인을 얕잡아 부르는 말)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보리밭에 숨어 아이를 잡아 먹는다'는 속설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골에 살지도 않았고 마주할 일도 없었지만, 영화 '벤허'나 '전설의 고향' 같은 곳에서 누더기로 온몸을 감싼채 등장하는 그들은 두려운 존재였다.
손발이 잘려나가고 얼굴이 문드러지는 한센병은 '천형'으로 치부됐다. 사람들에게 이유없이 뭇매를 맞거나 돌팔매질을 당하기도 했다.
가족들에게까지 버림받았던 그들이 내몰린 곳이 고흥반도 끝자락에 자리한 섬 소록도다. '작은 사슴모양의 섬'이라는 뜻을 지닌 이곳은 한센인(한센병 환자)들의 한이 서린 곳이다.
한센인과 의료진만이 거주하는 소록도는 섬 자체가 의료기관이다. 1916년 국립소록도병원의 전신인 자혜의원을 만들어 한센인들을 격리시킨 후 이곳은 세상과 단절되며 고립과 슬픔의 섬이 됐다. 일제강점기에는 혹독한 강제노역에 목숨을 잃기 일쑤였고, '씨를 말려야 한다'며 불임시술을 시키거나 거세까지 시행할 정도로 반인권적 행태들이 자행됐다.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가야했던 이곳은 1984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 방문 전까지 일반인과 한센인이 이용하는 배를 따로 운행했다. 처절한 낙인이었다.
1967년 한센병 치료제가 등장한 후 급격히 감소한 한센인들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환자를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
아픈 역사와 달리 소록도는 천혜의 비경을 품고 있는 곳이다. 2008년 소록대교 개통 후에는 고흥의 대표 관광지가 됐다.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라 한센인의 아픈 역사가 깃든 박물관과 중앙공원 등에 방문객이 몰렸다. 코로나 사태 전인 2019년에는 한해 60여만명이 소록도를 찾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2020년부터 방문객과 차량 출입이 전면 통제된 소록도를 상권활성화를 위해 다시 개방해달라는 목소리가 높다. 고령의 한센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코로나 격리를 유지하고 있어서다.
격세지감이라는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아이러니다.
'한센인의 날'이 올해로 20회를 맞았다. 한센인의 날은 매년 국립소록도병원 개원기념일(5월 17일)에 맞춰 전국 한센인들이 모이는 자리다. 코로나로 한동안 열리지 못했다 4년만에 개최된다. 고단한 세월을 보냈을 한센인들이 하루만이라도 편견과 차별을 잊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이윤주 지역사회에디터 storyboard@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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