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봄꽃들이 순서 없이 피어났다. '엄동설한'을 이겨내고 가장 먼저 꽃을 피운 봄의 전령사는 매화였다. 매화를 시작으로 동백과 산수유, 개나리, 벚꽃에 이어 늦봄엔 5월 피는 철쭉을 마지막으로 봄날은 간다.
그랬던 것이 수년 전 부터 일찍 동면에서 깨어난 봄꽃들이 한꺼번에 두서 없이 개화했다. 춥고 모진 겨울을 지나 봄꽃들이 온 천지에 피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생성과 순환의 원리로 돌아가는 자연은 조화와 균형의 원리가 중추다. 계절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이같은 작동의 원리가 붕괴되면 인류의 생존도 장담할 수 없다. 짧은 시기에 몰아서 피는 꽃도 고장난 자연이 보내는 신호다.
이렇게 꽃이 무분별하게 피어나면 벌꿀의 활동에도 영향을 미쳐 양봉산업은 물론 꽃과 나무의 생육은 물론 수정 불량 등으로 개화시기에 따라 한 해 농사계획을 세워야 하는 과수농가들의 존립에도 위협요소로 작용한다.
올해도 4월에 피어야 할 벚꽃이 3월 하순에 피어나면서 이같은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절정으로 만개해야 할 벚꽃 멍울은 어느새 꽃비로 덜어져 길거리를 뒤덮고 있다. 자연이건 세상사건 한 번 깨뜨려진 균형은 복원이 힘들다. 모든 것을 기후변화 탓으로 돌릴 수 없다.
길바닥에 떨어진 꽃비를 보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모인다. 삶의 지나온 시간과 추억 같기도 하고 우리 곁을 떠나간 그리운 이의 얼굴도 떠올리게 된다. 가슴 한켠에서는 온갖 부조리와 불합리와 몰상식으로 흘러가는 세태를 보는 것도 같다.
지는 벚꽃은 돌아왔지만 머물 수 없고 남고 싶어도 떠날 수 밖에 없는 한 생(生)의 희로애락을 보여준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나오는 주인공들의 사연처럼 아직은 저 멀리 있는 내년 봄을 벌써부터 기약하는 승차권 같은 느낌도 든다. 해마다 오고 가는 봄이지만 벚꽃 질 무렵은 겨울을 이겨낸 기쁨과 여유를 느껴 볼 겨를도 없이 서둘러 떠나는 계절처럼 많은 서사를 동반한다.
팍팍한 살림살이 속에 고물가와 경제난은 가족들과 외식 한 번 하기에도 지갑으로 가는 손을 멈추게 한다. 내년 벚꽃 질 무렵에는 지금의 걱정과 기우들이 조금이나마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은 길거리에 떨어진 벚꽃 망울을 즐겨 읽는 책갈피로 담아두련다.
최민석 문화스포츠에디터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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