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대학가요제에는 유난히 TV에서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가수 한명이 통기타를 메고 무대에 올랐다. 주인공은 '가객' 김광석이었다. 소극장 등에서 열렸던 콘서트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김광석의 목소리를 브라운관으로 보고 들을 수 있었던 뜻깊은 공연이었다. 김광석의 대학가요제 공연에는 숨겨진 사연이 있다. 한사코 TV 출연을 꺼렸던 김광석을 무대에 올린 것은 대학가요제 연출을 맡은 주철환 PD의 삼고초려 덕분이었다. 어쨌건 김광석은 이날 김지하 시인의 동명시에 곡을 붙인 '타는 목마름으로'를 불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것이 김광석이 지상파 방송에 선 사실상 마지막 무대였다. 곡명이 '타는 목마름으로'가 된 것은 당시 시대상과 분위기의 영향이 컸다. 94년은 한국 역사에 있어 의미가 큰 해였다.
지난 93년 오랜 군부독재가 끝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주화 열풍이 불어닥치며 거센 변혁의 물꼬를 텄다. 경제는 급성장했고 두둑해진 주머니는 소비를 부추겼다. 이른바 '서태지와 아이들'로 상징되는 70년대생 X세대가 등장하면서 가요를 비롯한 대중문화 전반에 격변이 일어났다.
'타는 목마름으로'는 시인 김지하가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해 지은 시로 오랫 동안 운동권의 '찬송가'처럼 불린 민중가요였다. 시의 절정은 이 부분이다. "오직 한 가닥 타는 가슴 속 목마름에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허리 띠 풀고 먹고 살만해졌지만 군부의 폭력은 더욱 잔인해졌고 생각과 표현은 억압됐다. 독재의 빗장은 결국 도도한 역사의 흐름과 국민들의 염원으로 민주주의를 살려냈다. 그렇게 울려퍼진 노래가 김광석의 '타는 목마름으로'다.
1주일이 채 남지 않은 2022년 12월 겨울 추위가 매섭다. 바람은 차갑고 쌓인 눈은 하얗게 산하를 덮은 채 마음마저 움츠리게 만든다. 긴 가뭄은 반가운 눈과 비가 내리는데도 저수량은 바닥이다. 15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 유족의 눈물은 마르지 않고 있다. 경제는 고물가로 팍팍하다. 이렇게 삶 속의 목마름은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살아온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처럼 모든 이들의 목마름이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최민석 문화스포츠에디터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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