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는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에 대해 조합원 84%가 반대한다는 설문 결과를 발표하고, 이를 내년 임금·단체협상 교섭 의제로 다루겠다고 선언했다. 회사의 노동조합이 조합 총회 결과를 이례적으로 언론에 배포했고, 고용노동부까지 보도설명자료를 내며 일개 사내 노조의 의사표명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낸 것은 그간 선례가 드문 일이다. 이만큼 삼성전자의 호남 반도체 투자가 국가적 사안임을 노조 스스로가 누구보다 분명하게 확인해 준 셈이다.
경영상의 투자 결정은 헌법 제15조(직업선택의 자유)와 제23조(재산권 보장)가 보장하는 경영권의 본질적 영역이다. 대법원은 기업투자, 공장증설 등은 경영주체에 의한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이며, 이는 원칙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라는 입장이다. 경영권은 실정법상 명시된 권리가 아닌 사실적 개념으로 근로조건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개정 노조법 해석지침에서 “사업경영상 결정 자체는 원칙적으로 교섭 대상이 아니며, 그 결정의 이행·실행 단계에서 근로조건에 실질적·구체적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 한해 비로소 교섭 사유가 될 뿐”이라고 못박았다. 이 원칙에 반론을 제기할 학자나 법률가는 많지 않을 것이다. 노조가 이 구분을 무시하고 경영 결단 자체를 교섭 테이블에 올리려 한다면, 개정 노조법이 노사 간 신뢰 회복을 위해 마련한 제도의 취지를 스스로 훼손하는 일이다.
그런데 삼성전자 노조는 AI 전환과 글로벌 반도체 수급 불안으로 회사의 매출이 급증하자 수억 원 규모의 상여금을 일방적으로 요구하여 사회적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반도체 추가 증설은 바로 그 글로벌 공급 부족을 해소하고 매출과 영업이익을 늘려 직원 성과급과 상여금의 원천 자체를 확대하는 길이다. 같은 노조가 이익 증대의 전제가 되는 공장 건설에는 84%의 반대표를 던지고, 성과 배분 단계에서는 거액을 요구하는 것은 스스로의 입장과 모순되는 행위다.
삼성전자 노조만큼 사회적 관심과 파급력을 가진 노동조합도 우리나라에서는 드물다. 그만큼 국가 경제정책과 직결된 발언에는 그에 걸맞은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정부는 호남반도체를 지역 균형발전과 첨단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핵심 국가 프로젝트로 설계했다. 그동안 반도체 팹(fab)은 수도권 일대에 치우쳐 있어 호남과의 격차를 키워 왔고, 호남 투자는 일자리 창출, 지방소멸 방지, 글로벌 공급망 불안에 선제 대응하는 다목적 국가전략의 핵심축이다. 주도적 노조의 이름으로 이 프로젝트의 정당성 자체를 흔드는 것은 권위에 걸맞지 않을 뿐 아니라 호남 주민과 국민 전체의 이해와도 어긋난다.
노조법이 교섭 의제로 허용한 것은 경영 결단에 대한 거부권이 아니라, 그 결단이 근로조건에 미치는 파급을 조정하는 안전장치다. 만일 호남 반도체 공장이 추진된다면 조합원이 입게 될 전환배치·근로시간·안전·보상 체계 등 구체적 불이익을 사전에 차단하는 절차를 설계하는 것이야말로 노동조합의 옳은 몫이다. 국가전략 자체의 당부를 가로막는 행위는 근로자 대표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다.
삼성전자 노조가 진정 근로자의 권익과 국가산업의 동반성장을 함께 고민한다면, “84% 반대”라는 수사(修辭)에 힘을 쏟기보다 “건설이 진행될 때 조합원이 불이익을 받지 않는 절차”를 만드는 쪽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노동조합이 산업의 진정한 동반자라는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고, 조합원 다수의 목소리를 동반 성장의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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