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 온 뒤 흙냄새, 무등산 자락의 바람, 골목 안 커피 향, 시장의 따뜻한 음식 냄새까지. 도시는 눈보다 먼저 감각으로 기억된다. 오래 남는 장소의 기억에는 늘 그곳의 공기와 향기가 함께 있다.
향기는 인류의 오래된 치유 언어다. 서양에서는 고대 이집트에서 유향(Frankincense)과 몰약(Myrrh)이 의례, 향료, 방부, 상처 관리에 사용되었다. 동양에서도 향기는 삶 가까이에 있었다. 단군신화의 쑥과 마늘은 인내와 정화, 생명력을 상징한다. 한국 고유의 향을 떠올리면 쑥, 귤피, 적송이 자연스럽다. 쑥은 따뜻한 흙의 향을, 귤피는 상쾌한 감귤 향을, 적송은 숲의 청량함과 곧은 생명력을 전한다.
저는 향장미용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향기를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정서와 생리 반응을 함께 살피는 감각 과학으로 보아 왔다. 국내 자생식물 기반 혼합향기조성물의 성분을 분석하고, 정서안정과 이완 반응을 뇌파(EEG)로 확인하는 연구를 이어온 것도 그 때문이다. 향기 속 휘발성 성분은 후각수용체(olfactory receptor)를 거쳐 대뇌 변연계(limbic system)와 자율신경계(autonomic nervous system)에 신호를 전달한다. 그 반응은 뇌파(EEG), 심박변이도(HRV), 정서척도 등으로 관찰할 수 있다.
국내 자생식물 향기조성물에서는 알파피넨(α-Pinene), 디리모넨(D-Limonene), 유칼립톨(Eucalyptol), 보르네올(Borneol), 리날릴아세테이트(Linalyl acetate), 베타카리오필렌(β-Caryophyllene) 같은 성분들이 확인된다. 알파피넨은 숲의 청량감, 디리모넨은 감귤의 상쾌함, 유칼립톨은 맑은 호흡감, 보르네올과 리날릴아세테이트는 안정감, 베타카리오필렌은 편안한 향의 인상을 만든다.
여름에는 향기의 과학을 더 쉽게 체감한다. 페퍼민트의 멘톨(Menthol)은 차가움을 감지하는 TRPM8 수용체(TRPM8 receptor)를 자극해 뇌가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실제 체온을 갑자기 낮추는 것은 아니지만, 감각적으로 더위를 덜어주는 신호가 된다. 레몬과 유자 향의 디리모넨(D-Limonene)과 시트랄(Citral)은 장마철의 무거운 공기를 깨우고, 물 한 잔을 더 마시고 싶게 하는 청량한 이미지를 준다.
장마철 음식 선택도 자연의 흐름과 닿아 있다. 아유르베다(Ayurveda)는 몸과 자연을 흙, 물, 불, 바람, 공간의 균형으로 본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계절과 음식, 몸의 감각 사이에는 수분, 온도, 향, 색, 질감의 균형이 있다는 뜻이다. 비가 많고 습한 날에는 환경에 이미 물의 성질이 많아진다. 이때 물기 많고 차가운 음식만 계속 먹으면 몸은 더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구이나 따뜻하게 조리한 음식이 자연스럽다. 건식 가열은 식품 표면의 수분을 줄이고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을 통해 고소한 향과 먹음직스러운 색을 만든다. 우리는 영양소만 먹는 것이 아니라 음식의 향, 색, 온도, 질감까지 함께 받아들인다.
빛고을 광주는 이름 그대로 빛과 색을 품은 도시다. 색채도 단순한 취향이 아니다. 가시광선(visible light)은 대략 380에서 700나노미터(nm) 범위의 파장을 가지며, 청색계 빛(blue light)은 망막의 멜라놉신 세포(melanopsin cell)를 자극해 생체리듬(circadian rhythm)과 멜라토닌(melatonin) 분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색채심리치유는 예쁜 색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사람의 정서를 함께 설계하는 일이다. 학교, 병원, 복지시설, 공공공간에 향기와 색채가 함께 배려된다면 공간은 사람의 마음을 회복시키는 테라피 환경이 될 수 있다.
도시도 사람처럼 기억된다. 어떤 도시는 건물로 기억되고, 어떤 도시는 그곳에서 만난 친절과 공기, 색, 향기로 기억된다. 광주전남이 머물고 싶은 도시, 다시 찾고 싶은 도시, 오래 기억되는 지역이 되기 위해서는 산업과 관광만이 아니라 감각의 품격도 함께 갖추어야 한다. 지역 자생식물의 천연 향기, 빛고을 광주의 색채, 남도의 음식과 사람의 온기가 어우러질 때 도시는 하나의 치유 공간이 될 수 있다.
이제 도시 발전도 달라져야 한다. 그동안의 발전이 인간의 편리와 성장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자연과 상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도시는 더 많이 소비하는 도시가 아니라 자연을 회복시키고 사람의 마음까지 돌보는 도시여야 한다. 광주전남의 자생식물에서 찾은 천연 향기와 빛고을 광주의 색채가 시민의 일상을 치유하고, 지역을 오래 기억하게 하는 문화적 자산이 되기를 바란다. 좋은 도시는 좋은 향기를 남긴다. 그리고 그 향기는 결국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려는 따뜻한 마음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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