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로의 시간 여행···전래동화 같은 풍경 '가득'

입력 2024.05.16. 18:30 김혜진 기자
[뚜벅이 여행-나주읍성 서부길]
나주객사의 가운데 건물이 본청인 금성관이다. 양옆으로는 객사 건물인 서익헌과 동익헌이 자리한다. 금성관 뒤 쪽으로 삐죽하게 이곳의 명물인 은행나무 두 그루가 보인다.

필자는 전주한옥마을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한옥마을의 한가한 밤거리를 좋아한다. 옛 정취를 느끼기엔 부족하지만 잘 정돈된 돌길을 조용하게 걷는 것이 좋아서다. 경기전이나 전동성당, 풍남문처럼 세월이 느껴지는 건물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이곳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포인트다.

매년 함께하는 사람만 달리해 자주 찾았던 곳인데 최근 가까이서 이곳을 생각나게 하는 곳을 방문하게 됐다. 취재 차 작년 가을 축제철에 들렸던 나주읍성권이다. 역사 속 전주와 나주가 전라도의 주요한 도시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두 도시가 닮아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천천히 걸어 즐기기에 좋은 나주읍성권을 다시 찾아 싸목싸목 반나절 코스로 돌아봤다. 옛 이야기가 골목골목까지 펼쳐져 있어 조선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이다.

◆전라도의 '라'는 나주라

나주읍성권은 기차역에서도 걸어서 40여 분, 차로 10여 분 거리로 멀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다. '나주읍성권'하면 가장 많이 알려진 나주읍성 서부길 여행의 시작은 나주객사로 했다. 나주객사의 규모가 커 이를 중심으로 주변을 둘러보기가 가장 편리하다. 인근이 나주곰탕거리라 여행의 시작과 끝에 든든하게 배를 채우기에도 좋다. 작은 노포지만 평일에도 줄을 서는 유명한 빵집과 로또 명당도 이 근처에 있다.

금성관으로 더욱 잘 알려진 나주객사는 조선시대 초기 세워졌다. 금성관은 나주객사의 본청이다. 금성관을 중앙에 두고 바라봤을 때 왼쪽과 오른쪽에 객사로 쓰인 서익헌과 동익헌이 자리한다. 객사는 옛 중앙 관료들이 업무차 나주에 오면 묵고 가던 숙소의 개념이다. 금성관은 임금과 궁궐을 상징하는 패를 모시는 곳으로 지방 관료들이 예를 올리던 곳이다.

이곳 토박이 주민이라면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나주객사는 일제강점기 이후 꽤 오랜 시간 나주군청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 때문에 훼손도 많이 됐으나 수차례의 보수, 해체 복원 등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전국의 객사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만큼 상당히 부지가 크다.

현재는 내부 보수 공사로 인해 전면은 물론 후면까지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금하고 있어 아쉬웠으나 그 크기만으로도 나주가 조선시대 얼마나 큰 도시였는지를 가늠케 할 수 있어 나름 괜찮았다. 객사 내에 심어진 나무들은 객사의 역사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상당히 오래된 노거수이다. 700살의 오래된 은행나무 두 쌍 등이 나주객사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한다.

객사 바깥으로 보이던 보호수. 이 나무도 수백년의 수령을 자랑한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오래된 건물과 함께 어우러져 마을의 옛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노거수는 금성관 담벼락 바깥에도 있다. 큰 나무가 아까부터 자꾸 보여, 들어갈 때 곰탕거리와 가까운 정수루를 통했다면 나갈 때는 동익헌 인근의 정수루와 반대로 난 출입구로 나갔다. 아까부터 보이던 커다란 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였다. 이 나무 또한 금성관의 은행나무처럼 수 백년간 이 마을에 뿌리 내리고서 그동안의 시간을 다 살펴보고 있었다. 읍성권 안의 각각의 문화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옛 시대를 상징하지만, 곳곳에서 보이는 커다란 나무들은 이 마을의 옛 영화로운 시간을 상상케 하는 타임머신처럼 느껴진다.

금성관에서 목사내아로 향하는 길. 연두색 잎을 틔워낸 나무들이 줄지어 선, 잘 닦인 길이 기분을 좋게 만든다.

연둣빛 이파리를 감은 나무와 잘 닦인 길을 따라 목사내아로 향하는 길이 전주한옥마을을 생각나게 만들기도 했다. 시(市) 단위의 도심에서 이렇게 한적하게 걸을 수 있는 것이, 옛것과 현재의 것이 적절히 어우러진 분위기가 그랬다.

벼락을 맞고 두 쪽으로 쪼개졌으나 외과 수술 이후 건강한 모습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팽나무. 갈라진 면이 보인다.

◆목사 살던 관사 마당엔 행운의 나무가

가을에 찾아왔던 기억에 의지해 걷다가 조금 헤매기는 했으나 멀리서도 보이는 커다란 팽나무가 이정표 역할을 해줬다.

나주 목사내아는 나주목(牧)의 목사(牧使)가 살던 안채이다. 목사는 오늘날로 치면 광역시장 정도이기에 이 내아는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현재는 이곳에서 한옥 숙박 체험도 운영하고 있어 하룻밤 호젓하게 읍성권을 즐기기에도 좋아 보인다.

1800년대에 지어져 일제강점기 이후 군수 사택으로도 쓰이면서 내부가 개조되기도 했으나 2009년 원형으로 복원됐다.

나주 목사내아의 명물은 뭐니 뭐니 해도 바깥에서부터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던 팽나무다. 그냥 팽나무가 아니다. '벼락 맞은' 팽나무다. 이 나무 또한 나주읍성권에서 보던 여느 나무들처럼 수백살의 나이를 자랑하는데, 1980년대 태풍이 불던 어느 날 벼락을 맞고 두 쪽으로 쪼개졌으나 수술을 거쳐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연 있는' 나무다. 키가 어찌나 크고 몸통이 두꺼운지 사진으로 담기가 어려운 정도다. 담벼락 바깥 골목의 튼튼한 지지대에 몸을 기대고 서 있으나 나무의 상태는 건강해보인다.

나무 근처 안내판에는 기적을 바라는 사람이나 마음 먹은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속상한 이들은 이 나무에 하소연해 보라는 팁(!)도 담겼다. 밑져야 본전이다. 요 앞 명당에서 찍은 번호 여섯개에 힘을 달라고 슬쩍 이야기해 본다.

향교로 향하는 골목의 토석담길이 정겹다. 저멀리 향교의 은행나무가 보인다.

◆나지막한 토석담길 끝엔

목사내아에서 나와 향교로 가는 길은 다채로운 매력이 있다. 마을 골목을 통해 가야하는데, 향교로 닿는 골목이 하나 뿐인게 아니라 여러 갈래인 데다 각 골목의 정취도 달라 갈 때와 나올 때 다른 골목을 걷는 재미가 있다.

골목길을 마주하기 전에는 가는 길목에서 서성문을 만날 수 있다. 나주읍성의 서쪽문인데 2011년 복원을 마쳤다. 지하에 유적이 잘 보관돼 있어 거의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들어갈 수 있도록 해놨는데도 들어가도 되는지 아리송해 망설이다 들어갔다. 문을 통과하면 성벽이 나오는데 내부는 좁고 구경할 만한 것은 없지만 성문을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경험이 된다. 서성문을 즐기기 위해서는 성벽을 따라 걷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향교를 가는 길에 만나 성벽 따라 걷기는 다음을 기약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향교로 가는 한 골목의 나지막한 토석담이 인상적이다. 아기자기한 옛 마을에 들어선 듯한 기분을 선사하는 이 골목의 끝에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보여 전래동화 속 풍경 같기도 하다.

나주향교의 명륜당. 교육장소이자 교관의 거처로 쓰였다.

나주향교는 우리나라 3대 향교로 꼽히는 곳으로 이곳의 대성전은 전국 향교 중 가장 큰 규모이다. 나주향교의 교육 시설은 조선시대 때 성균관 다음으로 크다고 할 정도였다고 하니 나주라는 옛 도시의 위세가 느껴진다.

이성계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대성전 앞뜰의 은행나무.

저 멀리서부터 보였던 은행나무는 나주향교의 유명한 '이성계 은행나무'다. 이성계가 심은 나무라는 속설이 내려져 오는데 나주향교의 수호신 같은 존재다. 고려 성종 때 세워져 조선시대를 거치며 잦은 전란 등을 겪었음에도 지금까지 나주향교가 그 모습을 유지한 데에는 은행나무가 향교를 지켜줬기 때문이라는 믿음이 향교 내에 굳건하다. 조선 태조 때 보수를 한 이후로 조선시대 중간 중간 보수를 거듭해 온 향교는 원형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고 임진왜란 당시 성균관 대성전이 불타자 이곳의 대성전을 거울 삼아 복원하기도 했다.

은행나무는 대성전 앞뜰에 있는데 대성전으로 향하는 문이 굳게 닫혀 있어 보지 못할 뻔 했으나 친절한 관계자가 동재에서 나와 "대성전을 꼭 보고 가세요. 바람이 불어 문이 덜컹거려 걸어둔 것이니 열고 들어가도 됩니다."하고 안내해 준 덕에 들어갈 수 있었다.

뜰이 넓은 명륜당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그렇다고 뜰이 작은 것은 아니다. 작은 골목 밖에서 은행나무를 카메라에 다 담지 못한 것을 충분히 담을 수 있어 기분이 좋아졌다. 은행이 물들고 잎이 떨어질 때 쯤 노란 바닥의 대성전 앞뜰을 상상해 본다. 금성관 은행나무 두 쌍과 나주향교 은행나무 때문에라도 가을에 꼭 다시 와야겠다는 다짐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나주향교에는 이성계 은행나무만큼이나 유명한 나무가 있다. 명륜당 앞뜰에 있는 비자나무다. 이 비자나무도 수백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데 아직까지 비자 열매가 주렁 주렁 열려 석전대제를 지낼 때 제수로 쓰일 정도라고 한다.

대성전 양옆으로는 교생들의 기숙사인 서재와 동재가 자리하는데 기숙사였던 만큼 각 방마다 아래에 온돌 구들이 보여 '신성한 공간'처럼 여겨졌던 향교가 친숙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향교를 나서 곰탕을 먹으러 가는 길에는 또 다른 골목으로 나왔다. 현대식 한옥이 많은 골목으로 한옥스테이 등이 운영되고 있어 옆 골목과는 사뭇 다른 정취다.

금성관에서 구 나주역사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남고문. 현대의 도로 끝에 위풍당당히 서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레트로인데 트렌디한 역사건축물

금성관에서 구 나주역까지는 걸어서 20여분 소요된다. 정겨운 읍내길을 구경하다가 도로 한복판의 남고문에 놀라다보면 어느새 도착하는 시간이다. 필자는 중간에 남파고택에 들렸는데 문을 굳게 닫고 있어 내부는 보지 못했다. 문이 열린 때에도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 고택을 제대로 구경하기는 쉽지 않다고 하니 조금 아쉬웠으나 잠깐 머물렀다가는 이의 호기심보다는 그곳에 터전 잡은 이의 삶을 더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구 나주역은 전라남도기념물 제183호로 지정된 곳이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촉발한 '나주역 댕기머리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역사적 의미를 인정 받았기 때문. 이같은 역사적 배경이 된 구 나주역 양 옆으로는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과 기념탑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구 나주역은 나주읍의 영화와 함께 한다. 호남선이 개통한 1913년 영업을 시작한 구 나주역은 나주읍 방문객들로 1970년까지 붐으나 이후 점차 승객이 줄어들며 호남선 복선화 공사 이후 영산포읍의 영산포역과 통합돼 2001년부터 나주시청 인근의 나주역에서 영업을 시작하며 이곳은 폐역이 됐다.

폐역이기는 하나 역사적 장소인 덕에 지금까지 건물 도색 등 주기적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철도로는 나갈 수 없으나 역사 내부에는 빛바랜 옛날 영화 포스터 등이 붙어 있고 몇몇 이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역무원 마네킹이 세워져 있어 옛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하얀 외벽에 민트색 포인트, 소복한 나무 한그루가 엽서 같은 풍경을 만든다.

특히 이 역사는 하얀 외벽에 민트색 포인트를 갖고 있어 사진을 찍으면 마치 엽서 같은 풍경이 연출돼 사진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좋은 추억이 될 듯하다. 레트로한 건물이 트렌디해 보이는 마법의 민트색 포인트다.

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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